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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영 May 23. 2015

두 번째 스무 살

어른이 된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 상상했던 어린 시절에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로 사는 것이 전부였다. 어떤 남편을 만날지 아이는 몇 명을 낳을지 그건 그저 부끄러움으로 간직한 채로 말이다. 구체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이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이 될 막연한 숙제였다. 나의 첫 꿈은, 그러니까, 실체가 없었다. 


사회적 시간표에 따라 10대와 20대를 보낸 서른 살의 나는, 숙제가 모두 끝나 있었다. 딸 둘이란 것이 조금 문제가 되어 셋째(아들) 낳으라는 얘길 듣긴 했지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면 그만일 뿐이었다. 실체가 없는 첫 번째 꿈은 이루어짐과 동시에 사라졌고 방황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30대의 나는 아주 많이 흔들렸다. 다른 꿈을 꾸어야 했기에. 


모든 것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세상으로부터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빈둥거리며 머뭇거렸다. 아무런 꿈도 없이 일상에 흥미를 잃고 지루함 속에서 살아갔다. 사는 게 참 재미없었다.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탓하며 부모를 원망하며 정작 어른이 되기를 피하며 이리저리 도망 다녔다. 나에게 다가갈 줄 모르던 그때는, 내가 누군지 물을 줄 모르던 그때의 나는, 그랬다. 


아무 것도 올려져 있지 않은 어깨가 괜스레 무겁게 느껴져서 축 처진 채 일상을 꾸려가던 시간이었다. 남편과의 대화는 툭하면 싸움으로 마무리되기 일쑤였고, 아이들과의 알콩달콩도 반나절을 넘기지 못하고는 외면하던,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새로울 것도 없는 명제에 짓눌려 고개를 떨어뜨리고 하루하루를 버티던 그런 때였다. 


상담을 받았다. 도무지 어쩌지 못하는 자신을 누군가가 읽어주길 바라는 맘이었다. 답변은 명쾌했다. 나를 버리라는, 나를 놓아주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눈곱만큼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내가 누구기에 나를 버리라는 건지, 내 손에 뭘 쥐고 있기에 놔주라는 건지, 나는 더욱더 깊은 고민을 안고는 깊게 가라앉았다. 


그리고는 또 꾸역꾸역 밥을 먹고 잠을 자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다시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더 큰 '나'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의 내 자리를 넘어서서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 그러면 되는 거야? 그런데 어떻게 그래?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데 이걸 무슨 수로 넘어가라는 거야? 


결국 나는 버릇처럼 이혼을 꿈꿨다. 하기 싫은 밥을 하고, 빨래를 널고, 걸레질을 하면서,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집안 살림을 둘러보면서,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오직 하나였다. 셀 수 없이 시도해 봤지만 살림은 내 적성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남편에게 별거를 제안한 건 그 즈음이었다. 나라도 나를 구해줘야 했다. 그러자 숨통이 틔었고, 아이들이 보였다. 예뻤다. 그렇게 살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남편은 다시 돌아왔다. 물론 거래가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빨래를 넘겼다. 그때만 해도 엄청난 거래였다. 


그 다음 거래는 기억나지 않는다. 꽤 여러 번이었다는 증거로 지금의 남편은 밥도 혼자 먹고 잠도 혼자 자고 말도 혼자 한다. 아니, 그러곤 한다. 그러다가 참을 수 없게 되면 된통 쏟아 붓는다. 돌림노래가 또 시작된다. 그리고는 살림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아내를 향한 원망의 눈초리를 날리며 밖으로 나가버린다. 돌림노래가 끝나는 순간이다. 


우리가 스무 살일 때, 우린 어쩌면 같은 꿈을 꿨는지 모른다. 결혼하면 남편과 아내로 살아갈 꿈을. 


퇴근하는 남편을 웃는 얼굴로 맞이하고 옷 갈아입는 것을 도와주고 정성스레 준비한 맛있는 저녁을 함께 하고 식사가 끝나면 핑크빛 무드로 바뀌면서 사랑의 시간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이면 남편보다 먼저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싱그러운 촉촉한 얼굴로 옷 갈아입는 것을 도와주고 출근하는 남편과 가벼운 키스를 나누며 빨리 저녁이 오기를 기다렸는 지도 모른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살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그저 꿈이었다는 것을, 현실은 꿈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아니, 나는 그렇게 알았다. 하지만 남편은 거기서 그만 멈춘 것 같기만 하다. 2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그 꿈 어딘가에 머무는 듯하다. 동상이몽이란 말이 여기에 맞던가. 


가정뿐이던 일상에 일이 섞이기 시작한 지 꽤 되었다. 이 일이란 녀석이 또 돌림노래를 시작했다.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자는 걸 자꾸만 까먹는다. 돈 때문에 하는 것만은 아닐 텐데 그걸 빼고 다른 의미를 찾기 힘들어진다. 얜 또 뭐가 문제인 것일까. 자꾸만 일탈을 꿈꾸게 하는 나의 일상, 이게 사는 건가. 내가 사랑해야 할 나의 삶인가. 



나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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