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안식월 최고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고내봉을 함께 오르며 나의 편견을 깨준 아이들

by 온맘쌤

1인 언어치료실을 운영한 지 어느새 10년

뭔가를 기념하고 스스로를 격려하고 싶어서 어쩌면 무모한 안식월을 마음먹었습니다.

약 4주간의 시간을 계획하고 숙소를 정하고 제주로 왔습니다.

특별한 계획은 없었지만 놀라운 경험을 하리라는 예측도 없었습니다.


제주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그 놀라운 경험이 바로 오늘이었습니다.

이번 안식월에 받은 최고의 선물과도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제주에서 PECS로 아이들에서 소통의 즐거움을 주고 있는 <온 의사소통 연구소>

작년 말 12월에 마하영 소장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PECS와 함께 살아가는 중입니다.>

제주에서 발달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과 정말 PECS로 살아가는 이야기였습니다.



PECS 의사소통판에 어깨에, 목에 매고 아이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편의점을 가는 영상을 보고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이론으로만 가능한 소통을 일상에서 아이들이 진짜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며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찡함을 느꼈습니다.


이후 소장님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워 하며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아이들과 함께 주말에 제주 오름에 함께 가는 모습을 보며 놀람을 금치 못했습니다.



아니! 세상에 저게 가능해?

일반아이들도 힘든데 센터 아이들이 과연?

위험하지 않을까?

등등 편견으로 가득 찬 생각들로 인한 놀라움과 의심이었습니다.



안식월을 보내던 어느 날

가파도 올레길을 마치고 배를 타고 돌아오던 중

소장님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았습니다.

세상에!!!


아이들과 눈꽃버스를 타고 1100 고지를 다녀오는 모습이었습니다.

놀라움과 감동 끝에 저도 모르게 DM을 보냈습니다.

"저도 안식월로 제주에 있는 동안 1100 고지 꼭 가보고 싶네요."


그 DM 덕분에 그날 아이들과 1100 고지를 다녀온 소장님과

가파도를 다녀온 제가 직접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날의 감동은 잊을 수가 없네요.


어쨌든 그날 제가 "아이들이 오름 가는 날 자원봉사로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라고 부탁을 했고

소장님께서 저를 자원봉사로 받아주셨습니다.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습니다.


제주버스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하고 거기까지 운전해 가는 동안

너무나 설레는 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터미널에 아이들이 하나씩 모였고 시간이 되어 버스를 타고 고내봉으로 갔습니다.


버스가 고내봉 입구에 도착을 했고 거기서 모두 내렸습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손을 잡고 내리는 것도 한참이 걸렸습니다.

고내봉 입구에서 오늘의 대장 친구가 의사소통 판을 이용해서 오늘 일정을 브리핑을 하였습니다.


버스 속에서 제 옆에 탔던 귀요미 안이

저의 선입견을 그대로 깨트려버렸습니다.

길에서 걸을 때 흐느적흐느적 힘도 없이 걷길래

'과연 오름을 올라갈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의심과 편견은 완전히 박살이 났습니다.


오름 초입에 이르기까지 목에 걸고 온 조그만 장난감 같은 카메라로

길에 보이는 민들레도 찍고, 소라도 찍고 뭐 하나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은 모습은 너무 이뻤습니다.

봉에 올라가는 오르막길을 힘든 내색 없이

땅에서보다 더 씩씩한 발걸음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실제로 이 귀요미가 정상에 제일 먼저 올라갔습니다.

그것도 노래를 부르고 즐기면서 말입니다.

7명의 아이들

3명의 선생님 그리고 자원봉사 저

서로 이 친구 저 친구의 손을 잡으며 함께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는 길이 경사가 생각보다 심했습니다.

사실 어른에게도 힘든 경사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저마다의 속도와 방법으로 그 길을 걸어서 올라갔습니다.

가다가 철퍼덕 주저앉은 아이도 있었고

옆에 있는 나무나 꽃을 보느라 한참을 멈추었던 아이도 있고

힘들어서 올라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오르막 계단에서 멈춘 아이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나무 계단 사이에 있는 뭔가가 아이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모양입니다.

한참을 엎드려 관찰을 하고는 다시 스스로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기다려 준다는 것의 의미는 아이의 관심을 존중하는 것임을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세 분 선생님들의 모습을 관찰했습니다.

야단치거나 재촉하는 선생님은 없었습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이끌어 주고 어르고 달래고 때로는 엄포를 놓기도 했지만

그 모든 모습은 함께 이 길을 끝까지 오르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도착하기 전에 힘들어서 땀이 나니 아이들이 두꺼운 외투를 하나 둘 벗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옷을 하나둘 짊어지고 손을 잡고 끝까지 함께 걸었습니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먼저 도착한 친구는 뒤에 오는 친구들을 위해 도착 차단기를 몸으로 만들어서 기다렸고

도착한 친구들은 그 친구 차단기를 통과했습니다.


정상에 도착하니 돌로 만든 테이블과 탁자가 있었습니다.

먼저 도착한 친구는 스스로 알아서 가방에서 물통을 꺼내서 물을 마셨습니다.

정상에서 새로운 힘이 솟았는지 거기서 아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놀이를 하였습니다.

제일 뒤에 도착한 소장님의 가방에는 맛있는 김밥이 들어있었습니다.

정상에서 아이들은 화려한 도시락이 아닌 호일에 쌓인 김밥을 먹었습니다.

아이들이 김밥을 먹는 모습을 보는데 또 혼자 울컥했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은 김밥을 너무나 맛있게 먹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였습니다.


자연에서 아이들의 모습은 치료실에서 보던 아이들의 모습과 많이 달랐습니다.


각자의 눈에 보인 것들,

귀에 들린 것들,

피부에 느껴진 것들,

코로 느껴진 것들에 각자의 흥미대로 맘껏 누리는 모습이었습니다.



함께 그러나 각자의 속도로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오름에서 내려왔습니다.

오름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아이들에게는 '편의점'이라는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각자가 원하는 간식을 편의점에서 직접 골라서 먹는 그 행복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진정한 의사소통이 무엇인지를 경험하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제 앞에 앉아있던 귀요미가 제 목에 걸려있던 의사소통 판을 건드리더니

이리저리 뭔가는 찾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원하는 게 없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순간 바로 소장님을 불렀습니다.

"소장님, **이가 뭔가를 찾아요.!!"

소장님께서 얼른 다가오셔서 의사소통 판을 보여주니

세상에!!!!

마이쥬 그림과 주세요 그림을 골라서 아래판에 붙이고는

그 문장판을 떼고 소장님께 주는 것이었습니다!!

소장님께서 말로도 해보자고 하니

"마이쥬 주세요."

소장님께서 얼른 다시 편의점으로 들어가서 마이쥬를 사 오셨습니다.

오름에 오르는 동안 사실 제일 많이 찡찡대고 한마디 말도 없던 친구였는데 말입니다.


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왔고, 버스에 탄 아이들은 하나 둘 곯아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 그 모습마저 너무 이쁘고 사랑스러웠습니다.

터미널에는 부모님들이 기다리고 계셨고 그렇게 아이들과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에는 아직 아이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오늘 저의 손을 잡고 함께 올라간, 저의 편견을 완전히 깨준 이*

내 손을 잡고 정상까지는 600 계단이었다고, 600 계단이 정상이라고 말하던 현*

마이쥬 주세요로 나를 놀라게 한 연*

오늘 오름 브리핑 대장 *건이

내 장갑의 패턴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던 승*

올라오는 동안 자기만의 속도로 느리지만 끝까지 올라온 한*

말없고 시크한 듯 보였지만 최고참의 모습을 보여준 예*



7명의 천사들과 함께 잡은 손, 함께 걸었던 걸음 속에서

이론이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쉽지 않은 선택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온 의사소통 연구소>의 세 분 선생님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그리고 오늘 오름에 함께 오른 천사들은 그 누구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들이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선생님들과 함께 오름에 오를 수 있는 선택을 하신 부모님들께도

그 신뢰와 용기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온맘쌤의 안식월 가장 귀한 선물은

예전에도 올레길을 걸으며 올랐던 고내봉을

오늘 함께 오른 친구들의 미소였다고 꼭 말하고 싶습니다.


값진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마하영 소장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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