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9일 (화)
3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제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게된 곳이 다름 아닌 학교이다. 나에게 학교는 '좋은 추억'이 참 많은 곳. 그래서, 해외여행을 갈 때면 꼭 한 번씩은 해당 지역에 있는 대학교를 경험해보려고 한다. 이번에 찾아본 곳은 Copenhagen Business School. 덴마크식 비즈니스 철학과 학교 생활 모두 궁금했기 때문에 딱 좋다고 생각했다. 마침 'Putting Digital into Health'라는 주제의 세미나가 있길래 이메일로 미리 신청을 해두었다. 얏호!
Copenhagen Business School은 '도시형' 캠퍼스로, 넓은 부지보다는 빌딩 위주로 이루어진 캠퍼스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학생들에게 길을 물어 세미나룸을 찾아가니, 벌써 세미나가 시작되고 있었다. 얼른 자리에 앉아 에버노트를 켰다. 이번 세미나를 진행하는 분은 Susi Geiger 교수님인데, 얼마 전까지 UC Berkeley에서 연구를 하셨단다. 세미나는 건강/보건 업계에 침투한 디지털 기술에 대한 연구를 발표하는 자리였고, 학생들도 굉장히 진지하게 세미나에 임하는 모습이었다.
이번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느낀 것이 여러 가지 있는데,
(1) (성급한 결론일 수 있겠으나) 덴마크 역시도 실리콘 밸리 사례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세미나는 실리콘 밸리 기업들의 사례를 위주로 진행되었다.
(2) 역시나 실제 업무와 아카데미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3년 넘게 실무를 진행했던 나로서는, '당연한 얘기를 거창하게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가 내겐 더 중요한 이슈가 되어버렸다.
(3) 비즈니스 스쿨은 역시 나이 많은 학생들이 많다.
(4) 개인적으로는 어제 본 MENU 직원들보다 비즈니스 스쿨에 있던 학생들의 눈빛이 훨씬 지쳐 보였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세미나를 마치며, 일단은 비즈니스 스쿨이 나한테 안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와 덴마크 문화뿐만 아니라, 나에 대해서도 조금 더 알게 된 유익한 1시간이었다.
학교에서 나와, 곧장 루이지애나 박물관으로 향했다. 루이지애나 박물관 또한 소연님이 강추하신 곳. 이미 몇 차례 본 사진에서도 예쁨이 뿜어져 나왔기 때문에, 코펜하겐에서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훌륭한 곳일 거라 생각했다. 1시간 정도 버스와 기차를 타고, 드디어 Humlebaek역에 도착. 또 15분 정도 즐겁게 걷다 보니 아기자기해 보이는 루이지애나 박물관이 뿅 나타났다. 영화에나 나올법한 아담한 동네에 있는 귀여운 박물관이었다.
박물관에 들어가자마자 보인 것은 역시 루이스폴센(Louis Poulsen) 펜던트. 박물관의 앤틱한 느낌과 루이스폴센 조명이 고풍스럽게 잘 어울렸다. 루이지애나 박물관에서는 Marina Abramovic과 Kusama Yayoi, 그리고 'Being There'라는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Sex and the City에서 잠깐 나왔던 Marina Abramovic의 전시를 코펜하겐에서 보게 되다니. 게다가, 평소 좋아하던 Kusama Yayoi의 작품까지! 이렇게 알찬 현대미술관이 또 있을까. 전시를 보면서는 루이지애나 박물관의 내공을 더더욱 실감했다. 전시의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로운 작품들만 골라 모아 놓은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수 없었기 때문이다. Marina Abramovic의 작품들은 역시나 충격의 연속이었고, Kusama Yayoi의 경이로운 집착이 담긴 작품 또한 정말 대단했다.
전시를 다 보고, 잠깐 쉴 겸 올라간 루프탑 역시도 감탄을 자아냈다. 완벽하게 정돈된 정원과 탁 트인 풍경이 갤러리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Danish Pastries를 먹으며 쉬고 있는 관람객들 조차 예술로 보일 지경. 단언컨대 루이지애나 박물관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미술관이 되었다. 갤러리 안에 있으면서도 다음에 꼭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인생 전시' 관람을 마치고, 오늘은 조금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 새벽이면 이젠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동네로 돌아와, Kim이 추천했던 Ismageriet이라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먹고, Rema 1000에서는 친구에게 조금씩 나눠줄 생리대도 구입했다. 냉장고에 남아있던 닭가슴살과 시금치, 참치를 넣고 휘리릭 토마토 스파게티도 해 먹었다. 벌써 이렇게 많이 익숙해졌는데, 이제 정말 끝이구나.
이번 코펜하겐-레이캬비크 여행은 내게 큰 의미가 있다. 새로운 회사를 만나 일을 하면서 북유럽 문화를 알게 되었고 그래서 여행까지 오게 되었고, 생소했던 이 문화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행 내내 마음이 편해서인지, 나랑 잘 맞는 문화를 경험해서인지 혼자만의 여행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매일 여유로운 나날을 보내면서도, 시간을 허투루 쓴다는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이제 곧 맞이할 한국에서의 일상에서도, 이 마음을 잊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지런하게, 또 여유롭게. 현재에 충실하며, 멀리 바라보기도 하며. 나를 아끼며, 또 우리를 사랑하며. 코펜하겐의 마지막 밤, 내게 덴마크 문화를 소개해준 회사와 소연님, 그리고 내 인생을 항상 응원해주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조용히 감사의 마음을 보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