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미녀

가와바타 야스나리/정향재 역 (현대문학)

by 소연




에로티시즘과 포르노그라피는 분명 차이가 있다.

단 한번의 정사씬 없이도
관객(혹은 독자)의 가슴에 불을 당기고,
양 허벅지 안쪽을 바짝 긴장시키는 작품이야말로
시각과 청각을 뛰어넘어 정신적 오르가즘을 유발하는
에로틱의 정수가 아닐까?

처음 <설국>을 읽고,
작가의 문장 하나하나를 가슴에 안지 않을 수 없었다.
한없이 나약해 보이는 이 깡마른 노작가의 머릿 속에
도대체 어떤 아름다운 향기와 이미지가 가득하길래
이토록 아름답고, 촉촉한 문장들을 쏟아내 놓는건지.....

절대로 깨지 않는,
젊다 못해 어린 미녀들이 잠으로 맞이하는 그곳에
이제는 남자로서의 신체적 특징 말고는
그 어떤 "남성성"도 풍기지 못하는 노인들이 드나든다.
그들은 거기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문득, <은교>가 생각났다.

한번도 상상해보지 않았지만
누구나 한번씩 맞이하게 될
노년.....

검은 머리가 하얗게 쇠듯
무언가를 향한 마음도 투명하게 바래지진 않을진데...
팽팽했던 피부가 힘없이 늘어지고 주름지듯
무언가를 향한 욕망도 무력해지는 것은 아닐진데...

우리는
현재의 "젊음"에 취해
곧 맞이할 "늙음"을
먼 산, 딴 동네 사람의 일인양 외면하고 있진 않은지......



잠든 미녀 옆에 누워
젊음을 탐닉하고, 회상하고, 유린하려다 죄책감을 느끼고, 악몽에 선잠 깨던 에구치 노인이
오늘 밤엔 익숙하고 무감한 부인의 옆에 누워
늙음을 받아들이고,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취해
달고 깊은 꿀잠을 만끽했으면 한다.





예순일곱 살의 에구치는 이미 친척이나 친구의 죽음도 수없이 겪었지만, 그 애인과의 추억은 젊디젊다. 아기의 하얀 모자와 은밀한 곳의 아름다움, 유두의 피로 압축되어 지금도 선명히 남아있다. 그 빼어난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은 아마도 이 세상에 에구치밖에 없고, 머지않아 에구치 노인의 죽음에 의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수줍어하던 애인이 순순히 에구치의 시선을 허락했던 것은 그녀의 천성 때문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녀 자신은 분명 그 아름다움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보이지 않으니까. -p.40-



잠들어 있는 젊은 여자 옆에 살과 살을 맞대고 누울 때, 가슴 밑바닥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은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 잃어버린 청춘에 대한 애절함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이 범해 온 배덕(背德)에 대한 회한, 성공한 사람들에게 있을 법한 가정의 불행도 있을지 모른다. 노인들은 무릎 꿇고 비는 부처님 같은 존재를 필시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알몸의 미녀에게 꼭 안겨서 차가운 눈물을 흘리고, 흐느껴 울며 아우성친다 해도 아가씨는 알지도 못하고 결코 깨어나지도 않는다. 노인들은 수치심을 느끼는 일도, 자존심을 상처받는 일도 없다. 완전히 자유롭게 후회하고 자유롭게 슬퍼한다. 그렇게 보면 '잠자는 미녀'는 부처님과도 같은 존재가 아닌가. 게다가 살아있는 몸이다. 아가씨의 젊은 살결과 내음은 그러한 애처로운 노인들을 용서하고 위로해줄 것이다. -p.100~101-



* 보탬 : 이 책은 <잠자는 미녀> 외에 2편의 중•단편 소설이 함께 엮어있다.
한 여자에게 한 팔을 하루동안 빌린 남자의 이야기 <한 팔>과, 살해 당한 두 처녀의 범죄일지를 소설가적 사고로 재구성해보는 <지고 말 것을>이다. 둘 다 특이하고 재밌는 이야기지만, 단연 <잠자는 미녀>는 제목으로 대표화 될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