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 창비
시리던 하늘이 어느 새 따스한 햇살에 녹고,
볼을 에이던 바람이 어느 새 부드럽게 지나간다.
불과 40여년, 40여년 전의 일이었다.
내가 동네 골목에서 콧물을 옷소매로 슥~ 문지르며 뛰어놀았을 1980년, 그곳에도 나처럼 골목을 뛰어 다니며 놀던 아이들이 있었다. 그 아이들의 형, 누나, 언니, 오빠들이 있었다. 아버지가, 어머니가, 삼촌이, 이모가 있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고, 아무도 믿지 못한 1980년 5월 18일의 그 일. 그 때 그 곳을 지키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강의 목소리로 기록되었다. 살아있었던 자, 살지 못한 자, 살아남아버린 자, 살아남은 게 치욕이 된 자, 그리고 한 때 살아있었던 누군가의 가족인 자. 그들의 목소리를 하나하나 구별하며 받아 적듯 작가는 장마다 다른 목소리로 기록하였다.
그 날의 상황을 세세히 묘사하진 않았다.
그 날을 겪은 이들의 감정을 절절하게 드러내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히, 작가 자신처럼 너무나도 담담하고 차분하게, 때로는 그들을 바라보며, 때로는 그들 안에 들어가 조곤조곤 소곤소곤 그 날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채식주의자> 책이 좋았다. 호불호가 많은 책이라 하는데, 폭력에의 저항으로 채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영혜가 좋았다. 공감이 되고,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이 책 역시 나는 좋았다. <소년이 온다>는 <채식주의자>를 닮아있다. 총을 들고도 쏘지 못한 그들은 영혜를 닮았다. 나를 지키고 싶었지만 차마 너를 죽일 수도 없었던 그들은 영혜의 바람처럼 두 손이 땅에 깊이 박혀 민주주의라는 뿌리를 내리고, 무거운 다리를 하늘 끝까지 들어올려 다리 사이마다 자유의 가지를 뻗어낸 커다란 나무가 되었다.
얼마 전, 그 사람이 죽었다. 한 마디 사과도 없이, 한 번의 인정도 없이, 그렇게 파렴치하게 눈을 곱게 감았다. 햇살 따스한 곳으로 걷기 좋아하는 동호를 그늘로 몰아넣은 그 사람이 살아생전 악몽에 시달렸기를 바라본다. 까무룩 잠이 드는 그 눈꺼풀 속에 정대가 아른거리고, 많은 이들의 목을 움켜쥐었을 각다귀같은 손가락에 모나미 볼펜이 끼워져 있는 것 만큼의 관절염이 있었기를 바라본다. 이제 죽어 훌훌 떠난 그 어느 곳에서 부디 5월의 그들을 만나 그 발치에 머리를 찧으며 억겁의 시간동안 사죄하고 또 사죄하고 있기를 바라본다.
시리던 하늘이 어느 새 따스한 햇살에 녹고,
볼을 에이던 바람이 어느 새 부드럽게 지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봄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