장류진(창비)
학창시절, 수학 시험에 주관식문제가 나오면 수식 대신 지문 정독으로 문제를 풀곤 했었다. 긴 지문만 잘 읽으면 계산을 하지 않아도 답이 나올 때가 종종 있었다. 수학을 국어로 풀 만큼 나는 뼛속까지 문과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숫자에 관련한 것이 참 어렵다.
셈에 완전 무지랭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빠릿빠릿 시원시원하게 가감이 계산되고 득실이 따져지지는 않는다. 그저 보이는 만큼만 계산되고, 셈이 되는 만큼만 머릿 속에서 돌아간다.
6~7년 전, 처음으로 적금이란 걸 알았다. 금융에 밝은 동네 동생이 그나마 금리가 높은 적금을 추천하며 같이 들자기에 처음으로 저축은행 통장을 만들고 꼬박꼬박 돈을 넣어 적은 목돈을 손에 쥐어보았다. 그 재미가 쏠쏠하여 그 이후 큰 적금(내 기준에), 소액적금을 서너개씩 돌아가며 들고있는데 참 희한한 것은 그렇게 모아 만기때가 되면 꼭 그 금액만큼의 돈 나갈 곳이 생긴다는 것이다. 7, 8년간 적금 탄 것이 크고 작고 모두 해 10개 정도는 될텐데, 지금 그 목돈들은 모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3~4년 전부터는 부동산 붐이 일었다. 빚을 더 내서 길 건너 신도시로 들어가야 한다며 동네가 들썩였었다. 지금 집의 대출도 아까운데 지금 대출의 몇 배를 더 해야 신도시의 작은 집을 하나 살 수 있단 말에 그 동네는 우리 동네가 아니구나 싶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그 때 그 신도시의 집값이 말도 못하게 오른 걸 보니, 아~ 그 때 조금만 용기를 내볼껄~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주식은 또 어떤가? 주변에 주식으로 큰 재미 봤단 사람은 못봤지만, 그래도 재미 좀 봤단 사람이 몇 있다. 우리에게도 더 늦기 전에 시작하라고 권유를 했지만, 주식으로 결혼반지까지 날렸었다던 울 아빠 생각에 주식은 절대 네버 안돼지…. 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참, 재산(이랄 것도 없지만)을 굴리고, 불리고, 뻥튀기고 하는 것에는 영~ 관심도, 재능도 없는 것 같다.
가상화폐에 관한 소설이라고? 에이~ 뭐 재밌겠어?
지극히 문과적인 내가 이 소설을 손에 들고 한 생각이었다. 얼마나 어려운 경제 용어가 나올까? 가상화폐 하다 쫄딱 망해 자살하고 막 그런 내용인 거 아냐? 설마 주인공이 가상화폐로 잘 먹고 잘 살게 됐다는 건 아니겠지? 그건 좀…… 가상화폐 찬양 아니면 조장 뭐 그런 거 아냐?
이런 나의 부정적인 생각은 첫 장을 읽자마자 깨졌다.
재밌다. 너무 재밌다. 너무 재밌어서 일주일만에 책을 다 읽어버렸다. 아마 해야 할 일 않고 읽을 수 있었음 2~3일 안에도 다 읽었을 것이다.
소설 속 세 친구는 이더리움 투자에 눈을 뜬다. 그리고, 투자에 성공한다.
누구는 환경이 바뀌었고, 누구는 꿈을 이뤘고, 누구는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세 사람의 각박했던 마음에 여유가 생겼고, 자신감이 생겼고, 희망이 생겼다. 소설 속 인물들이지만 참, 부럽다.
나는 그들처럼 과감할 수 있을까? 그들처럼 대범할 수 있을까?
과감하지도 대범하지도 못한 나는 감히 가상화폐는 커녕 주식도, 부동산도 엄두를 못낸다.
책을 덮고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리고 결심했다.
핸드폰을 열고, 카카오뱅크의 26주 적금 하나를 더 들었다.
매 주 3천원이 더해지며 모아져 6개월 후인 10월엔 100만원 조금 넘는 금액이 통장에 들어올 것이다.
그 돈으로 기똥차게 멋진 레스토랑에서 끝장나게 맛있는 한 끼를 기깔나게 먹어줘야지.
뭐, 인생 다 그런거지 뭐.
돈이 다 그런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