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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무 Apr 20. 2022

애착 인형 '친구'이야기

-둘째 애착 인형의 역사기

"엄마, 내 친구 어딨어?"

올해 7살이 된 둘째 아들에겐 '친구'가 있다. 엥? 친구가 있는 게 뭐? 할 수 있지만, 여기서 ‘친구’란 그의 7세 인생을 쭉 함께 한 애착 인형을 말한다.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 그 인형에게 근사한 혹은 귀여운 이름을 붙여보려 했지만, 그는 ‘친구’라는 이름을 붙였고 내가 순우리말부터 멋들어진 불어식 이름까지 구상한 것이 무색하게 그 이름을 굉장히 맘에 들어했다.


첫째는 모든 게 처음. 첫째에게 허락을 받고 초등학교 2학년 되던 해에 드디어 버릴 있었던 누더기 애착 이불 덕분(?)에 나는 모든 아이들에게는 애착 물건이 있다고 생각했다. 첫째 초등학교 친구 엄마로부터 자신은 아들 태어나기 전부터 인형을 준비해뒀는데 전혀 관심이 없더라는 얘기를 듣기까지 말이다.


첫째 아이는 산부인과 퇴원 시 모든 산모에게 주는 겉싸개에 예기치 않게 애착이 붙었었다. 이불 대용으로 사용했기에 아이는 자면서 물고 빨고는 기본이고 어린이집을 가든, 여행을 가든 꼭 그것이 있어야만 했다. 여기저기 찢어진 것은 당연했고 아무리 열심히 빨아도 나중에는 이상한 꿉꿉한 냄새까지 났다. 친정어머니가 이불 네 모퉁이에 새로운 천을 대고 박음질해주신 걸로 몇 년 버티다, 결국 출산했던 산부인과에 사정을 얘기하고 똑같은 새것을 얻어왔다. 새 이불을 얻어오길 잘했다 싶은 마음은 아이의 거부로 좌절되었다. 아이는 쓰윽 한 번 만지고 나서는 바로 '그것'이 아님을 알아챘다. 다른 아이들은 귀여운 토끼나 강아지 인형을 들고 다니던데, 우리 아이만 누리끼리하고 다 해진 이불을 들고 다니는 것 같아 영 맘이 좋지 않았다.


첫째의 애착 이불을 버릴 수 있었던 그해. 둘째가 태어났다. 나는 혹시 모를 또 다른 ‘애착’이 누더기로 변신할 이불이 아닌 귀여운 인형에 오길 바라는 마음에 8살 터울의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후배의 출산 선물로 받은, 당시 엄마들 사이에 핫했던 블라블라 인형을 의도적으로 아이가 자는 곁에 두었다. 결과는 성공. 아이는 자신만 한 인형을 꼭 품에 안아야, 그리고 그의 귀를 오물오물 씹어야 잠이 들었다. 그 인형 챙기는 일이 우리 집 외출 시 확인 1순위가 되었음은 너무도 당연했다. 아주 빠른 시간 안에 누더기 인형이 되었음도 또한 당연했다. 이번에도 친정어머니는 떨어진 인형의 귀를 달고 터진 인형 솜들을 솜씨 좋게 메워 주셨다.


둘째를 낳고 어려워진 회사 사정 때문에 크게 눈치를 보지 않고 2년이란 시간을 휴직을 할 수 있었다.(이후 공부하겠다고 그만두 했지만) 첫째 때 워킹맘으로 겪을 수 있는 모든 맘 아픈 일들을 겪으면서, 둘째와는 최대한 시간을 함께 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가 13개월 되던 때, 예상보다 훨씬 빨리 구립 어린이 집에서 연락이 왔다. 아이를 온전히 내가 더 데리고 있을 생각이었는데,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순번이 올지 모른다는 말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걱정스럽게 생각했던 나의 마음과 달리 아이는 잘 적응했고 얼마지 않아 낮잠까지 어린이 집에서 자고 오게 되었다. 아이 몸만 한 길이의 애착 인형을 매일 어린이 집에 보내려니 선생님들께 괜한 민폐를 끼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같은 인형의 반만 한 크기 인형을 구했고, 다행히 아이는 어린이 집에서는 '작은 친구'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이 '작은 친구'는 여행을 갈 때도 요긴했다. 아이가 질질 질 끌고 다니던 '원조 친구'보다 훨씬 간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었고, 아이가 어려 바리바리 싸 들고 다녀야 하는 여행 가방에 짐을 덜어주는 느낌이 들게 했다. 그런데 아이가 4살 되던 해, 그의 첫 해외여행지인 베트남에서 이 작은 친구를 잃어버렸다. 그것도 도착하자마자 호텔로 가는 택시에서. 찾을 길은 없었고, 아무리 애를 써도 친구 없는 험난한 여행을 어떻게 무사히 마쳤는지 기억이 도통 나지 않는다. 기억 저장고에 없는 걸 보니, 아이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을 큰 무리 없이 받아들였었나 싶었다.  


결국, 솜이 다 죽어 삐쩍 곯고 어디 하나 성한 곳 없는 '원조 친구'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 보기 참 애달팠다. '작은 친구'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경험했기에 나는 새로운 친구를 준비해도 괜찮겠다 생각했다. 다행히 인터넷에서 같은 인형을 판매하고 있어 구해서 아이에게 안겨줬더니 두 인형을 번갈아 안아가며 감촉 검사를 하기 시작했다. 첫째 아이에겐 통과되지 못했던 이 평가에서, 둘째 아이는 새 친구도 대체용으로 허락해주었다. 그 평화를 유지했어도 되었을 텐데 어리석은 엄마인 나는, 더 이상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는 원조 친구를 없애고 싶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허락을 구하고, 아니 허락을 강요하고 그 친구를 버리고 새로운 친구만을 남겼다.   


2년이 흘러 새로운 친구 역시 피죽도 못 먹은 홀쭉이 그리고 외귀 인형이 되었다. 더 이상 판매도 하지 않는 인형을 아이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겠노라며 한참 동안 중고나라를 뒤져 겨우 같은 모양의 인형을 구할 수 있었다. 택배를 신청하고 기다리는데 설레기까지 했다. '이보다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이 있을까!' 또 엄마만의 착각을 하면서... 하지만 포장을 뜯은 아이는 기뻐하기는 커녕 충격을 먹었다.


얘 왜 이리 뚱뚱해!!!

정말 그랬다. 홀쭉이가 된 현재의 친구에 비하면 살집이 3배는 되어 보였다. 인형 뒤에 붙은 택을 보니 'Made in USA'. 원래 블라블라 인형은 페루에서 만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미국이라니! 햄버거를 너무 드셨는지 너무도 빵빵한 이 인형은 감촉 검사까지 가지도 않은 채 아이에게 외면을 당했다. 나는 솜을 1/3을 빼고 다시 꿰매 아이에게 건네주었지만 단번에 NO. 일부러 홀쭉이 친구 곁에 슬쩍 놓아도 보았지만 아이는 아주 졸린 순간에도 '뚱뚱이'를 멀리 밀어내었다. 그렇게 철저히 거부당한 녀석은 쓸쓸히 언제가 될지 모를 그 순간을 위해 여전히 대기 중이다.

이후 둘째 아이 친구 엄마의 선물로 홀쭉이 친구를 대신할 또 다른 인형이 생겼지만 뚱뚱이와 같은 신세가 되었다. 커가면서 마음이 넉넉해져 그런가 아주 가끔 둘째 녀석이 뚱뚱이와 새 인형을 안아주기도 하지만 아주 잠시뿐. 7살 유치원 형님이 된 아이가 집에 들어오기 무섭게 하는 말은 여전히 "엄마, 친구 어딨어"이다. 애착 인형에 관한 에피소드를 다룬 그림책 <내 토기 어딨어?>를 아이와 읽는데 아이는 자신의 이야기인 양 신나게 몰입한다. 온통 자기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신기한냥.


그런데 아이는 친구에 관한 그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엄마, 엄마가 내 친구를 버렸을 때 내가
얼마나 슬펐는지 알아?
꿈에서도 그 친구가 나와서 운 적도 있어.
엄마, 여행 갔을 때 작은 친구 잃어버렸잖아.
택시를 타면 자꾸 그 인형이 생각나.


내가 아이에게 허락을 받았다고 당당히(?) 말했던 그 사실이 아이를 얼마나 아프게 하고 있었는지, 얼마나 큰 상처를 준 것인지. 아이가 꺼낸 말에 나는 정말 가슴이 아팠다. 첫째도 키웠던 엄마가 대체 어떻게 그런 행동을 했을까. 아이의 마음을 대체 읽어내려고 하긴 했던가. 내가 버린 그 친구 이야기를 아이가 꺼낼 때마다 나는 몹시 아프고 미안하다. 절대 잊혀지진 않겠지만, 아이를 꼭 안고 정말 미안하다고, 엄마가 너무 무식했다고 사과의 사과를 거듭했다. 이 사과는 아이가 더 이상 꿈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게 계속할 것이다.


엄마와 자신을 동일시하던 아이가 성장하면서 엄마로부터 분리되는 독립 과정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오는 충격을 아이는 스스로 회복하려는 노력을 한다. *엄마에게만 갖고 있던 애착이 자신의 주변에 있는 즉, 이불이나 인형과 같은 물건에 일시적으로 옮겨지는 일들이 나타난다. 이를 전이현상(Transitional Phenomena)이라 한다. 아이들이 애착 물건을 통해 엄마라는 안전기지와 24시간을 함께 하지 못하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아이들의 애씀. 이를 '셀프 위로' 하는 것이라고 <그림책 페어런팅>에서 김세실 작가는 표현하기도 한다.


엄마에게 혼이라도 나면 울면서 '친구'를 찾고, 고단했던 사회생활(유치원^^)을 마치고 들어오자마자 '친구'를 찾는 둘째 아이를 보면서 셀프 위로라는 말이 얼마나 적절한 말인지 공감하게 된다.

맨 처음 아이 옆에 인형을 눕혔을 때는 인형이 아이보다도 컸었다. 어느덧 흐물흐물 살점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그 인형은 훌쩍 커버린 아이의 팔에 얹어지는 정도가 되었다. 다시는 아이의 그 친구를 볼품없다고, 냄새가 난다고 내 뜻대로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이 곁을 저렇게 내 대신 지켜주는 든든한 존재를 고맙다고 고맙다고 말해줘야 한다.


<내 토끼 어딨어?>에 후속편인 <내 토끼가 또 사라졌어!>에서는 비행기에서 우는 아가에게 자신의 소중한 애착 토끼 인형을 건네는 주인공 아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애착 인형이 친구 것과 바뀐 것을 알고 잠을 못 이루는 밤, 결국 아빠가 나서서 자신의 진짜 인형을 찾아주었던 때 이야기가 <내 토끼 어딨어?>인데 아이의 '성장'이 이런 것이다. 엄마에게서 떨어져 있을 때 혼자 위로하면서 이겨내고 이 충분한 시간을 겪어내고는 그 위로를 다른 사람에게 건넬 수 있는 사람으로 커가는 것.


이번 '마지막 친구'는 그렇게 아름다운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마무리하고 싶다.   


#애착인형#애착#성장#그림책#내토끼어딨어#그림책페어런팅


*참고: 이영준(2014). 그림책 『내 사랑 뿌뿌 』와 『알도 』에 나타난 아동의 놀이 공간-도날드 위니캇의 '전이대상'과 '중간영역'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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