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고에서 책 읽고 글쓰기

쓰는 공간, 삶의 자리

by 그냥


매주 화요일 방과 후 두 시간. 고1부터 고3까지 고르게 모인 아홉 명의 학생들과 독서글쓰기 수업을 한다. 학교 도서관에서 열리는 수업으로 한 학교에서 3년 째 이어가는 중이다.


매주 새로운 책을 읽고 에세이도 써야 해서 학생들에겐 품이 많이 드는 수업일 거다. 수행평가에, 학원 과제에, 놀기도, 쉬기도 하는 와중에 책과 글이라니. 아무리 스스로 선택한 수업이라지만, 루틴에 따라 생활하는 학생들에겐 이전의 일상과 아주 조금 다르게 사는 것도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뭐든 무리하거나 부담을 많이 갖는 건 좋지 않기 때문에 나는 “할 수 있는 만큼만” 읽고 쓰자고 말한다.


책을 다 읽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아는 학생들은 각자 마음이 가는 만큼 책을 읽어온다. 한 장도 읽지 않은 경우는 아직 없었다. 어느 자리든 수업의 이점은 챙기고 싶지만,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기는 싫어하는, 이른바 ‘뺀질이’들이 한둘 섞이기 마련이다. 당연히 내 수업에서도 이들을 만난다. 약간 상기된 얼굴로 자신이 읽어온 3~4쪽 분량을 뒤적거리며 ‘인상 깊은 구절’을 기어코 찾아내 낭독하는 모습을 볼 때면 약간 안쓰럽기도 하면서 살짝 웃음이 난다. 이들이 쉬는 시간이나 청소 시간의 소란을 틈 타 책에 코를 박고서 단 몇 장이라도 읽기 위해 잔뜩 집중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뺀질이와 책, 그 둘만 남고 주위 모든 것이 사라지는 완벽한 몰입의 순간! 이거면 된 거 아닌가. 그 순간이 비록 단 몇 분 몇 초에 불과하더라도 말이다.


뺀질이의 3~4쪽은 3차시 쯤엔 10쪽으로 두세 배 늘다가 5차시 마지막 수업에 이르러 30쪽으로 껑충 뛰어오르기도 한다. 많이 읽어서 좋다기 보다 이 시간을 즐기고 있다는 증거인 것 같아서 나는 마냥 흡족해지고 만다. 이 만족감(과 강사료..)은 내가 독서글쓰기 수업을 계속 이어가는 핵심 원동력이다. 그러니 이들이 무엇을 얼마나 읽고 어떻게 쓰든지 간에 강사로서 무한한 응원을 보낼 수밖에 없다. 몰입감과 만족감, 응원. 이것이 우리가 만난 첫 번째 이유일 거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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