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화가가
하나 남은 남루한 윗옷을
캔버스에 걸쳐 놓고
빛바랜 머리카락을 엮어
붓을 만들어 쥐고
손끝에 흐르는 피를
석양에 쏟아붓고
열 손가락을 부러트려
꽃을 피워내고
깊은 눈동자를 파헤쳐
하늘을 채우고는
잠시 넋 잃고
고요히 바라보다가
덤덤히 심장을 꺼내
태양을 새겨 넣고서
기꺼이 삶을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