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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영 May 20. 2015

두 번째 스무 살

니 잘못은 없었어

 


  

남녀가 헤어지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싫어졌다. 그와 함께 있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것이 훨씬 편했다. 그에게 말하거나 간섭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졌다. 사랑받는다는 느낌 없이 살아가는 일상이 괴로웠고 참기 힘들었다. 아이들 때문에 할 수 없이 참고 사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 피할 수 없는 책임의 시간을 피하고만 싶었고, 생명을 책임진다는 절대적인 책임감을 놓고만 싶었다. 그리고 알았다. 남편의 말 한마디를 트집 잡아 그를 비난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다는 것을. 그래서 얘기했다. 

  

여보, 우리 이혼하면 행복할까? 

...

  

 결국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부모들이 살았던 삶을 반복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끊임없이 희생하며 참고 살아온 나의 엄마는, 내겐 벗어날 길 없는 정신의 감옥이었다. 문득 돌아보니 단순하고 지루한 일상의 죽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죽어가고 있었다. 나와 엄마, 우리는 인간으로서 같은 길을 시간차를 두고 걸어갈 뿐이었다. 그렇다면 내 아이들도? 아니, 그럴 수는 없었다. 남편과의 관계가 절전모드로 겨우 돌아가고 있던 나는, 왜 이혼을 하지 못하는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했다. 고민의 결과, 나는 일을 선택했다. 

    

나이를 더한다는 건 또 다른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희망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희망을 희망했다. 그러려면 독립해야 했다. 더 망설일 이유 없이 선택한 ‘일’이라는 엄청난 괴물 앞에서 나는 또 한 번 절망했다. 단절된 경력으로 사회에 내딛는 무거운 발걸음은 낯설고 힘겹기만 했고, 방치된 아이들은 아파했고, 여전히 적으로 존재하는 남편과의 전쟁은 내게 남아있던 아주 작은 기대마저 포기하게 했다. 왜 그는 내게 그토록 화를 냈을까? 왜 그는 내 눈물을 외면했을까? 함께 하지 못한다면 각자 사는 수밖에 없었다. 

    

여성문제, 육아문제는 개인이나 가정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과 사회, 국가, 더 나아가 인류가 함께 공적으로 풀어야 할 중요한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리고 남편은, 그 방법을 알지 못했다. 남들이 말하는 ‘멋진 가장’이 되기 위해 밖으로만 나돌았고, 남들이 말하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일과 가정에 치여 자신을 속이며 미친년처럼 뛰어다녔다. 어차피 세상은 거대한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며 변하고 있고, 그 안에서 영향을 받는 사람들도 계속해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외면한 채로. 하지만 자신이 주인인 여자가 좋은 여자다. 

    

남들이 말하는 ‘좋은 여자’가 되기 위해 자신을 속인다면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나쁜 여자가 될 수밖에 없다.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 각자 하면 되지 않을까? 남편에겐 이미 아무런 매력 없이 일상만 남은, 늘 벽에 걸려 있는 그림처럼 평범해진 나는, 내 열정을 쏟고 함께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다. 낭만적인 분위기와 감각적인 즐거움을 원하는 내 감정에 나 자신을 열어놓고 싶었다. 인생에서 뭔가를 놓쳤다는 느낌으로 자책하며 살고 싶진 않았다. 잃어버린 설렘과 강렬한 에너지를 되찾기 위해 다른 길을 찾아서 선택하고 싶었다. 

    

마흔을 앞둔 그해 가을, 내 몸은 바스락거리며 쓸쓸했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무거운 가방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집으로 오는 길의 아이들 목소리는 그저 사는 이유였다. 남편과의 대화는 악다구니와 흐느낌으로 끝났고, 눈물로 화장을 지우곤 했다. 그때, 그를 만났다.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하고 시를 쓰는 그와 함께 식사를 하고 영화를 보고 미술관을 가고 동물원을 갔다. 전쟁 같은 일상의 나른한 휴식이자 아득한 꿈같은 달콤함인 짧은 만남을 향해 부푼 가슴을 안고 벅차게 날아갈 듯 집을 나선 그날 오후, 남편의 문자를 받았다. 

    

나 바보 아니야. 남자 생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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