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룻인형의 침대를 안고, 커다란 이삿짐 트럭 조수석에 힘겹게 올라탔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내가 직접 옮긴 유일한 짐이었다.
대문이 열리자 마주한 건, 징검다리처럼 돌이 이어진 작은 정원이었다.
시멘트가 아닌 흙바닥 위로 나무들이 서 있었고, 현관 바로 앞에는 라일락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두 칸의 계단을 올라서야 비로소 시야가 트였다.
뾰족한 지붕까지 훤히 뚫린 거실. 높은 천장과, 2층에서 거실을 내려다볼 수 있는 내부 창.
그 집은 처음부터 나를 포근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방은 2층 왼편이었지만,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1층 거실 유리창 앞에서 보냈다.
가장 또렷하게 기억나는 건, 비가 퍼붓던 여름날이었다.
유리를 두드리는 빗소리가 집 안을 가득 채우고, 젖은 흙냄새가 창틀을 타고 스며들었다.
나는 바닥에 앉아 그 소리를 한참 듣고 있었다. 빗줄기가 굵어질수록 마음은 이상하게 가라앉았고, 알 수 없는 안도감과 후련함이 밀려왔다. 젖지 않은 채로 비 속에 있는 듯한 그 시간이 참 좋았다.
봄날엔 물먹은 소금주머니 같은 몸을 끌며 대문을 여는 순간 맞이해 주던 라일락 향기가 있었다.
집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마음을 풀어지게 한 그 순간이 있어 우울하던 내 10대도 무사히 건너온게 아닐까.
이제 그 집은 없다. 나의 유년을 품어주던 정원도, 돌길도, 높은 거실도 모두 사라졌다.
그 자리에 3층짜리 빌라가 들어섰다.
차를 타고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속도가 느려진다.
눈으로는 같은 자리인데, 발로는 영영 닿을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
한때 커다랗게 느껴지던 그 집은, 이제 손바닥만 하게 보인다.
그 거실은 정확히 어디쯤이었을까. 그 빗소리는 지금 어디에 남아 있을까.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은 그 집은, 기억 속에서만 점점 더 또렷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