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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은 Dec 23. 2022

솜사탕 스키야키 (샤브샤브와 나베)




솜사탕 스키야키라는 게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 건 전적으로 친구의 영향이었다. 먹는 것을 즐기는 그는 실패 없이 한 끼를 맛있게 해결하는 일에 제법 진심인 모양이었다. 예전부터 그 친구와는 음식을 주제로 오고 가는 대화의 흐름이 자연스러웠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그 음식이 왜 맛있는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인 그와 솜사탕 스키야키를 함께 먹으러 갔다.



한데, 솜사탕 스키야키는 스키야키 위에 솜사탕을 얹어주는 것이 아니었다. 빈 냄비에 덩그러니 솜사탕이 놓여서 나왔고, 곧이어 육수가 부어졌다. 솜사탕은 찰나의 순간 그릇 위에 머물다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팔팔 끓는 국물 위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모습을 기대했는데. 그렇다면 이건 솜사탕이 육수에 함유된 스키야키, 결국은 설탕이 별도로 첨가된 스키야키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메뉴 이름에 병기되어 있을 정도라면, 심지어 그 음식을 먹어 보게 만드는 특이점이 거기에 있다면 보다 존재감이 명확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크게 기대감을 갖고 있지 않던 나도 실망했는데, 내 맞은편의 그는 더더욱 그래 보였다. 그가 먹고 싶다던 '솜사탕 스키야키'는 사실 설탕이 더 들어간 그냥 스키야키였던 것이다.



이젠 음식 맛이 좋기를 바라야 했다. 따로 나온 각종 재료들을 손님이 육수에 담그고 조리하는 방식이라 맛없기가 어려웠지만, 육수와 소스가 맛없거나 재료의 질이 나쁘다면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곁을 떠나버린 솜사탕은 잠시 잊고 맛있게 만드는 일에 집중했다.



스키야키를 먹는 과정은 특별할 것이 없다. 육수와 간장소스에 숙주, 청경채, 팽이와 느타리버섯, 양배추를 넣고 적당히 숨이 죽을 때까지 익힌다. 여기엔 두부도 함께다. 얇게 저민 등심과 차돌 고기는 금방 익어버리니 조금씩 나누어 투하한다. 너무 질겨지지 않게 붉은기가 가셨을 때쯤 고기를 건져 다른 채소와 함께 먹는다. 찍어 먹는 소스는 달걀 노른자가 기본이고, 간장 소스 등과 먹기도 한다.





스키야키는 샤브샤브와 굉장히 비슷한 음식이다. 그러나 명칭이 다른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 그 차이는 국물의 양에서부터 드러난다. 확실히 스키야키의 국물은 자작한 반면 샤브샤브는 탕에 가까울 만큼 국물이 넉넉하다. 그러니 뜨끈한 국물을 마시고 싶다면 스키야키가 아닌 샤브샤브를 주문해야 한다.



또한 조리 방법에서도 둘의 다른 점을 찾을 수 있다. 스키야키는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조리한다. 하나는 간장 소스 다레에 고기를 비롯한 모든 재료를 한꺼번에 넣어 익히는 관동 지방의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고기를 먼저 구운 다음 다레와 나머지 재료를 넣어 익히는 관서 지방의 조리법이다.


사실 우리가 접하는 스키야키는 둘 중 어느 하나라고 짚어 말하기 어렵다. 재료들을 따로 내어 주고 직접 넣어 먹게끔 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보통은 소스에 채소를 먼저 넣어 양념이 배도록 익혀 주고, 고기를 나중에 넣어 익혀 먹는 것으로 보인다. 관서식과는 반대다. 굳이 가리자면 관동 지방식의 변형쯤으로 할 수 있을까.


반면 샤브샤브는 끓는 국물에 쇠고기를 살짝 담가 익혔다가 건져서 소스에 찍어 먹는 식이다. 여기서 핵심은 잠깐 동안 담갔다 바로 건진다는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 시리즈에서 본 적이 있으리라. 젓가락으로 고기만 집어 끓는 육수에 빠르게 담그고, 익자마자 날름 집어 먹는 얌체 같은 그 모습을. 그때만큼은 유리 엄마에게 이입해 짱구의 얄미움에 치를 떨지 않았던가. 여하튼 샤브샤브는 그렇게 분주한 음식이다.


결국 스키야키와 샤브샤브는 국물이 적느냐 많느냐, 쇠고기를 평범하게 익혀 먹느냐 담갔다 건지느냐의 차이라고 보면 되겠다. 기호에 따라 골라 먹으면 된다.

한편 스키야키, 샤브샤브와 함께 떠오르는 음식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나베다. 나베란 또 무엇인가 하니 일본어로 냄비 혹은 냄비 요리를 뜻하는 말이란다. 따라서 스키야키와 샤브샤브는 모두 나베 요리에 해당한다. 서로 다른 종류의 나베인 것이다.


나베 하면 밀푀유나베를 빼 놓을 수 없다. 밀푀유나베의 경우 쇠고기와 배추, 깻잎 등이 주재료이며, 고기와 채소를 비롯한 모든 재료를 냄비에 담아 끓이는 전골 요리다. 이 세 가지 재료가 한 겹씩 번갈아 겹쳐져 있는 모습이 '밀푀유'라는 프랑스 디저트와 닮아 밀푀유나베라는 이름이 붙었다. 밀푀유는 '천 개의 잎사귀'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의미와 실제 음식의 형태를 비교해 보면 제법 알맞게 지은 이름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밀푀유나베 역시 스키야키, 샤브샤브와 재료가 비슷해 헷갈릴 수 있지만 밀푀유처럼 주재료들이 겹겹이 담긴 모습이 큰 특징이기에 비교적 구분이 쉽다.




다시 우리의 솜사탕 스키야키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면 다행스럽게도 스키야키의 맛은 좋았다. 날달걀 외에도 찍어 먹을 소스가 다양해 골라 먹는 재미도 있었다. 한순간에 녹아 없어진 솜사탕 스키야키는 어쩐지 속은 기분을 안겨줬지만, 맛으로는 사람을 속이지 않는 음식이었다. 한번의 실망이 있었던 덕분에 더 기억에 남을지도 모르겠다. 항상 기대했던 결과를 얻을 수는 없지만 그 불일치로부터 새로운 의미를 얻어가는 우리네 인생. 내게 솜사탕 스키야키는 그렇게 새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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