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칠판과 후보로 출마한 애들의 하얀 이름. 일렬로 줄지어 앉은 아이들. 작은 쪽지와 그 안에 적힌 글자를 가리기 위해 꼬물거리는 손. 쪽지가 한 장 한 장 펼쳐질 때마다 술렁이는 좌중의 분위기. 개표가 끝나면 이내 들려오는 소리들―내가 너 뽑았어, 잘했어, 축하해, 하는 격려의 말들과 아깝다, 이길 수 있었는데, 어차피 인기 투표잖아, 하는 탄식이 혼재하는 교실.
반장들은 당선되고 나면 한 번쯤 거쳐 가는 관문이 있다. 필수는 아니지만 적어도 초등학교 때까지는 매년 ‘이것’을 하지 않는 반장이 없었던 것 같다. 바로 햄버거 쏘기다. 주로 수업이 일찍 끝나는 수요일이나 격주에 한 번 있는 ‘놀토’에 이런 이벤트가 생겼다. 메뉴는 불고기버거와 작은 캔콜라로 통일. 브랜드는 다른 어디도 아닌 늘 롯○리아. 반장 어머니가 사 주시는 햄버거는 예고 없는 깜짝 선물인 경우가 많았다. 생각지도 못한 채 받는 간식이어서 그런지 더 떠들썩하게 즐겼던 것 같다.
나도 햄버거, 특히 불고기버거를 좋아했지만 항상 그 자리에서는 먹지 않았다. 따뜻한 온기가 가시기 전에 가방에 넣어 두고 집에 갈 시간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한 입도 대지 않은 불고기버거는 집에 와서야 비로소 종이 포장지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이 행동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가족들과 나눠 먹기 위해서였다. 콩 한 쪽도 나눠 먹자는 게 내 신념으로 단단히 자리 잡고 있어서였을까? 나는 펼친 손보다 조금 큰 불고기버거를 몇 등분으로 잘라서 나눠주었다.
어쩌면 햄버거를 사 먹는 일이 흔치 않아서였는지도 모른다. 우리 집은 집밥 위주로 식사를 했고, 피자, 치킨, 햄버거 같은 건 자주 먹지 않았다. 하기야 어릴 때부터 패스트푸드 맛에 길들여져서 좋을 건 없다. 매일 영양가 있고 맛 좋은 집밥을 차려 주시니 감사한 일이지만, 한창 자극적인 바깥 음식 맛이 궁금할 나이 아닌가. 건강에는 나빠도 달고 짜고 기름진 음식이 얼마나 반가웠겠나? 그런데, 또 짐작 가는 원인이 있다. 예부터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꼭 나눠 먹는 게 우리 가족의 정서였고 따라서 나도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맛있는 걸 혼자만 먹으면 쓰나. 그런 나름의 의리였나 보다.
달짝지근한 불고기 소스에 마요네즈 소스, 부드럽게 넘어가는 패티, 소스에 잔뜩 절여진 시들시들 양상추. 불고기버거는 초등학생이었던 내 입에 그토록 맛있을 수가 없었다. 품질로 따지면 그때 그 불고기버거는 요즘 인기인 수제 버거에 명함도 못 내밀겠지만, 진지하게 보면 둘은 다르게 맛있다. 수제 버거의 육즙과 불향이 가득한 패티는 정말 고기 맛을 즐기고 싶을 때 먹으면 좋고, 그 불고기버거는 패티가 부드럽고 깔끔하게 먹기 편한 버거를 원할 때 안성맞춤이다. 한마디로 헤비급과 라이트급의 대결이란 얘기다. 상황에 따라 먹고 싶은 게 달라질 뿐 둘 다 좋다.
불고기버거를 먹으면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더 있는데, 초등학교 사 학년 무렵 특별 개설된 합창단에서 활동했던 적이 있다. 면접이고 신청서고 통과 의례도 없었다. 그저 하고 싶다는 의사만 표명하면 합격이었다. 노래를 잘하지도 않고 합창을 해 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던 친언니를 따라 합창단에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입 모양을 크게 하며 노래를 부르는 것도, 1교시 전에만 등교하면 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아침 일찍 합창단 연습실에 가야 하는 것도, 직설적이고 시원시원한 성격의 담당 선생님도, 한두 학년 위의 언니들을 마주쳐야 하는 것도 그랬다. 무작정 들어온 거라 친한 동갑내기도 없었다.
그럼에도 합창부 활동을 계속했던 건 역시 합창이 주는 짜릿한 쾌감 때문이었다. 소프라노, 메조, 알토 세 갈래의 톤이 만나 황홀한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한 명 한 명의 목소리는 별거 아닐지 몰라도, 함께 어우러지는 순간에는 그 누구의 것보다 아름답고 청아하게 울려 퍼진다. 또 합창에서는 한 사람만 빛나는 것이 아니었다. 나란히 서서 목소리를 보태는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열심히 연습한 보람을 공평하게 느낄 수 있는 이 행위가 나는 점점 좋아졌다. 하나의 무대를 선보일 때 관객이 받는 감동을 당사자인 나도, 아니 어쩌면 내가 더 크게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합창부 연습을 갈 때 제일 걱정했던 부분은 ‘혹시나 한 사람씩 노래를 불러 보라고 시킬까 봐’였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가끔 부르고 싶어 하는 사람만 지목해 한두 소절 불러 보게 하신 적은 있었던 것 같다. 선생님은 부드럽고 상냥한 분은 아니었으나 부러 아이들을 곤란하게 하지도 않으셨다. 특히 나처럼 소심한 아이에게는 교정도 더 조심스럽게 해 주시는 게 느껴졌다. 물론 특유의 소탈한 말투는 그대로였다. 내 눈을 보면서 ‘얘는 눈이 그렁그렁해 가지고 꼭 우는 줄 알았다’고 하시던 선생님의 말씀이 아직도 생각난다.
아침 시간과 특별활동 시간, 때로는 방과 후까지 꾸준히 연습한 끝에 우리는 지역 대회에 참가하게 됐다. 그동안은 교내 행사 때 한두 번의 공연이 전부였는데, 대회라는 이름이 주는 사명감은 남달랐다. 합창은 개개인이 뛰어난 역량을 뽐낼 필요는 없지만 단 한 명의 실수가 화음을 망칠 수 있었다. 그래서 실수 없이 전체에 완벽히 녹아드는 것이 중요했고 나도 잘해야겠다는 마음보다는 내 몫을 해내자는 다짐으로 임했다. 세일러 카라가 달린 블라우스와 주름치마 단복을 입고 대회장으로 가던 그날, 무척이나 비장하게 관광 버스에 올랐더랬다. 무작위 추첨으로 결정된 순서는 마지막이었고 우리는 열심히 준비한 만큼 멋지게 완곡하는 데 성공했다. 솔직하게 일등도 기대했었다. 결과가 발표되었고, 전체 이등이었다. 일등을 차지한 학교는 합창에 베이스리코더를 비롯한 각종 악기를 동원해 웅장한 무대를 만든 팀이었다.
일등을 가져가지 못한 건 못내 아쉬웠다. 그러나 공연을 펼치는 동안 나는 우리가 함께 이룬 고운 소리에 진심으로 벅차올랐다. 오로지 목소리만으로 감동을 주었다는 점이 우리 합창부의 자부심이었다. 그랬기에 그 서운함은 순간으로 남을 수 있었다. 공연이 다 끝나고 학교로 돌아왔을 때 선생님은 우리에게 햄버거와 캔콜라를 하나씩 들려주셨다. 최선을 다했다, 수고 많았다는 말과 함께였다. 대회 전 연습 때도 받았던 그 롯○리아 불고기버거였다. 나는 언제나처럼 버거를 챙겨 가 집에서 먹었다. 분명 배가 하나도 안 고팠는데, 한입 먹고 나니 허기가 느껴졌다. 대회에 힘을 많이 쏟아서 그랬는지 너무너무 맛있었다. 그날은 온전히 하나를 다 먹었다.
어른 입맛이 되기에는 아직 멀었고, 식당에 가면 ‘어린이에게 추천’한다고 떡하니 쓰인 달콤한 불고기, 갈비, 데리야끼 등의 메뉴에 눈길이 간다. 어린이 입맛이다. 그렇다고 해서 불만은 없다. 단맛이 좋은 걸 어쩌겠는가. 당뇨를 걱정할 만큼 먹지도 않는다. 이따금 걱정은 된다. 입맛만 어린 게 아니라 책임 의식까지 어리면 어떡하지?
커갈수록 누군가의 뒤에 숨을 수 없는 상황들이 하나둘 생긴다. 성인이 된 직후에 느꼈다. 이제부터는 많은 것을 알아서 해야 하며, 누군가 할 일을 정해 주지도 알려 주지도 않는다는 걸. 처음에는 자율적이라 좋지만 지내다 보면 규율이 얼마나 우리를 살기 편하게 해 주었는지 깨닫는 순간이 온다. 하다못해, 누구나 하는 게 아르바이트지만 내가 일자리를 찾아 행동하지 않으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스스로 발품 팔아야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게 된다. 오롯이 내 몫으로 감당해야 하는 일들이 아직은 버겁다. 성인이니 마냥 어리다고 할 수 없지만, 선택과 과오를 감당하기엔 너무 미성숙한 것 같다. 사회생활을 겪은 인생 선배들이 보면 나는 더 헤매도 된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자꾸 작아지려고 할 때면 주변을 둘러본다. 내 얘기를 들어주고 자기 얘기도 털어놔 줄 누군가를 찾아간다. 우리가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는 것. 그걸 서로가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해결책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아마 안 나올 것이다. 그건 나를 들여다보면서 찾아야 하니까. 어느 구멍을 파고 들어가야 그나마 덜 지치면서 계속 팔 수 있을지를 우리는 치열하게 고민한다. 그러다 지치면 거실로 나와야 한다. 다른 누구와 연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몇 등분 조각난 햄버거를 하나씩 나눠 드시라. 작은 한 조각, 그 이상의 에너지를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