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a Dec 17. 2022

자이언트 얀 가방을 만들며 '과정'을 생각하다

세 아이와 함께 하는 수공예 시간

바람이 시리게 찬 계절에는 뜨개질이 생각난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뜨개질 하는 교회 언니의 어깨너머로 기본 뜨기를 익혔다. 이후 천 원짜리 빨간 털실 한 뭉치가 꼬불꼬불 라면이 될 때까지 뜨고 풀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초등학생 나이인 우리 아이들과 실로 이것저것 만든다. 홈스쿨링 수공예 시간인 셈이다. 직조, 수놓기, 펀치니들, 마크라메까지 아주 짧게나마 발을 담갔다. 그중에 우리는 직조를 가장 좋아했다. 직조 틀에 실을 끼우고 위아래 방향으로 실을 엮으면 손가방이 되고, 작은 오너먼트가 됐다. 아이들은 자기 손으로 작품을 만들었다는 뿌듯함을, 나는 작은 손을 요리조리 움직이며 온 정성을 쏟는 아이들에게 감동을 느꼈다. 올해는 천 안에 솜이 채워져있는 자이언트 얀으로 가방을 만들고 있다. 우연히 길에서 본 땋은 머리 같기도 하고 체스판처럼 보이기도 하는 가방이 맘에 쏙 들었다. 내가 조금만 도와주면 아이들도 가방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몇 가지 색을 골라 장바구니에 담았다. 다음날, 이름처럼 무게도 자이언트 급의 박스가 도착했다. 수도 호스가 돌돌 말려있는 듯한 모양의 자이언트 얀은 도톰하고 포근했다. 내가 먼저 작은 손가방을 만들어 봤다. 영상을 보고 순서대로 만들면 어렵지 않다. 가방 바닥이 되는 부분을 너무 느슨하게 묶어서 다시 시작해야 했지만, 사오십분 만에 가방 하나를 만들 수 있었다. 아이들은 귀여운 가방 모양새에 감탄하면서 자기도 얼른 하고 싶다고 아우성이었다. 



딸은 검은색 실을 골랐다. 손이 워낙 야무진지라 매듭도 촘촘하게 잘 짓는다. 가방 바닥과 옆면을 뚝딱 만들었다. 영상 속 선생님처럼 고르게 되지 않는다고 뾰로통해졌다. 난 딸의 모습이 그날따라 기특하게 느껴졌다. 선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최고의 것을 주고픈 딸의 진심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가 정성 들여 만든 가방을 받은 이모들이 기뻐했으면 좋겠다. 다음은 막내. 6살 아이도 직조 방식으로 실을 엮으면 가방을 만들 수 있다. 산책할 때 쓸 가방을 완성하기 위해 통통한 두 손이 바쁘다. 사오십 분쯤 지났을까. 쁘띠 사이즈의 가방은 우람한 아이의 몸집을 한층 도드라지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가방을 들고 발랄하게 뛰는 아들을 보며 난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 가방에는 산책길에 발견한 아들의 작은 보물들, 돌이나 나뭇가지, 꽃잎, 나뭇잎으로 채워질 것 같다. 마지막으로 우리 첫째. 섬세한 성향답게 막내와 같은 가방을 만들어도 훨씬 꼼꼼하다. 실 사이의 간격을 일일이 맞춰가면서 매듭을 짓는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려도 완성도가 높다. 가방이 촘촘하고 쫀쫀하다. 미니 곤충 도감을 넣을 손바닥만 한 가방이 건장한 아들의 체격과 대비를 이룬다. 어깨 끈을 가로질러 멘 아들의 자태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앳된 티를 벗기 시작한 10살 아들은 내 눈에 여전히 귀엽고 사랑스럽다. 



몇 시간 안 되어 가방 몇 개를 뚝딱 만들었다. 이때까지 아이들과 해 본 털실 공예 중에 결과물이 가장 그럴듯하고 실용적이다. 가방이 하나씩 쌓이는 걸 보며 얼른 또 만들고 싶어졌다. 그런데, 올해는 다른 이유에서 이 수공예 시간이 가치있게 느껴진다. 소소하지만 함께 작품을 만드는 공예 시간은 ‘과정을 함께 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 과정은 어떤 재료로, 무엇을 만들지 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재료가 도착하면 만드는 방법을 반복해서 보고 익혀야 한다. 실을 손에 쥐고 매듭 크기를 같이 정한다. 실을 한참 엮다가도 실수하면 실을 다 풀어야 한다. 모양이 갖춰질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뜨기를 반복한다. 이때 평소에 무엇을 해도 설렁설렁하던 아이는 꼼꼼함을 배운다. 완벽함을 추구하던 아이는 실수해도 괜찮다는 여유를 느낀다. 지루할 수도 있는 이 시간에 셋은 실을 꼬는 감을 잡고, 자기만의 속도를 찾는다. 나는 과정을 함께 하는 이 시간이 참 좋다. 마치 우리의 홈스쿨링 여정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한 달을 어떻게 보낼지 함께 계획하고, 준비물을 갖춘다. 똑같은 모양의 매듭을 엮듯이 비슷한 오전 일과를 반복한다. 열심히 하다가도 삐끗거리는 부분이 있으면 고치고 더 나은 방법을 배운다. 때로 아이들은 스스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열의를 보이며, 하루를 보내는 속도와 감을 찾아간다. 아이들 덕분에 나도 같이 배우고 자란다. 방 한편에 차분히 놓인 가방을 보며, 매일 부지런히 엮는 우리 일상을 생각한다. 비싼 돈을 줘도 살 수 없는 우리 가방을 보며, 어떤 값을 준다 해도 바꾸지 않을 나의 삶을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할머니, 저 잘했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