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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은 Feb 01. 2024

만약을 상상하게 하는 쫄면순두부, 치즈알밥

나를 감동시킨 조합




세상에는 (위장의 넉넉하지 못한 용적량이 미울 정도로) 맛있는 음식이 많다. 나와 같은 소식가들은 공감할 테지만, 원체 식욕이 없어 적게 먹는 게 아니라 더 먹고 싶은데도 허용 수치를 넘어서는 바람에 '못' 먹는 일이 부지기수다. 이미 배부른 상태에서 더 먹었다간 괴롭고 몸이 불편해지기 때문에- 숟가락을 내려놓는 것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외식을 할 때면 1인분은커녕 0.5~0.6인분밖에 책임지지 못하니 지불한 돈이 아까워지기 일쑤. 아아, 슬프도다. 모든 식당이 0.5인분부터 시작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가격은 1인분의 절반 수준. 그렇게 된다면 내 몫의 0.5인분을 주문하고, 나눠 먹을 메뉴를 0.5인분 추가해서 다양하게 즐기면서도 남기지 않고 먹을 수 있을 텐데.


행복한 상상이긴 하지만 이것이 실현되려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예측하기 어렵지만 1인 가구가 점차 증가하는 지금이라면 머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인 가구 34%의 시대에 창업 아이템을 찾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글을 읽어주길 바란다. '0.5인분씩 판매하는 쩜오식당: 메뉴는 차돌된장찌개, 김치찌개, 순두부찌개, 제육볶음, 돈가스, 국수 등등. 물과 식기는 셀프. 포장, 배달 가능' 혹시나 정말 창업하게 된다면 아이디어 인센티브 조금만 챙겨주시면 감사하겠다…. 진심이냐고 물으시면 아주는 아니고 살짝 진심이다.


자, 나 혼자 상상 시간은 여기까지다. 사족이 길었다만 아주 상관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번에 이야기할 조합은 따로따로 시키기엔 도저히 아쉬워 둘을 함께 시킬 수밖에 없는 환상의 짝꿍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 못 먹을 줄 선명히 알면서도 나는 주문해야 했다. 쫄면 순두부와 치즈알밥 세트를 말이다.



한창 점심시간인 12시 30분. 앉을 자리가 없어 기다리는데 4인석에 자리가 났다. 직원이 혼자 온 나를 그리로 안내하시기에, 이렇게 해도 (가게 입장에서) 괜찮나 생각하다가도 그냥 앉았다. 이따 옮겨 달라고 하진 않을까 싶어 느릿느릿 움직이는데 아니나 다를까, 2층 자리로 옮겨 주실 수 있느냐는 부탁이 들어왔다. 이럴 줄 알았기 때문에 바로 짐을 챙겨 계단을 올라갔다. 반전이었던 건 2층의 남은 자리도 4인석이었다는 것이다. 이건 예상 못했는데! 잠시 주춤했더니 그 자리에 앉으면 된다고 하신다. 아무튼 대기하는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더 편안하게 '혼밥' 할 수 있어서 도리어 좋은 일이었다.


테이블마다 비치된 태블릿형 키오스크로 주문을 마치고, 잠시 기다리니 일명 '쫄순'이라 불리는 쫄면 순두부찌개와 치즈알밥이 나왔다. 오색찬란한 치즈알밥의 비주얼과 고소한 버터 냄새에 한 번 홀리고, 쫄면순두부의 팔팔 끓는 국물에 군침이 돌았다. 쫄면순두부에서 가장 특색 있는 점은 역시 쫄면이 들어간다는 것. 솔직히 면 중에서 목구멍에 걸릴 것 같은 쫄면보다는 쑥쑥 넘어가는 소면을 좋아하지만, 순두부찌개에 들어가는 면이라면 완전히 색다르다. 고춧가루로 매콤하고 칼칼하게 끓여낸 찌개 국물이 배어난 쫄면이라니! 쫄면 한 가닥 한 가닥의 탄력적인 존재감을 느끼자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탱글한 식감이 주는 즐거움은 알알한 매운맛도 잠시 잊게 만들어 준다.


면이 불기 전에 앞접시에 덜어놓고, 이번엔 순두부를 한움큼 떠다 맛본다. 만든 모짜렐라 치즈를 도톰하고 둥그런 도막으로 썰어낸 같은 모양의 귀여운 순두부가 들어 있다. 찰랑거리는 것이 꼭 푸딩과도 닮아 있다. 쫄면이 통통 튀는 매력으로 신선함을 더해 주는 감초라면 순두부는 얼얼한 혓바닥을 말캉하게 감싸주는 이 찌개의 근본이자 든든한 주인공이다. 먹다 보니 순두부를 넣은 매운 라면도 생각난다. 자극적인 얼큰함이지만 그렇게 짜고, 맵지는 않다. 치즈알밥 한 술이면 또 다른 신세계가 펼쳐진다.



치즈알밥은 녹아내린 모짜렐라 치즈와 날치알, 버터, 달걀, 김가루, 그리고 단무지, 우엉(으로 추정)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어떤 재료 하나도 빼놓을 수 없을 만큼 각자의 역할을 분명하게 해내고 있어서,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콕 짚어 말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치즈알밥이었다. 버터는 고소한 풍미와 밥의 전체적인 융화제로서 부드러움을, 날치알은 톡톡 터지는 식감을, 치즈와 구운 김가루는 짭조름함과 고소함, 달걀은 부드러움, 단무지와 우엉은 새콤달콤한 자극과 아삭거리는 식감을 담당하고 있다. 치즈알밥은 먹다 보면 다소 느끼할 수는 있지만, 그 풍부한 맛으로 혀를 단번에 현혹시킨다. 혼자서도 충분히 완벽한 치즈알밥이 쫄순과 만나는 순간 느끼함은 싹 가시고 아릿함을 잡아주는 부드러운 힘으로 속을 든든하게 채워준다. 둘은 서로가 있을 때 비로소 완전해지는 것이다! 감동적인 조합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다.


야속하게도 쫄면순두부와 치즈알밥이 각 1인분씩 푸짐하게 나오는 탓에 이 맛있는 조합을 남김 없이 해치우기란 불가능했다. 분명히 맛있게 먹었는데, 배가 부른 통에 제법 많이 남아버리면 이걸 본 사장님이 '저 손님에겐 음식이 맛없었나 보다'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괜스레 걱정이 된다. 그럴 땐 '맛없어서 남긴 게 아니고 제 한계치가 낮은 겁니다'라는 메모라도 남기고 싶을 지경이다. 그래도 이날은 선방하여 절반 이상은 먹고 나왔다. 저녁을 깨작거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양이 더 적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If~'가 머릿속을 맴돈다. 조합도 0.5인분 옵션이 있었다면,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고는 오늘 하루도 군더더기 없이 먹었다 자족하고 있었겠지… 충분히 못 먹은 것이 아쉬워서 만약을 상상할 만큼 매력적이고, 모두가 알았으면- 바라게 되는 쫄면순두부와 치즈알밥 콤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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