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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연 Aug 22. 2022

할머니의 시위

할머니께서 주간보호센터에 가지 않으셨다. 어제 저녁부터 뭔가 맘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신 모양이다. 어제 저녁도 두어술 뜨는 둥 마는 둥 하시고, 오늘 아침은 아예 드시질 않으셨다. 당체크를 하려 옆에 앉으니 그깟 거 하면 뭐하냐고 버럭 화를 내셨다. 밤새 화장실을 5번이나 왔다갔다 했는데 오줌이라고 찔끔 나오다 말았다며 소리를 치셨다. 인슐린 주사를 놔드리고 옥수수를 삶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마저도 손사레를 치셨다. 


두 달에 한 번, 할머니의 약을 타온다. 당뇨약, 혈압약, 치매약, 혈관약, 위장약, 변비약, 소변약, 각종 진통제, 신경안정제, 수면제, 거기에 다른 병원에서 타 온 타이레놀, 감기약, 그리고 따로 사서 먹는 진통제, 루테인, 소화제 등등등. 할머니의 서랍엔 약이 그득그득하다. 그 중 수면을 위한 신경안정제가 3개 있는데, 두 개는 일반 안정제이고, 1개는 수면유도제인 졸피뎀이다. 졸피뎀은 의존도나 내성력이 강해 처방 받을 수 있는 갯수가 정해져 있어 두 달치를 지어도 30알 정도가 나온다. 이 약은 매일 먹는 것이 아니라 정 잠이 안온다 싶을 때 한 알 씩 먹는 것이라 그동안은 오히려 약이 남았었는데, 작년 부터는 그 약을 드시지 않으면 잠이 안오신다며 매일 드시는 바람에(어떤 때는 1개 반씩도 드셨다) 늘 약이 20일치씩 모자랐다. 약을 잘 챙기지 못하신다는 걸 알고 하루치씩 약을 분배해 내가 챙겨드리기 시작하면서, 이 졸피뎀을 어떻게 분배해야 두 달에 잘 맞춰 드실 수 있을까 고민했다. 처음엔 3일에 한 번씩 드렸다. 하지만, 약의 갯수가 줄어드는 걸 못견디시는 할머니께서 잠 못 자 죽으면 그만이라고 길길이 화를 내시는 통에 그 이후엔 졸피뎀을 반으로 잘라 매일 드렸다. 

처음엔 반 알로도 잠을 좀 주무시던 할머니는 요즘엔 내성이 생겼는지 바로 잠들지 못하셨다. 결국 여분의 졸피뎀은 물론 다음 처방 전까지 날짜를 맞춰 놓은 졸피뎀마저 야금야금 다 꺼내 드시는 통에 딱 어젯 밤부터 졸피뎀을 드시지 못하게 되었다. 


"잠 자는 약 다오!"

"할머니, 그 약 다 드셔서 오늘, 내일 그냥 이 약들만 드시고 주무셔야 해요."

"그럼 어떡하냐? 그 약들은 하나 소용 없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할머니가 약 다 드셨잖아."

"늬미~ 먹어도 소용없는 놈의 약, 그냥 콱 죽어버림 그만이지."


어젯 저녁, 할머니는 화가 난 채 잠자리에 드셨다. 그리고, 오늘 센타 등원을 거부하셨다. 식사도 거부하셨다. 당뇨용 두유도, 토마토 쥬스도, 옥수수도 모두 거부하셨다. 


"왜이렇게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내가 물으니 할머니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화 안나게 생겼어?" 하고 소리치셨다. 


출근하는 신랑에게,


"오늘 할머니 아침부터 기분이 안좋으시네. 출근 전에 할머니한테 가서 괜찮으시냐고 물어봐. 예~쁘게. 친절하게."


라고 했다. 신랑은 할머니방에 들어가 "어디 아퍼?" "괜찮아?" 하고 물었고, 할머니는 힘없는 말투로 "머리가 어지러워서 죽겠어, 그냥." "잠을 못 자 더 그렇지, 뭐." 하셨다. 


"할머니가 자기한테는 화를 안내시네~"


하고 내가 장난치듯 말하니 신랑도 장난치듯 "그러엄~" 하고 대답했다. 그러곤 미안한 듯 "수고해." 하고 말했다.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갑자기 저혈당이 올 수도 있는데 이렇게 아무것도 안드신다고 버티시면 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러면 병원에 가셔야 한다고 해도 "아무데도 안 갈거아!"하고 입을 꾹 다무시니 도통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드시질 않으시니 기운이 없으시고, 화장실 갈 때도 다리가 떨어지질 않으셔서 부축하고 겨우겨우 가셨는데, 그런데도 아무것도 드시질 않으신다니 어찌 해야 좋을지...... 


내일이면 두 달치 약을 타러 가는 날이다. 넉넉하게 약을 타오면 좀 괜찮아지실까? 원하시는 약을 드시게 되면 좀 나아지실까? 어떻게 하면 졸피뎀 없이도 밤잠을 좀 주무실 수 있을까? (할머니는 낮잠은 잠으로 안 치신다. 잠깐 눈만 감았다 뜬 거 라고 하신다. 분명 코를 고셨는데 말이다. ^^;)

곧 점심때인데, 할머니가 점심 마저도 거부하시면 어쩌지? 죽도 싫고, 단호박도 싫으시다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하아, 진짜 어떻게 해야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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