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나만의 속도를 찾는 길

by 노란고구마


열아홉 살의 나는 스무 살이 되면 절로 어른이 될 줄 알았다. 갇혀 있던 울타리를 뛰어넘으면 어디로든지 자유롭게 갈 수 있는 넓은 초원이 펼쳐질 거라 상상했다. 마음대로 시간을 쓰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면서 사는 인생 말이다. 그것이 어른의 특권이자 자유라고 믿었다.


하지만 울타리를 넘어선 세상은 발 디딜 곳 하나 없는 바다 한가운데와 같았다.

처음에는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몰라서 당황했다. 무작정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주위를 둘러보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일단 다른 친구들이 가는 방향으로 노를 저었다. 때때로 뒤처지지 않으려 속도를 내다가 지독한 멀미를 했지만 참아 낼만 했다. 아주 가끔 쉴 때는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에 넋이 나갔다. 자유는 황홀하면서도 무한히 두려웠다.


그런 나날에 익숙해지다가 갑자기 태풍을 만났다. 잔잔했던 물결이 돌변해 모든 걸 집어삼킬 듯 무섭게 흔들어대더니 결국 배를 뒤집어 놓았다.


젊음은 무모해서 물에 빠져 허우적대면서도 옆에 구명조끼를 가진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긴커녕 수영을 잘하니까 혼자서도 잘 살아낼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성난 파도 앞에서 작은 수영장에서 키운 수영 실력은 어림도 없었다. 하나 둘 셋 구령을 붙이며 배운 수영 자세는 시작도 못해보고 고개를 돌려 숨을 쉴 틈조차 주지 않았다.

지금까지 울타리 안에서 배우고 쌓아왔던 모든 것들이 무너졌다. 바닷물을 잔뜩 먹고 거의 죽기 직전에 거짓말처럼 태풍이 지나 가고 파도가 잠잠해졌다.

한동안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새삼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숨을 쉬었던 게 대단한 일었구나 싶었다. 흔들리는 물 위가 아닌 단단한 땅 위를 딛고 싶었다.

그때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우리나라에도 평화와 치유의 길을 만들고 있다는 제주 올레 길 기사를 읽었다. 겨우 남은 에너지를 끌어 모아 배낭을 메고 무작정 제주도로 향했다. 비행기를 타고 처음으로 혼자 제주도에 도착했을 때 자연스럽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만에 어제의 후회가 아닌 내일의 설렘을 느꼈다.


당시 11코스까지 있던 올레 길 지도 한 장을 들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가방 때문에 매일 새로운 물집이 생겼고, 지름길로 가려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서 며칠을 쉬기도 하고, 안내 표시를 놓쳐 몇 번이나 길을 잃어버리고 갔던 길을 되돌아오기도 했다. 나만의 속도를 찾아 걷는 데까지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너무 빠르게 걸어서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없이 목적지에 일찍 도착해 오히려 남는 시간에 할 일이 없었고, 너무 늦게 걸으면 해가 지고 주위가 금세 깜깜해져서 목적지까지 걷지 못하고 도중에 완주를 포기해야 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쓸데없는 짐들을 내려놓고 나만의 속도대로 길을 걸을 수 있었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 또한 메말랐던 마음에 단비가 되어주었다. 덕분에 우물 안에 고여 있던 물이 흘러넘쳐 강을 따라 바다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매일 새로운 시작이었고, 매일 새롭게 세상을 배워나갔다.

어른이란 타인이 만든 울타리를 넘어 무작정 멀리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 자신만의 속도로 튼튼한 울타리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청춘의 한가운데서 만난 제주도가 알려주었다.

누구나 제주도처럼 자신만의 속도를 찾을 수 있는 장소를 만나기를, 진정한 자유를 느끼며 한 걸음씩 나만의 길을 걸어 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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