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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차오른다 가자 ☾

영포티는 옛날 얘기를 못 참죠.

by 최용경

누군가 내게 "뉴욕 좋아요?"라고 물으면, 이상하게도 늘 “음… 근데 호불호가 큰 곳이에요.”라고 먼저 말하게 된다. 마치 자식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소개하는 무뚝뚝한 아버지처럼, 상대가 어떻게 볼지 괜히 긴장되고 염려되는 마음이 들어서다. 그리고 늘 말 끝에는 덧붙인다. “물론 저는 너무 좋아하죠.”


이번 뉴욕은 유난히 특별한 여정이었다. 소중한 친구들이 함께했고, 내 베프 TOP 3에 무.조.건. 드는 마이클도 있었다. 지난 2월, 추위와 피로로 뉴욕의 매력을 느끼지 못한 마이클에게 이번에는 제대로 된 뉴욕을 보여주리라 마음먹었다.

일어나세요 영포티씨..!

그래서, 출발 전부터 설렌 마음을 안고 구글 캘린더를 공유했다. <최용경 생가 #1 방문> 관광지는 아니지만, 내 스무 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동네 Tudor City. 관광객이라면 평생 갈 일 없을 만큼 조용한 동네지만, 내게는 가장 사적인 옛날이야기들이 쌓인 곳이기에 꼭 소개하고 싶었다.


다행히 올해 뉴욕은 오랜만에 미모가 훌륭했다. 가끔 얼태기를 겪는 뉴욕이라, 최근 몇 년은 이상하리만큼 못생겨져서 내심 안타까웠는데, 이번엔 달랐다. 11월 초의 투명한 하늘과 붉게 물든 단풍, 사람들의 싱그러운 얼굴이 뉴욕 전체를 빛나게 하고 있었다. 부모님께 소개하는 날, 멀끔하게 차려입고 나타난 남자친구를 본 것 같은 안도감이 스며들었다. 뉴욕은 준비를 단단히 마친 듯했고, 이제 친구들만 맞이하면 된다.




우리는 뉴욕의 고속터미널 Port Authority에서 집결했다. 업무 일정이었지만, 얼굴만 보면 영락없이 가을 소풍 가는 사람들 같았다. "뉴욕 너무 좋은데?" 신나 하는 친구를 보니 내가 더 기뻤다. 뉴욕 타임스 본사 스타벅스에서 폼나게 커피도 한 잔 때리고, 초등학생 바이브로 버스 타기 전 젤리도 하나 골랐다. 그리고는, 서울에서 경기도로 출근하는 직장인처럼(하지만 한껏 가벼운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출발 시간을 안 지키는 뉴욕 버스 덕에 안 놓치고 세이프!

물론, 너무나 우리답게 승강장을 잘못 알아 버스를 한 대 놓치는 에피소드도 있었지만, 허둥지둥 두 번째 버스를 잡아탔고 뉴저지에 도착해서는 어느새 어른의 가면을 쓰고 일도 알차게 마무리했다. (*업무 관련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


희한하게도, 업무가 끝났는데 재미있는 액티비티를 마친 기분이었다. 인생에 즐거운 이야기 한 겹을 더한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맨해튼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이번에도 우버 대신, 뉴욕 직장인들과 함께 페리를 타기로 했다.

페리 승강장에서 바라보는 맨해튼

페리 안. 수트 차림의 금융권 직장인들 사이에서, 우리는 순진한 유학생들처럼 나란히 페리에 앉아 야경을 바라봤다. 바람이 적당히 차고, 수면 위 불빛은 간지럽게 흔들렸다. 그러다, "저거 봐!" 달 덕후인 내가 먼저 발견했다. 맨해튼 고층 건물 사이로 말도 안 될 만큼 큰 노란 보름달이 둥실 떠올랐다. 슈퍼문이었다. "이게.. 진짜라고?" 마이클은 중얼거리며 홀린 듯 페리 창가로 다가가 보름달을 감상했다.

페리에서 본 슈퍼문

초승달이 가늘고 여려서 감싸주고 싶은 존재라면, 그날의 보름달은 압도적이었다. 공상과학영화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현실이 아닌 듯한 광경. 구름 한 점 없는 밤공기에 샛노란 달이 묵직하게 내려앉자, 중고 책방에서 우연히 만난 에밀리 디킨슨의 시가 떠올랐다. 그렇게, 디킨슨의 시처럼 호박빛 달은 페리를 탄 우리를 천천히, 아주 부드럽게 맨해튼 쪽으로 이끌었다.

달은 바다에서 멀리 떠 있지만
그녀는 여전히 호박빛 손끝으로
순한 소년을 다루듯
약속된 모래의 끝을 따라 바다를 가만히 이끈다.

바다는 그녀에게서 한 치도 어긋나지 않고
그녀의 눈길에 잔잔히 순응하며
도시를 향해 살짝 다가섰다가
그만큼 다시 멀어지며 그녀의 부름을 따른다.

오, 시뇨르. 그대가 바로 그 호박빛 손이라면
나는 그대 앞에 길게 펼쳐진 바다이리라.
그대의 눈길이 보내는 가장 작은 신호에도
나는 결국, 물결처럼 그대에게 향하고 만다.


슈퍼문의 다정한 안내를 받아 우리는 내가 3년 간 살았던 동네에 도착했다. 미드타운답지 않게 조용하고, 나의 최애 건물인 크라이슬러 빌딩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 초승달 같은 아치와 금속 장식으로 반짝이는 크라이슬러 빌딩은 언제나 나에게 “용경아, 어깨 펴.”라고 말해주는, 뾰족 구두를 신은 세련된 언니 같았다. 조금 까칠하지만 든든한 정신적 지주 같은 존재.


막상 그 시절의 추억이 덕지덕지 담겨있는 장소들을 친구들에게 보여주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냥 쑥스럽고, 조금은 부끄럽고, 어딘가 발가벗겨진 느낌. 마치 오랫동안 숨겨두었던 내 플레이리스트를 처음 친구에게 들려주는 순간처럼 노래가 끝날 때까지 친구의 표정을 몰래 살피게 되는 마음. 고층 빌딩들 사이에서 유난히 작은 4층짜리 건물의 중국계 집주인 Tommy 아저씨 이야기까지 들려준 뒤, <최용경 생가 투어>는 막을 내렸다. 역시 영포티가 되어가는 건 옛날 얘기를 즐기는 과정인가? 묘하게 쑥스러우면서도 '좋았다'고 말해주는 친구들에게 고마웠다.

실제로 보면 생각보다 엄청 가까이 보이는 크라이슬러 빌딩




유독 기억에 남는 식사들도 있었다. 레이첼의 초대로 갔던 Thai Diner에서 먹은 팟씨유. 미식가가 아닌 나조차도 30분 넘게 기다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 거의 인생 메뉴에 가까웠다. 맛뿐 아니라, 공간이 가진 편안한 위트, 적당히 합리적인 가격, '여기가 뉴욕이지..' 싶은 분위기까지 모두 마음에 들었다. 그 여운이 강렬해서, 이틀 만에 마이클을 데리고 또다시 찾아갔다. "먹어봐, 이건 진짜 먹어봐야 해." 그런 마음으로.


좋은 친구, 맛있는 음식과 술, 가볍지만 깊이 남는 대화. 그 모든 조합이 주는 행복은, 뉴욕이라는 엄마가 "오늘은 여기서 먹고 가"하며 포근한 식탁에 차려주는 맛있는 음식 같았다. (물론 엄마는 밥만 차려주고 안방에 바로 주무시러 들어가시고...ㅎㅎㅎ) 다음에는 꼭 신아영과도 함께 하길 바라며.

나중에 살펴보니 웹사이트조차 감각적이던 Thai Diner

기억에 남는 또 하나의 저녁이 있다. 그날은 인세를 받은 기념으로 호텔을 하루 예약해 둔 날이었는데, 느닷없이 손더와 메리어트가 분리되며 내 예약이 당일 취소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후에 보상으로 5성급 호텔에 묵을 수 있는 수준의 80,000 Bonvoy 포인트를 받게 되었다는..! 오히려 좋아.)


내 일정에 맞춰 영은 언니도 집에 손님을 불렀던 터라, 갑자기 나는 갈 곳 없는 신세가 되었다. 결국 영은 언니가 쥐어준 와인 한 병을 들고 털레털레 사촌동생네 집으로 갔다. 마침 뉴욕에 와있던 고모는 "으휴~ 오면 온다고 진작 말하지!"라며 가볍게 등짝을 치고는 금세 저녁을 차려주었다. 뉴욕 한복판에서 뜨근한 탕국과 김치를 먹고, 와인을 마시며 두런두런 잔소리도 듣고 이야기도 나눈 밤. 갑자기 뉴욕에서 파주로 순간 이동을 한 기분이었다.

혼란의 저녁. 시공간을 몇 개나 초월한건지.

어린 시절에는 종종 "왜 나는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게 이렇게 어색할까?" 고민하곤 했다. 심지어 소개팅도, 면접도 무서워 제대로 해낸 기억이 없을 정도라, 처음 만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지내는 사교적인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그런데,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더욱 명확히 알게 되었다. 천천히, 밀도 있게 쌓아온 인연들이 결국 쿨함과는 거리가 먼 내게는 더 잘 맞는다는 것을.


세계 곳곳에서 저마다의 방식대로 멋지게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종종 센트럴파크가 떠오른다. 거대한 도시 한가운데에서 늘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존재.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나타나지만, '항상 거기에 있구나'라는 사실만으로 기쁨이 되는 곳. 페리에서 보았던 호박빛 보름달처럼, 그들이 어디에 있든, 어떤 모양으로 살아가든 멀리서 응원하는 든든한 존재가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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