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아한 술꾼 Jan 21. 2016

호주식 먹고 마시기 ②

나만의 호주 여행 기록

초행길에, 우리나라와 반대방향인 오른쪽 운전석의 차를 끌고 와이너리에 가서 음주운전을 하며 다닐 수는 없다. 물론 어떤 이유에서도 음주운전은 안되지만. 하여 유일하게 떠나기 전에 예약한 것이 와이너리 투어 상품이다. 폭풍 검색이 시작됐다. 영어 못하는 친구를 위해 가능하면 한국인 가이드 투어 상품을 찾고 싶었는데 실패했다. 한국인 여행사 상품을 뒤져봐도 와이너리는 대개 현지인이 가이드한다고 적혀있다. 그럴 바에 한국인 여행사 상품보다는 현지에서 운영하는 상품이 대게는 더 낫다는 것이 그동안의 경험이다. 단 하루도 망치고 싶지 않은 욕심에, 그것도 와이너리 투어는 더더욱 망치고 싶지 않아 온갖 리뷰와 상품 소개 내용을 읽어갔다. 가장 나아 보이는 두상품의 후보를 두고 고민하고 있는데, 우연히 호주 소셜 커머스에서 반값에 할인하는 투어 상품을 발견했다. 그래, 거기서 거기인데 반값 상품을 선택하자! 실제 예약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투어 전날이 되자 살짝의 불안감이 들었다. 모임 장소로 나갔는데 아무도 없으면 어떡하지? 혹시 사기일 경우, 한국에 돌아가서  환불받으려면 얼마나 또 귀찮은 절차들이 있을까. 환불은 둘째치고 망쳐버릴 하루는? 불안한 마음에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내 전화번호를 남기기까지 했다. 다행히 당일이 되니 모임 장소와 시간을 다시 공지해주는 문자가 와있었다. 신나서 약속 장소로 나갔다.


영국에서 온 노부부, 호주 다른 지역에서 멜버른에 놀러 왔다는 노부부, 인도에서 혼자 놀러 온 남자, 한국에서 온 우리 커플, 그리고 멜버른에서 공부 중인 젊디 젊은 20대 초반의 어여쁜 학생 세명. 오늘 함께할 열명이 모두 모였다.


한 시간 정도 차에 앉아있으니 야라밸리(멜버른 최대 와인 산지)에 도착했다. 본격적인 투어 전에 가이드는 우리 열명 보고 원을 만들라고 하더니  자기소개를 시켰다. 내가 이래서 단체 관광이 싫지만 할 수없지. "우리는 한국에서 여행 왔고, 내 동행은 영어를 힘들어하니 할 말 있으면 나에게 해라"가 내 소개의 주된 내용으로 간단히 넘겼다. 역시나 외국인들은 괜찮다,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주었지만 내 동행이 안 괜찮단다.   


첫 번째 Dominique  Portet라는 와인 저장고가 한눈에 다 보일 정도의 소규모 부띠끄 와이너리였다. 와이너리 책임자가 나와 와인 종류별 특성이나 제조 방식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준 후 7종류의 와인을 시음하게 해준다. 화이트 와인 3종류 -비싼 샤도네이, 저렴한 샤도네이, 소비뇽 블랑-, 레드 와인 3종류-까베르네 소비뇽, 쉬라즈 역시 비싼 것과 저렴한 것- 마지막은 달달한 디저트 와인으로 마무리. 곧바로 한국에 가져갈 달달한 디저트 와인 한 병과 샴페인 스토퍼를 기념품으로 샀다.


몇 번 와이너리 투어를 다녀보니 알게 된 것이 있다. 항상 처음 가는 와이너리가 가장 좋다. 처음 이런 투어를 다닐 땐 '다음 와이너리에서 사지  뭐'라는 생각을 보통 하는데 결국은  첫 번째 것이 제일 맛있었구나, 거기서만 파는 기념품이었구나 등등의 후회가 밀려오게 된다. 그래서 웬만하면 꼭 감동적인 무엇이 아니더라도 첫 번째 장소에서 마음에 드는 와인이나 기념품을 사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다음 일정은 점심시간.

여기서 반값의 비밀이 밝혀진다. 가이드가 손수 샌드위치와 과일 등을 준비해서 무료인 공원에 우리를 풀어놓고 점심을 해결하는 것. 대개의 투어 상품은 와이너리나 카페 한 곳에서 멋지게 스테이크 등과 와인 한잔을 먹으며 점심을 보낸다. 오늘은 와인이 중심이지 스테이크가 관건이 아니므로 나는 기꺼이 이 반값 점심을 받아들였다. 가이드 두 명이 정성스레 준비해준 샌드위치와 치즈 과일 등이 오히려 소풍 분위기를 한껏 만끽하게 해주었다. 준비 시간이 필요하므로 우리 열명을 강제로 공원 안에 있는 댐 구경을 하고 오라고 시켰는데 나쁘지 않았다. 5분 정도 걸어 올라가니 댐 꼭대기에 설 수 있었고 큰 저수지 풍경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살짝의 허기가 지게 만든 다음 먹는 샌드위치는 정말 맛있었다! 역시나 어리고 날씬한 여학생들은 한 개씩 더 먹더라. 나도 뭐.. 굳이 먹자 하면 더 먹을 수 있지만 많이 먹어서 살찐 거라고 스스로 생각되어 자제심이 발휘됐다.


두 번째 세 번째 와이너리는 예상대로, 첫 번째보다 더 작았고, 와인 저장고 구경도 안 시켜주면서 7종류의 와인 시음만 반복되었다. 세 번째 와이너리 정도 되면 살짝 지루한 감도 있고 큰 기대감도 없어진다. 이때 가이드는 우리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게임을 제안한다. 자신이 어떤 단어를 말하면 연상되는 아무 단어나 말하란다. 예를 들면 '사과- 빨갛다 - 노랗다- 파랗다 - 하늘-해-달' 이런 식의 어떠한 정답이나 규칙 없이 생각나는 단어를 말하면 된다. 실제 이 단어 배열이 우리의 첫 번째 게임 내용이었는데 문제는 영어로 해야 한다는 것. 내 동행은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단어만 말하면 되다 보니, 옆에서 살짝 통역을 도와주니 내 동행도 멋지게 영어로 참여할 수 있었다. '달' 다음이 내 동행 차례였는데 통역 없이 스스로  'space'를 내뱉었다. 영어로 우주를 말한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폭풍 칭찬이 이어졌다. 이날이 아마 호주에 온지 6일째 정도 되는 날이었던 것 같은데 역시나 살다 보면 누구나 언어는 향상되나 보다.


하루 종일 조금씩이긴 하지만 21잔의 와인을 마셨으니 마무리는 아이스크림, 초콜릿 가게에 들러 당분을 섭취한다. 아이들처럼 사람들이 뛰어들어가 무료 샘플 초콜릿을 먹어보고 맛있는 젤라또를  사 먹는다. 그리고 이곳에서 다시 원을 만들고 가이드의 끝인사를 듣는다. 오늘 만나서 반갑고 잘 따라줘서 고맙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니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즐기는 것. 이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꿈이고 목표다."라는 말을 진심어린 표정과 말투로 했다. 늘 하는 멘트인지 모르겠으나 그들의 꿈을 추구하는 일.. 부러워서 그런지 감동적이었다. 음.. 나도 한국 가면 막걸리 양조장 투어 상품을 개발해볼까라는 생각이 스쳐간다. 이미 있으려나?

작가의 이전글 호주식 먹고 마시기 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