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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ish May 04. 2020

저희 여기 있어도 되는 거예요?

브런치라운지에서 브런치 쓰기

며칠 전 브런치 인스타그램 피드에 브런치 라운지 이용안내 글이 올라왔다. 브런치라운지는 공유 오피스 체인인 패스트파이브 성수점 1층에 마련된 곳으로 작가들뿐만 아니라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반년 전에 집 안에 불필요한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오래된 책상도 함께 버려 집에서는 글을 쓸 공간이 마땅치가 않았다. 매번 카페에 가는 것도 내키지 않아 언니와 함께, 창고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옥상의 옥탑방을 개조하여 작업실 겸 서재 공간으로 꾸미기로 했다. 파여서 보일러선이 드러난 바닥에 시멘트로 메우는 작업도 셀프로 진행했고, 갈라진 벽에 핸디코트를 발라 벽 수리도 마치었다. 어제는 따뜻한 분위기를 내준다는 계란광 화이트 색깔로 벽에 페인트칠까지 하였지만, 페인트를 한번 더 덧바르는 것에서부터 바닥에 조립식 데크 타일을 까는 일, 레일 조명을 설치하는 일, 가구를 구입하고 배치하는 일까지 앞으로 할 일이 산더미인지라 작업실 마련이라는 원대한 꿈은 수일 내로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브런치라운지의 오픈 소식이 더욱 반가웠다. 작업실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브런치라운지를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용 가능 시간이 공휴일을 제외한 월, 화, 목, 금 10시부터 5시까지로 나의 근무시간과 딱 겹치어서 월차나 연차를 쓰는 날이나 회사 창립기념일 정도에만 이용 가능하다는 것이 아쉽지만 말이다.




부처님과 근로자, 어린이들이 합심하여 만들어 낸 황금연휴. 회사 대표님께서 황송하게도 샌드위치데이인 5월 4일 월요일인 오늘도 징검다리 휴일로 쉴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신 덕에 드디어 브런치라운지 이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아침부터 노트북과 책을 바리바리 챙겨 언니와 함께 브런치 라운지를 찾았다.


오는 길에 "혹시 닫힌 거 아닐까? 오늘 문 안 열면 어떻게 해?"라는 걱정이 담긴 대화가 오고 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오늘은 공휴일이 아니고, 월요일이고 우리는 11시 반 정도에 도착할 예정이므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부여잡고 패스트파이브 성수점을 향했는데 가는 길이 순탄하지 않았다.

뚝섬역에서 내려 5번 출구로 나와 패스트파이브 건물을 향해 3~4분 정도 걸어서 이동해야 했다. 근처에서 도로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인도가 아닌, 차도 쪽에 마련된 임시 도보를 이용해 브런치라운지가 있는 건물로 접근해야 했는데 공사 현장 한가운데 있는 포클레인의 크기만큼 벌어진 틈 사이로 언뜻 본 브런치 라운지의 모습은 운영 중인지 아닌지 가늠을 할 수가 없었다.


빙- 돌아서 겨우 도착한 브런치라운지. 초조한 마음으로 출입구 문을 슬쩍 밀어보았다. 다행스럽게 쭉 밀리는 것이 공간은 오픈되어 있는 듯 보였으나, 내부에는 아무도 없었다. 방문객도 관리자도. 정말 아무도.


브런치라운지 입성.....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불은 분명히 켜져 있었고, 커피 머신의 전원도 ON 상태였다. 안쪽에 아직 정리되지 않은 테이블들과 의자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으나 브런치 출간 책들이 깔끔하게 디스플레이되어 있었고,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 그림 전시도 내가 인스타그램 사진을 통해서 본 그대로였다.


우리 여기 있어도 되는 걸까?



언니와 나는 서로를 마주 보며 같은 생각을 했다. 우리 여기 있어도 되나?

주인 없는 집에 함부로 들어가는 것 아니라고 배운 나는 급한 대로 브런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DM을 보내보기로 했다.


저희 여기에 있어도 된다고 해주세요.


[지금 브런치 라운지에 왔는데요. 이용 가능한 것 맞나요? 사람이 아무도 없고 관리하시는 분도 없으신 것 같은데 문은 열려있어요.]


그럴 의도가 없었지만, 언뜻 컴플레인을 하며 짜증을 내는 무례한 말투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눈에 보인다 (부정적인 감정이 전혀 들어있지 않은 단순한 문의였다.) 이 글을 빌려 브런치 인스타그램 계정 담당자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변을 하자면, 진짜 당황을 했기에, 꼭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고 이곳에 잠시 체류해도 되는지 여부를 빨리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타인에게 폐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는 '내가 있어선 안될 자리'에 있는 듯한 그 느낌을 견딜 수가 없었고 이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더욱 솔직하고 간결하게 말하자면, 누군가가 내가 이 곳에 있어도 된다고 말해주기를 바랐다.


섣불리 책상에 짐을 풀기엔 실내는 너무나 고요했다. 음악이라도 나와주면 좋으련만.


"왜 여기 음악도 안 나오지? 음악이라도 흐르고 있으면 '열렸구나' 할 텐데.."


"글 쓰는 공간이라 그런 거 아니야?"


"그런가..? 난 음악은 나올 줄 알았지.."


"브런치에서 답장 없어?"


"어.. 아직.."


"글 쓰려면 쓰던가."


"그냥 쓸까..? 그래. 월요일이고, 공휴일 아니고. 오전 10시 이후 오후 5시 전에 왔는데. 글 쓰러 와도 된다고 했으니까.. 그냥 쓰자."




브런치 라운지에서 내린 커피 한 잔. 생각보다 진하다. 물을 추가해서 희석해서 마시기를 추천한다.


이곳에 온 지 약 한 시간이 지났고, 이 문장을 쓰는 이 시점에 브런치에 DM을 보낸지도 56분이 지닜다. 아직까지 내가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퍼미션"이 오지 않고 있지만, 이것도 글로 남겨볼 만한 경험이라는 생각에 라운지 중앙에 있는 큰 공유 테이블 한편에 앉아 노트북을 꺼냈다. 커피와 와이파이 이용도 무료라고 했으니 조심스레 커피머신에 다가가 아메리카노 한 잔도 내렸다 - 마셔도 되는 거죠...? -  


조심스레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켜 오늘의 경험을 글로 담기 시작했다.


밖에서 도로 공사가 한창이지만, 방음이 잘 된 덕분인지 나와 언니의 타이핑 소리만이 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간간히 들리는 구급차 사이렌 소리를 제외하면 차 소음도 어느 정도 차단이 되어서 실내는 매우 조용하다. 한 시간 만에 에세이 한 편 분량의 글이 완성되고 있는 것을 보면 글을 쓰기에 좋은 공간임은 분명하다. 이제 누군가가 나에게 이 곳에 있어도 된다는 허락만 해주면 참 좋으련만.




앞 좌석에 앉아 브런치 작가 신청을 위한 글을 쓰고 있는 언니는 2시에 약속이 있어 1시 반에는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글도 쓰고 책도 읽으려고 짐을 바리바리 싸왔는데..
 나도 1시 반에 언니랑 같이 나가야 하나.
 근처에 스타벅스 있던데. 거기로 옮길까. 아님 집 근처 카페로 갈까?


넓은 공간에 혼자 있는 것은 어쩐지 겁이 나 언니랑 같이 나갈 생각을 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 크고 높은 출입문을 열고 누군가가 실내로 들어왔다. 남자는 우리를 보더니 환한 인사를 건네었다.


"안녕하세요."


"저희 여기에 있어도 되는 거예요?"


"네. 그럼요~"


아. 다행이다. 언니가 가고 나서도 더 있어도 되겠다. 드디어 기다리던 퍼미션이 떨어졌다.

1시 반까지 이 글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다급함도, 내 입맛에는 조금 진하게 내려진 커피를 20분 내로 다 마셔야 한다는 조급함도 사라졌다. 여유 있게 커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은 탁자 위에 나뭇결도 구경하고 높은 천장도 한 번 봐주고 하니 마법처럼 실내에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산뜻한 재즈 선율이 딱 내 취향이다.


(직원으로 추정되는) 남자는 다가와 에어컨을 틀어도 되는지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슬슬 더워지던 참이었는데 그 물음이 몹시도 반가웠다.


지금 시간은 1시 20분. 2시에 약속이 있다던 언니가 떠났다.

머물러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만큼, 내 마음은 평안을 찾았지만 그래도 어쩐지 이 공간을 혼자 사용하려니 좀 외롭다. 더 많은 브런치 작가들,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이 곳에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활자중독자인 나에게 글을 쓰고 있는 사람들, 독서에 열중한 사람들을 보는 일은 언제나 반가운 일이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볼 때면 "활자 성애자"라는 거대한 집단에 한 일원이 된 듯한 단단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바로 그런 자극과 위락을 찾아 오늘 이 곳을 찾기도 한 터였다.  다음 월차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음번에 이곳을 다시 찾았을 때는,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마주칠 수 있기를 바라며 브런치라운지에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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