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겨울
괴팍한 선배가 내가 속한 부서로 온 후 긴장감과 조마조마함 속에 세 달을 보냈다. 몇 명의 후배들을 불편하게 하더니 결국 나에게도 그가 고함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한 달쯤 버티다 급하게 휴직을 신청했고, 그에게서 도망쳤다. 마지막 남은 11개월의 육아휴직을 언제라도 쓰겠다는 마음을, 양복 안쪽 주머니에 사표를 넣고 다니는 여느 직장인처럼 품고 다녔기에 마음만 먹으면 되는 일이었다. 원하던 시점이 아닌 갑작스러움이 불쾌하긴 했지만, 우유부단한 나에게 과감한 선택을 하게 해 주고, 결과적으로 시리도록 추운 겨울을 삐리로로 삐리리 빨리 감기 해 날려버려고, 동남아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보낼 수 있게 되었으니 밥이라도 사야겠다.
뭐할지 이제부터 고민해볼까 할 때 신랑이 말했다. “누나가 이번 겨울 필리핀 세부로 두 달 살기를 간다고 들었는데, 같이 가는 거 어때? “ 갑작스럽고,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었다. “ 어? 두 달이나? 그것도 시누이랑?”그렇게 말하기 했지만, 나에게 신랑의 이야기는 종교인이라면 그들의 신에게 간절히 기도하여 받는 응답이며, 타로카드의 좋은 점괘이며, 마법의 유리구슬로 보는 달콤한 미래와 같다. 3살 많은 연장자이기도 하거니와, 감정 기복이 심하고, 즉흥적이며, 합리적인 판단보다는 감정에 치우치는 선택을 많이 하는 나와는 정반대의 온화하고, 현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존 영어조차 힘겨운 것도, 짧은 여행 말고 타국에서 살아 본 적 없는 막막함도, 어색한 시누이와 함께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10살 아들을 온전히 혼자 돌봐야 한다는 고될 것 같은 미래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두 달 살기를 위해 1년 전부터 학원 예약 및 숙소, 비행기를 준비했던 시누이와는 달리 2주 동안 급한 것만 먼저 해결하니 시간은 순식간에 흘렀고, 어느새 나는 세부 시티의 알리시아 아파텔에서 짐을 풀고 있었다.
첫 번째 세부의 한달살기는 숙소 주변을 익히고, 영어실력 업그레이드를 위한 어학원 생활에 적응하고, 먹고살기 위해 슈퍼, 정육점, 세탁소 등을 찾아놓았다. 두 번째 우리 집 알리시아 아파텔은 필리핀의 세부 시티에 있다. 서울과 같은 도시이고, 영어를 사용하는 곳이고, 물가 또한 저렴했기에 적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아무 일정도 없는 주말에는 막탄 아일랜드로 이동해 그곳의 리조트들을 하나씩 정복하기로 했다. 짐을 풀자마자, 다시 싸야 하는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지만, 우리는 두달살기 중이다. 그것은 당장 다시 올 수 있는 담보를 확보하고 있다는 뜻이며, 여름휴가 때 고작 며칠을 즐기고 귀국해야 하는 아쉬운 여행과는 비교할 수 없는 넉넉함과 여유로움, 진정함 휴식이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첫 번째 한달살기가 끝날 때쯤 시누이와 조카 3명이 같은 아파텔에 도착했고, 우리는 1013호, 시누이네는 803호에서 두 번째 한달살기가 시작되었다. 초등 고학년과 중학생이 있는 시누이는 겨울방학 2개월만 세부살기가 가능하지만, 우리 아들은 초1이라 체험학습 20일을 신청해서 3달 세부살기를 할 수 있기에 우리가 한 달 먼저 세부로 왔다. 세부살기 이야기는 아라비아 나이트의 샤흐라자드가 페르시아 왕에게 1,001 밤 동안 들려주는 이야기만큼이나 흥미진진하므로 차근차근 이야기하기로 하겠다.
그렇게 대가족으로 두 번째 한달살기가 끝나갈 무렵 시누이 가족은 귀국했지만, 우리는 두 달 더 머무르기로 했다. 휴직기간이 남기도 했고, 한겨울에 즐기는 선베드 위 태양과 수영이 좋았고, 겨울에서 여름으로 퀀텀점프(계단을 뛰어오르듯이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물리학 용어) 했기에 인생에서 20년 겨울이 잘라나간 영화 같은 상황도 좋았다. 세부는 천국이다. 시험을 위한 치열함이 아니어서 필리피노 튜터와 1:1로 배우는 영어도 재밌고, 영어마을 속 영어캠프에 온 듯 이방인에게 친절한 영어를 써주는 사람들도 편안했고, 달콤하고, 부드러운 망고를 저렴한 덕분에 마음껏 먹을 수 있고, 아파텔 2층 작은 수영장에서의 시간은 하루를 더욱 풍성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게다가 택시로 30분, 우리 돈 만원이면 막탄 아일랜드의 눈부신 바다도 갈 수 있다. 세부살기 두 달쯤 되니 현지인들만 가는 가성비 좋은 마사지샵도 알게 되어 단돈 만원에 오일 마사지 1시간을 받을 수도 있게 되었다.
한 달 더 살까? 고민하던 그때, 우리 앞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단지 겨울방학이 끝나가니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귀국할 것이기에 평화롭고, 고요한 우리만의 세부를 한 달 더 즐길 수 있으리란 즐거운 상상만 했다. 세 번째 한달살기는 상상한 그대로였다. 오히려 한국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위험한 상황이었기에 더 있기 잘했다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마지막 네 번째 한달살기가 시작된 이후 상황은 나빠졌다.
매일 한국 뉴스를 보며 불안한 2주를 보내고, 3주째 어학원 운영이 중지되었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여름 날씨인 세부까지 빠르게 전파되면서 불안과 공포는 더욱 커져갔다. 아무래도 의료시설이 열악한 필리핀이라 전쟁통에 피난 가듯 며칠 동안 잠도 못 자고, 먹는 둥 마는 둥 매달린 끝에 귀국 겨우 비행기표를 구해 세부를 탈출했다. 세부 탈출기 역시 차근차근 이야기하려 한다.
네 달 동안 세부에서 현지인처럼 살다 돌아오니 아들과 나에게는 지독한 병이 걸렸다. 세부를 향한 향수병이었다. 간절히 원해서 간 것도, 집이 그리워 돌아온 것도 아닌데 세부는 이미 우리의 두 번째 집이 되었다. 한동안 아들과 나의 대화는 세부라면 이랬을 텐데, 그 식당 정말 맛있었는데, 그 리조트 다시 가고 싶어. 수영 실컷 하고 싶다, 망고 잔뜩 사서 배 터지게 먹고 싶어 등등 신랑이 소외감을 느낄까 걱정될 만큼 그리워했다. 은퇴 이후 세부에서 살고 싶을 만큼, 매년 한국의 겨울 동안 세부에서 지내고 싶을 만큼 그립고, 사랑하게 되었다. 처음 세부에 도착 한 날, 10살 아들과 단둘이 낯선 곳에 떨어진 이방인이 되어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아들 앞에서 의연한 척했던 것이며, 시누이가 오기 2주 전쯤 아들과 단둘이 지내고 있을 때 먹은 조개요리가 잘못된 탓인지 배가 아파서 한국에서 가져온 약으로 버티며, 8일 동안 아무것도 못 먹고, 큰 병이면 어쩌지 하며 걱정한 일이며, 한국에서 신랑과 함께여도 두려웠을 코로나 시대를 세부에 있으면서 코로나에 걸려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아무도 모르게 죽어가는 모습이 자꾸 떠올라 공포에 떨던 일도, 이제 모두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코로나 시대 2년 차, 백신이 개발된 지금, 혹시 이번 겨울 세부에서 보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꿈을 꾸며 비행기를 검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