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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맛밤 Nov 04. 2023

누가 똥꼬 소리를 내었는가?

인생은 타이밍

 망생이가 된 지 4년이다. 10년 내다보고 시작한 길이었기에 절반쯤 온 것. 그 사이 9명이나 되던 스터디원은 둘이 되었다. 2명이라는 숫자는 있을 수 없는 일도 만들어냈다. ENTJ 둘이 짝짜꿍 하며 마감을 미룬 것이다. 신선한 자극이 필요한 그 때, 브런치 작가 지원 프로젝트를 보았다. 바로 달력을 펼쳐 모집 시작 날짜에 별표를 쳤다.


 브런치 과제를 받고, 처음 단막극을 쓸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긴장과 설렘이 반반, 토핑으로 걱정 약간. 걸을 때나 씻을 때나 글 쓰는 생각으로 꽉 찼다. 남매가 잠들면, 아메리카노를 텀블러에 담아 식탁에 앉는다. 태블릿으로 조성진 피아노 연주 영상을 틀고 노트북을 켠다.(오래된 글쓰기 루틴이다.) 타닥타닥 키보드소리는 마치 불멍 때리며 자작 타는 소리 듣는 것처럼 기분 좋았다. 잠이 슬 올 때는 단톡방에 들어가 벽타기를 하고 다시 써 내려갔다.


 11월 3일 금요일. 줌으로 은경쌤과 동기들을 만날 생각에 들떠있었다. 톡방 분위기도 그랬다. 우리 2기 애칭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똥꼬들?

첫 수업에서 한 동기분이 “고추 묻고, 똥꼬 더블로가!”라는 제목을 뽑아낸 것이 시작이었다.

 

 수업이 20분쯤 지났을 때, 하와이의 네트워크 환경 문제로 잠시 중단되었다. 그 사이 톡방은 똥꼬릴레이 중이었다.

톡을 보며 나도 미소했다. 한 치 앞을 못 보고.


 수업 후반부에 들어서며 앉아있는 게 불편했다. 줌이라 다행이었다. 티 안 나게 하반신만 움직거릴 수 있으니. 예상시간보다 고작 몇 분 늦게 끝났는데, 식은땀이 송글 맺혔다. 샤워를 하고 자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내 똥꼬가 이상하다. 변비도 없고 불편한 것도 없었는데. 설마 이게 치질? 피곤한 탓이라며 고개를 젓고 누웠다. 빨리 잠들어봐야겠다고 다짐하고 머릿속으로 두 번째 발행 글 내용을 전개시켜 보았다. 장르가 스릴러도 아닌데 온몸에 땀이 축축했다.


 새벽 3시 30분. 큰일 난 것 같다.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켜 머리를 감고 샤워를 했다. 여자들이 출산 신호가 오면 하는 행위들인데, 갑자기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겨우 씻고 나와 냉장고를 열었다. 밥이 없다. 쌀과 잡곡을 분량에 맞게 휘슬러 압력밥솥에 넣었다. 물 붓고 불 켜는 것 정도는 남편이 할 수 있으니. 딸의 발레가방도 챙기고, 외출복도 양말까지 세팅해 뒀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남편은 꼭 전화를 하더라.)


 아침 7시가 되었다. 먼저 일어난 큰 아이 드림렌즈를 빼주고 세척해서 넣었다. 딸이 나와 투정 부리려다가 심상치 않은 엄마 상태를 보고 한 마디 했다. “ 엄마 설마 입원하는 거 아니에요?” 덜컥 겁이 나서 아닐 거라 하고 집을 나섰다. 병원문은 9시에 열지만 꼭 1등으로 가야 했다. 버스에 올라타는데 이미 하반신은 내 것이 아닌 기분이었다. 그저 악 소리만 단전에서부터 올라왔다.


 병원문은 열려있었다. 입원 병실이 있어서 간호사 한 분이 접수를 받았다. 상태를 보더니 입원해야겠는데요? 하신다. 보통 수술 바로 하냐 물었더니, 이렇게 거의 기어서 온 경우는 다 그랬다고 한다. 환자분은 운이 좋단다. 아침에 예약 취소건이 있어 마침 병실이 났다고. 아니었으면 월요일에 다시 왔어야 한다며. 그래 내가 소문난 금손이긴 했지. 별 걸 다 뿌듯해하다가 선생님을 만나고, 하반신 마취를 하고, 수술하고 입원까지 딱 1시간이 걸렸다.



지금, 병원 1인실에서, 역시나 조성진이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을 들으며 글을 쓴다. 글감을 기가 막히게 찾아낸 내 인생이 레전드.


(제목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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