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보이던데
이 연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지만 연재를 시작함과 동시에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지만 연락을 주기적으로 하지 않는, 그리고 mutual 친구들을 통해 뭐하고 사는지 소식만 듣는, 그 정도 사이인 친구에게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
친구 : "뭐하고 지내? 잘 지내? 실리콘밸리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어"
작가 : "그냥 일하고 그러고 그럭저럭 지내지 뭐 ㅎ 일하고 사는 게 다 똑같지"
친구 : "너네는 몇 시에 출근해?"
작가 : "나? 음 글쎄 10시 반?"
친구 : "밥도 주지?"
작가 : " 응 그렇지"
친구 : "나도 개발자나 할까. 개발자 되려면 어떡해야 해?"
처음 이런 대화를 접했을 때는 기분이 나쁘다거나 하지 않았다 전혀. 그냥 아 내가 회사생활이 더 편한 거구나 그래서 그렇게 말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한번 두 번씩 더 생기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나는 두 가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본인들은 대학교 4년간 자기 전공 공부하면서 너무 힘들다고 나한테 하소연을 하고 대학교 졸업장을 딴 후에 취직도 너무 힘들게 힘들게 준비했다고 하더니, 갑자기 개발자가 되는 건 뭔가 그냥 어느 날 아침에 아 개발자 할까?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건가?
개발자가 뭘 하는지, 내 팀은 어떤 일을 하는 팀인지,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인지, 하루 일과는 어떤지, 어떤 부분이 어려운지 이런 건 묻지 않고 출근시간. 밥. 휴가 이런 걸로만 직업을 바꿀 생각을 하는 건가?
이런 나의 "나 좀 어이없다" 하는 이야기를 들은 다른 지인들은 "그냥 부러워서 하는 소리겠지 진짜 하려는 거 아니겠지"라고 하지만 나한테 문의했던 사람들은 상당수는 post-bachelor나 bootcamp 프로그램에 등록했었고 그중에 그걸 끝까지 견뎌낸 사람은 한 명뿐이다. 그 사람은 현재 구직 중인데 구직에서 살짝의 난항을 겪고 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개발자는 어렵다." "개발 공부를 해서 취직하는 건 더 어렵다" 하는 내용이 절대 아니다. 난 모든 직업이 다 나름의 고충이 있고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취지는 절대 아니다. 그렇지만 노래를 못하는 내가 가수 친구의 스포트라이트를 보며 "나도 가수나 할까" 라던지, 사업이 잘되는 친구를 보며 "나도 사장이나 할까" 하지 않는 것처럼 개발자를 보면서도 "나도 개발자나 할까"라는 말을 너무 쉽게 내뱉지 않는 mentality가 있었으면 싶은 생각이다.
정말 확고하게 하겠다고 하는 친구들에게 내가 하는 말이다. 이건 나의 경험에서 나오는 말이기도 한데
나는 대학교를 문과로 진학했다. 운이 좋게도 미국 대학교 학부로 왔기 때문에 전과가 비교적 쉬웠고, 공부라면 그냥 다 싫었던 나는 여러 과를 시도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전과를 3번이나 하게 됐고 그 마지막이 Computer Science였다.
당시 문과로 대학교에 왔는데 그 대학교는 컴퓨터와 공대가 강한 학교였고 그로 인해 내 주변 한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이과였고 굉장히 공부를 잘했다. 내가 컴퓨터로 전공을 바꾸고 이걸로 졸업할 것이다 마지막이다.라고 말했을 때 나는 대학교 2학년 1학기였고 2학년 2학기부터 컴퓨터 전공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미 컴퓨터를 하고 있던 내 친구들은 모두 말렸지만 난 반 고집으로 전과를 하게 되었다.
내가 전공을 바꾸는 거에 대해 우리 부모님은 관대하셨지만 학비는 4년만 도와주겠다고 했고 2학년 2학기에 과를 새로 시작하게 된 나는 2년 반 만에 전공을 해치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정말 매우 열심히 했고 그래서 졸업도 제때 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너무 지쳐서 취직을 할 때도 처음 오퍼를 받자마자 "아 드디어 끝났구나"하는 마음으로 다른 회사들의 결정은 기다리지도 않고 사인을 했다. 그런 과정을 겪은 나였기 때문에 주위에서 정말로 개발자로 pivot 하겠다는 사람들은 응원하고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개발자뿐 아니라 어떤 직업이나 전공으로도 pivoting은 절대 쉽지 않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 개발자의 삶에 대한 너무 얕은 정보만으로 결정하는 사람들은 응원하기 힘든 것 같다.
여기까지가 아마 개발자로서의 나 이전의 이야기는 아마 끝일 것 같다. 다음 글부터는 이제 내가 다녔던 회사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