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의 서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니피캇 May 04. 2023

코레아 후라

김훈, 하얼빈

[김훈, 하얼빈]


 안중근 의사에게는 독립운동을 하는 두 가지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첫째, 세계의 진정한 평화

둘째, 신앙에서 비롯된 결단


 이토를 죽이기로 한 안중근의 결심에는 괴로움이 있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리스도교 계명 때문이었다. 그는 독립전쟁의 와중에도 포로를 함부로 죽이지 않았고 세상과 이웃과 심지어 일본인들에 대한 연민도 버리지 않았다. 안중근 의사가 재판에서 이토를 죽인 일에 사과한 것은 그런 의미다. 안중근에게 세계시민으로서의 정체성과 안중근 토마스로서의 신앙 정체성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 앞에서 안중근과 우덕순은 묵묵하다.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묻지 않고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나서는 열 두 사도들이 비친다. 그들은 진심으로 세상의 평화를 바랐고 그 사랑으로 목숨을 걸었다. 광기에 사로잡힌 침략자의 무자비한 폭력이 조선을 넘어 만주를 덮치고 있다. 폭력을 멈추기 위해 전쟁의 선택지 밖에 남지 않은 복잡한 사건의 구조가 그물처럼 평화를 옥죄고 있다. 목 졸린 평화가 안중근과 우덕순의 침묵 속으로 녹아내려 울분을 삼키고 잠연하다. 김훈의 문장은 영웅의 웅장함을 표현하지 않는다. 우리의 영웅은 식민지 백성의 초라함을 어깨에 짊어지고 가족을 그리워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갈구한다. 그러나 이런 사소한 소망들을 아무 것도 바랄 수 없다. 그는 십자가의 길을 가는 중이다. 하얼빈은 안중근의 골고타다. 그리움이 어깨를 짓눌렀을 것이다. 삶에 대한 갈망이 피눈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중근은 끝내 하얼빈에 섰다. 앞으로 나아가 이토를 보았다. 안중근의 호흡이 멈추고 방아쇠에 손가락이 걸린다. 총알이 발사되고 이토가 쓰러진다. 그 순간 안중근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안중근의 눈에는 쓰러지는 이토만 보인다. 이제 안중근은 온세상이 보는 앞에서 십자가에 매달려야한다.


 안중근의 거사는 항거가 아니라 준엄한 선포다. 모든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산다. 어째서 개인이 이념과 국가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가? 희생은 오직 타자를 사랑하는 지극히 이타적인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이토는 삐뚤어진 이념과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애국심을 내세워 사람들의 행복을 빼앗고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토의 애국에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었던가! 안중근이 그를 멈출 때까지, 이토는 사람들을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에 몰두했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동양의 발전과 평화를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평화를 위한다면서 폭력과 무력을 주장하는 자들. 그들은 지금도 살아있는 이토 히로부미다.


 안중근의 피할 수 없는 선택은 남아있는 자들에게 희망과 공포를 동시에 일으켰을 것이다. 노예처럼 살면 살 아남을 수는 있는 것을 안중근 때문에 싸워야하게 되었구나. 억압자들은 탄압의 강도를 높일 것이다. 우리는 이제 모두 고난을 당하겠구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해 목숨건 탈출의 투쟁을 해야 했던 것처럼 안중근의 선택은 우리 민족에게 길고 긴 탈출기의 시작이다. 그는 한민족에게 홍해바다를 열어주고 자기 목숨을 바쳤다. 그러나 이곳에는 여전히 세계 평화를 갈구하는 사람들과 개인의 평안만 갈구하는 사람들이 함께 산다. 우리는 아직도 탈출하지 못했는 지도 모른다.


 안중근의 선택을 살인으로 규정하고 교회에서 밀어내려는 뮈텔 주교와, 그가 무엇을 하였든 아버지의 마음으로 품어주려는 빌렘 신부의 대조는 그리스도 교회의 깨어있음을 호소하는 시대의 상징이 아닐까. 교회를 정치적으로 무탈하게 지키는 일은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 아니다. 100년의 모진 박해가 뮈텔을 두렵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박해가 오더라도 빌렘처럼 사랑해야 했다. 빌렘은 십자가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빌렘은 카이사르의 것을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예수의 제자답게 카이사르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카이사르가 막아서더라도 사랑하는 것이 그의 일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카이사르의 방식으로(정치적인 방식으로) 스스로를 지켜서는 안 된다. 수많은 순교자들이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쳤을 때 교회는 가장 뜨겁게 불타올랐다. 국가의 폭력과 불의에 저항하며 김수환 추기경이 앞장섰을 때 복음은 사람들 사이에서 높이 빛났다.


 이토를 죽인 안중근의 목적은 악당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사람들이 보는 앞에 들어 높여지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먼 곳에 숨어 저격총을 이용하지 않고 당당하게 사람들 앞에서 권총을 들었다. 이토가 죽지 않았어도 그는 "코레아 후라(대한민국 만세)"를 외쳤으리라. 그는 자기를 바쳐 이토와 세상에 선포하였다. 평화! 사랑! 내가 왜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대들은 아는가! 내 죽음을 보고 그대들이 알기를 간절히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