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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은 Jun 28. 2022

냉면과 숯불갈비

안 먹고 지나가면 섭한 여름철 음식




사람 사이에 유독 잘 맞는 관계가 있는 것처럼, 음식에도 찰떡같이 어울리는 궁합이 있다. 이를테면 떡볶이와 튀김, 설렁탕과 깍두기, 고구마와 우유, 김치볶음밥과 계란 프라이 같은 것. 각각 따로 먹어도 물론 맛있지만, 같이 먹었을 때 무적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조합이다. 이들은 태초에는 별개의 음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다양한 시도를 통해 ‘꿀 조합’으로 서로 묶이게 된 것이다.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진지한 고민이 새로운 짝꿍을 탄생시키고, 어떤 음식들은 쌍둥이처럼 꼭 함께 먹는 일이 하나의 식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점이 재미있다.


오늘의 음식은 이 조합이 맛있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그래서 전국 식당에서의 스테디셀러였던 것이, 아예 브랜드로 떨어져 나와 세트 메뉴 출시까지 된 사례다. 내겐 이 음식을 파는 식당이 너무나 반갑다. 돼지갈비와 냉면 조합을 좋아하지만, 이 맛을 즐기자고 식당에서 고기 2인분을 주문하고 후식 물냉면까지 먹을 자신은 없는 소식가. 만 원 이하로 적당히 배부르게, 이 ‘꿀 조합’을 즐길 수 있게 해 주다니. 소식가를 구원해 줄 고마운 메뉴 아닌가. 다만, 그 집 고기는 갈비가 아니라 불고기 느낌의 다른 부위 고기라는 점은 아쉽다. 아마 앞다리 내지는 뒷다리 부위일 것이다.


그렇다면 냉면과 숯불갈비. 이 둘을 같이 먹었을 때 왜 그렇게 맛있는가. 일단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달콤하다는 것. 숯불에 구워 나오는 갈비는 달짝지근한 양념에 재워져 혀를 자극하고 냉면은 설탕을 아낌없이 넣은, 양지육수와 동치미국물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국물이 참 달다. 차이점은? 온도라고 할 수 있겠다. 뼛속까지 시원하게 만들어 주는 냉면과 뜨거운 불향을 입은 갈비는 서로의 극명한 온도를 감싸 안으며 입안에서 어우러진다.


솔직히 냉면은 단독으로 먹고 싶지는 않은 음식이다. 분명 새콤달콤하니 밋밋하지 않은 맛인데도, 다른 시원한 면 요리들도 많기 때문에 그중에서 굳이 선택할 만한 매력이 없다고 느낀다. 그러나 갈비와 만났다 하면 냉면만큼 맛있는 면 요리가 없다. 얇고 조금은 질깃한, 메밀과 감자 전분으로 만든 면은 고기를 꼭꼭 씹는 동안 분해되어 잘 넘어간다. 거기에 시원한 국물을 마셔 주면 입맛도 돋울 수 있고 무더위까지 싹 달아난다. 여름에 최고로 맛있지만, 덥지 않을 때도 당기는 맛이다.


돼지갈빗집에 가면 주인공은 갈비와 양파채, 흰 쌀밥이지만 냉면의 자리는 꼭 남겨 둔다. 갈빗집에서 냉면을 한 젓가락이라도 먹지 않으면 허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냉면을 한 그릇씩이나 먹고 싶은 건 아니다. 참 냉면 입장에서는 섭섭할 것 같기도 하다. 고깃집에서 안 먹고 가면 안 된다, 노래를 불러 놓고는 한 그릇씩 먹어 주지 않고 여럿이 나눠서 먹다니. 왜 나를 위해선 위장을 온전히 내어 주지 않느냐고. 그럴 수 있는 거 아닌가.


냉면이 항상 누군가에게 우선시되어 본 적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 처지가 슬프다. 선택의 상황이 왔을 때, 나는 환영받지 못할 것임을 직감으로 깨닫고 있는 사람. 구석에 밀려나게 되리란 걸, 분명히 그렇게 될 것임을 알고 있어 그 순간을 직면하기까지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 누구나 한 번쯤은 ‘뒷전’이 되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에게도 내 짝이 되어 줄 누군가는 있다. 내 마음을 알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말이다. 여태껏 단 한 명도 없었다면 그건 내 마음의 문이 닫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혹은 나도 모르게 사람을 상처 주고 있었을 수도 있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면 자책하기보다는 반성하고 고쳐 나가면 된다. 사람은 생각보다 매정하지 않다는 걸,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기 시작한 뒤로 알게 됐다. 그렇다. 사람을 사귀기 점점 어려워지는 건 ‘여기까지’일 거라고 미리 빗장을 걸어두는 태도 때문일지도 모른다.     


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데여도 보고 혀에게 미안한 짓도 해 보고, 산전수전 겪어 본 끝에 찾아낸 식(食)연. 그것이 우리가 오늘날 즐기는 찰떡궁합 음식들이다. 이미 잘 알기에 맛있는 음식도 좋지만, 나의 특별한 궁합을 찾아보고 싶다. 괴식은 입에도 안 대고, 무난하게 맛있는 걸 찾는 편이라 새로운 시도가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음식부터 도전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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