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전에 흥미롭게 보았던 영화가 있다. 왓 위민 원트(What Women Want)라는 멜깁슨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였다. 광고 회사 중역이었던 닉 마샬(멜깁슨)은 여성 소비자들의 니즈를 파악하기 위해 고민하던 중 갑자기 여자들의 속마음을 다 듣게 되는 능력이 생긴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무척이나 신박했는데 글을 적는 지금 생각해 보니 꽤나 유치한 설정이었다 싶다. 어쨌든, 닉은 그 ‘능력’ 덕분에 도통 알 수 없는 여자들의 ‘이상한’ 속마음을 듣게 되면서 점점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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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인간이 된다고 생각하니 나는 내가 알고 싶은 그들의 하루를 온전히 같이 살아보고 싶다. 닉처럼 마음속까지 들여다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읽어낼 수 없더라도, 내가 그들의 하루를 온전히 지켜본다면 최소한 그 마음을 이해하는 언저리까지는 갈 수 있지 않을까? 우리 가족, 부모님 그리고 요즘 연락이 통 없는 나를 서운하게 하는 베프 그녀의 삶. 비밀을 캐겠다는 심보가 아니다. 화가 나고, 이해 안되고, 서운하고, 그리고 궁금한 그들의 삶을 잠시나마 들여다보면 내가 그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가까운 사이라고, 늘 함께 한다고 내가 그들을 이해하고 있을까 과연?
요즘 부쩍 나를 서운하게 하는 남편. 나도 한때 늘 새벽에 함께 출근길을 나섰던 동지였는데 이제는 그는 매일 치열한 전쟁터로 향하는, 나는 하루 종일 끝도 없는 육아와, 가사에 치인 게다가 집에서 일과 공부를 하겠다고 종종거리는 삶을 살고 있다. 퇴근하고 돌아온 그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기는커녕,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하소연하기 바쁘다. 그 역시도 여유가 없는지 따뜻한 말보다는 힘든 내색이다. 주말에다, 첫째 아이 경기 때마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다니며 효도를 행하는 남편의 모습에 서운함을 느끼고 미운 말들을 쏟는다. 바쁜 출근 시간부터 퇴근까지 그가 살아내는 하루를 들여다보고 싶다.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을 보듯 그를 바라본다면, 어쩌면 그가 이해가 되고, 어쩌면 그를 안쓰럽게 혹은 고맙게 느낄 수 있으려나. 도통 집에 오면 회사 얘기를 안 하는 남편의 고단함을 느낄 수 있으려나.
작년, 중학생이 되자마자 시작된 첫째 아이의 사춘기. 말이 짧아 지고, 눈빛이 달라지고 말투에 불량스러움이 묻어나는 그를, 하루아침에 달라진 그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꽤나 걸렸다. 오늘 어땠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재잘재잘 곧잘 말하던 아이는 자신의 굴로 들어가기 바쁘다. 축구선수를 꿈꾸는 아이라 학교 수업을 마치면 매일 훈련, 주말에 레슨, 방학과 주말에 이어지는 각종 대회들, 합숙훈련 등을 해야 한다. 확고한 목표가 있는 아이지만 이제 갓 중학생이 된 아이가 견뎌야 할 무게가 그리 가볍지는 않을 것이다. 코로나 상황에 등교 횟수가 손에 꼽지만, 학교에서는 어떤 아이일까. 어떤 과목 시간에 눈빛이 빛날까, 눈이 감길까. 친구들과 어떤 대화들을 하며, 어떤 장난을 치며, 어떤 순간에 웃고 있을까. 매일 커다란 가방을 둘러메고 훈련장을 가면서 그는 무엇을 하며 어떤 표정으로 가고 있을까. 훈련하는 동안 감독, 코치님은 그에게 어떤 것들을 가르치고 내 아들을 어떻게 대하고 계실까. 아이는 즐기고 있을까, 힘들어하고 있을까. 모든 것이 궁금하다. 아들이 알면 혼나겠지만 친구들과 페메(페이스북 메신저)로 무슨대화를 하길래 저렇게 재밌을까 투명인간도 되었겠다 좀 들여다 보고도 싶다. 아들의 삶을 따라가 들여다 보면, 내 잔소리가 좀 줄어들 수 있을려나, 아들을 더 웃게 만드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려나.
형과 8살 터울의 귀여운 막둥이. 집에서는 우리 아기, 우빵이, 우봉이 귀여운 애칭들을 부르며 아기 취급하는데 유치원에서는 7살 가장 큰 형님 반이다.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직은 엄마가 제일 좋은 엄마 껌딱지이지만, 꽤 오랜 시간 동안 보내고 있는 유치원에서의 삶이 궁금하다. 늘 ‘오늘 너무 재미있었어요.’라고 하며 셔틀버스에서 내리는 아이지만, 어떤 수업 시간에 가장 활기차고 즐거운지,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무엇을 하며 보내고 있는지, 속상한 일은 없는지, 무엇보다 그 조그만 입으로 하루종일 종알종알 무슨 말들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투명인간이 된 엄마는 그런 모습이 너무 예뻐 눈에서 하트를 쏟다가 존재를 들키려나.
분명 가장 의지고 되고 가장 단단한 분들이셨는데, 이제는 힘없고 나약해 보이는 연로하신 부모님. 같은 서울에 살고 있지만 서로의 바쁜 시간들을 살아내느라 자주 뵐 수가 없다. 거의 매일 전화를 드리지만, 생각해 보니 내 얘기, 아이들 얘기 전하느라 바빴던거 같다. 엄마 아빠의 오롯한 하루 얘기를 물었던가. 물었다고 그대로 들려주실까. 걱정 끼칠만한 일은 싸악 도려내고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늘 밝은 엄마의 목소리 뒤에 내가 모를 고단함이 있으면 어쩌나. 친구 좋아하시는 우리 아빠. 친구분들과 어떤 얘기를 나누시면서 행복해하시나. 부모님 자주 다니시는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은 어떤 얘기들을 전하고 계신 걸까. 내가 부모님의 하루를 함께 한다면 내가 앞으로 부모님께 무엇을 더 해드리고, ‘이것만은 하지 말아야지’라는 것이 보이려나. 살아 계실 동안 후회 많이 남기지 말야야 할 텐데...
그리고 중학교 때부터 많은 것을 나눈 나의 베프. 그런 친구에게 요즘 많이 섭섭하다. 최근 몇 년 내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으면 먼저 하는 법이 없다. 그건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하면 되니까. 그런데 바쁜 일상을 살다가도 문득 친구가 떠오르면 잘 지내니, 야 너 살아있냐, 너 괜찮지? 안부를 묻는 톡을 보낸다. 며칠이고 카톡의 1이 사라지지 않는 경우도 있고, 읽어도 답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통화가 되면 미안해 송아야...로 시작해서 자신의 정신없었던 근황을 전한다. 그럼 난 언제나 그럴 수도 있지 한다. 항상 이해는 나의 몫이다. 서운한 마음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우리 둘 다, 아들 둘 키우는 몸이 두 세개 쯤은 필요한 엄마이지만 그래도 이건 남보다 못한 거 아니니?’ 혼잣말을 하다가도 내 친구 진짜 괜찮은가 걱정이 된다. 친구의 정신없는 삶을 잠깐 엿봐도 될까. 아무리 투명 인간이라해도 이건 석연찮긴 하다. 투명인간 개인 정보 법에 저촉되려나?
삶의 무게를 묵묵하게 버티고 살아가는 한 대기업에 부장으로 살아가는 아저씨와 처절하게 혼자 거친 삶을 견뎌야 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가 묵직하지만 무겁지 않게 흘러갔던 드라마가 있었다. 몇 해전 방영되었던 <나의 아저씨>. 돈 때문에 아저씨 몸에 도청 장치를 부착해 ‘아저씨’의 삶을 감시하던 여자는 월급 5-600을 받고도 세상 다 산 사람처럼 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를 이해하게 되고 나아가 그를 통해 암흑 같던 삶의 빛을 찾는다. 이어폰 줄을 통해 전해 본 ‘그의 삶에 대한 앎을 통한 위로’였다.
투명인간이 되어 이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 꿈에 그리는 몰디브 해안가에 누워도 보고, 아이슬란드 마법같은 오로라도 보러가볼까 맘이 흔들렸지만, 내 가까이에 있는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고 알고 싶어졌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들을 진짜로 이해한다는 ‘앎’의 선물을 받는다면 그보다 값진 것이 있을까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