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영 May 23. 2015

사랑후愛

사랑해 반대말

 

결혼이란 걸 왜 그토록 하고 싶었던 걸까. 미쳤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알지도 못하는 걸 하겠다고 했을 리가 없다. 나의 짝꿍이라고 찜하던 그 순간을 생각하면 그만 눈이 감겨버린다. 왜 그때, 그 사람 외에는 아무 것도 없고 실제로 아무도 없었을까. 왜 평생 둘이만 함께할 것 같았을까. 무뚝뚝한 그가 내뱉는 말마다 왜 까무러치듯 웃어댔을까. 왜 그가 나를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을까. 왜 그 모든 걸 운명이라 믿었을까.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말, 천만번 맞다. 

  

내가 얼마나 예쁜지,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 내가 얼마나 괜찮은 지를 아는 사람. 내 장점을 너무나도 속속들이 인정해 주면서 내 단점은 까맣게 잊게 만드는 사람. 봄날 햇살처럼 따뜻한, 내게 둘도 없는 귀한 사람.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가 내 운명이고 사랑이었다. 그가 나에게 온갖 칭찬을 늘어놓을 때면 그야말로 햇빛으로 샤워를 하는 기분이었다. 구름 위에 붕붕 떠 있던 그때는 그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손발이 오글거렸다. 가슴이 찌릿찌릿하고 아무 때나 쿵하고 내려앉았다. 호르몬이 완전 미쳤었다. 

    

그.러.나. 그 미친 호르몬은 오래지 않아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올라 타고 있던 구름은 겉으로 보기에는 푹신해 보였지만 우리의 무게를 견디지는 못했다. 결혼이라는 일상은 냉혹한 현실의 바다였다. 정신을 다잡아보니 수영을 배운 적이 없다는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다. 맙소사. 수영도 할 줄 모르는 나는 풍덩 빠져서 어쩔 줄 모르고 허우적거렸다. 늘 곁에서 지켜 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그는 어느 바다로 놀러나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함께 살기 시작한 후부터 남편과 함께 숨어 든 것이 있었으니, 그것의 정체는 ‘일상’이었다. 촛불을 켜 놓은 식탁의 은은한 식사 뒤에 산처럼 쌓인 설거지를 하는 것이었고, 뜨거운 밤을 보낸 침대 시트에 남은 얼룩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가계부를 관리하는 일이었고, 돈 문제에서 치사해지는 것이었다. 자진 반납한 자유와 낭만을 찾아 일탈을 꿈꾸는 것이었고, 결혼이라는 바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수영을 배우는 것이었다. 그렇게 일상이란 녀석과 싸우는 동안 아이를 낳고 어느덧 중년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는 말은 곧 당신과 함께 있을 때면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라는 말이다.’ 

(아일랜드 속담) 

    

결혼은 내게 ‘사랑해’의 반대말이  ‘사랑했었어’라는 걸 알려주었다. 그리고 어느새 잊혔던 사실 하나를 봄날 햇살 속에 문득 기억하게 했다. 나는 그를 사랑했었다. 그래서 선택한 결혼이었다. 전쟁 같은 일상이 앗아갔던 기억을 중년이란 나이가 되돌려주었다. 일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편안함이 준 선물인 셈이다. 지금껏 살아온 세월의 절반 이상을 함께해 온 그와, 나는 다시 사랑을 꿈꿨다. 익숙해서 편안해진 것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 믿었다. 아니, 있어야만 했다. 그러니 지루하겠지만 찾아 보려고 했다. 

    


다시 사랑할 수 있을 거라 믿어보기로 했.었.다.

작가의 이전글 두 번째 스무 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