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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니피캇 Jun 07. 2023

2023년 5월 월간 서가


1.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 리처드 파인만


 아인슈타인 이후 물리학계 최고의 천재라 불리는 리처드 파인만 교수의 물리학 강의록이다. 파인만 교수가 1960년대 초 캘리포니아 공대 학부 저학년들을 대상으로 했던 기초물리학 강의 가운데 현대인이 알아야 할 '필수 교양' 물리학 주제만 골라 200여 페이지의 짧은 책으로 펴냈다. 파인만이 찬사를 받는 이유 중 하나가 물리학의 문외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상적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물론 기초적인 물리학 용어 정도는 예습한 문외한들일 경우에 그렇다. 물리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책을 두세 번 읽거나 꼼꼼히 요약 필기를 하면서 읽으면 황홀하고 즐거운 물리학의 세계를 맛볼 수 있다 (며 아는척을 할 수 있다). 여느 물리학 교양서들이 추구하는 트렌드(?)에 맞추어 방정식을 배제하고 일반인들이 읽기 좋도록 쉽게 출판된 책이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원리를 발견한 지 100년이 넘었지만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 대부분이 여전히 '중력' 하면 뉴턴의 사과를 떠올리거나 당기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이 가야 할 길이 아직 멀고 험하다는 의미다.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가 나온 지 60년이 넘어 이제 이곳저곳 수정이 필요한 구식 교재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책에서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중요한 지식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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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 만들어진 위험,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라는 베스트셀러 덕분에 도킨스는 가장 유명한 생물학자를 뽑는 대회가 있다면 다윈과 멘델에 이어 3위쯤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가장 유명한 무신론자를 뽑는다면 도킨스가 단연 압도적 1위일 것이다. 이 책을 앞에 놓고, 가톨릭 신자로서 나는 아마도 호교론적 태도를 무의식적으로 장착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몹시 궁금하기도 했다. 뭔가 강력한 것이 나올 것이라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래서 도킨스의 무신론은 오래전부터 유명했지만 근래에야 읽어 볼 마음이 생겼다. '과학 지상주의자이면서 이 시대의 천재 인간 중 하나인 도킨스가 무신론을 그토록 강력하게 주장하는 근거라면 혹시나 신이 없다는 과학적 발견은 아닐까?' 신 존재에 관하여 나와 도킨스는 극단적으로 의견이 다르지만 나는 그에 대한 편견이 없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읽었던 빈틈없는 논리와 살짝 까칠하고 냉소적인 스타일은 좀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내 마음은 불안과 호기심이 반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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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 프란치스코 교황 외


 오직 하나의 진리만 존재하는가? 아니면 사람마다 무수한 진리가 존재하는가? 기본적으로 종교는 핵심 진리에 있어서 배타적이다.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절대적 진리가 있는데, 그것은 계시나 깨달음을 통해 세상에 드러난다. 따라서 그 절대적 진리에 일치하는 것이 종교적 구원을 결정한다. 이러한 보호막이 전제되어 있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 울타리 안에 단단히 머물러 있지를 못한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진리는 결코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저는 진리가 절대적이라는 이야기를 신자들에게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적이라는 말은 초월적이고 모든 관계를 벗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에 따르면 진리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고 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따라서 진리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절대적" 대립이 대화를 차단하는 어떠한 상황도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내 주장을 관철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진리이고 진리는 관계다. 관계는 대화로써 가능하다.


4. 철학VS철학, 강신주


 엄청 두꺼운 벽돌책이다. 일반적인 철학사 서적이 시간 순서대로 철학의 흐름을 기술한데 반해 이 책은 독특하게 주제별로 묶었다. 비전공자들도 교양으로 읽기 좋은 것 같다. 다만 너무 두껍다 보니 2부 동양철학 편에서는 집중하기 힘들었다. 내가 서양철학사에 익숙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주제별로 쓴 책이기 때문에 한 번 읽었더라도 두고두고 필요한 주제를 발췌해서 다시 읽어보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언급되는 철학자들과 핵심 사상을 만나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배경지식 쌓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좀 아쉬웠던 점은 철학자들의 풀네임을 쓰지 않아 잘 모르는 철학자들이 나오면 검색하기 어려웠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30427248


5. 밑줄 긋는 남자, 카롤린 봉그랑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 밑줄이 그어져 있다. 밑줄과 간단한 메시지가 마치 주인공을 겨냥하듯 계속된다. 주인공은 시나브로 밑줄 긋는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상상은 마음을 더 안달 나게 만드는 법. 밑줄 긋는 남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점점 그에 대한 마음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커진다. 내가 보기에 주인공은 좀 미친 사람 같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내밀한 곳에 숨기고 싶은 약간의 광기가 있지 않은가? 인간 내면의 어떤 부분을 부각하는 것이 소설의 역할이다. 주인공의 광기에 고개를 저으면서도 그의 행보에 집중하게 된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55873039


6. 슈뢰딩거의 아이들, 최의택


 "슈뢰딩거의 아이들"은 양자중첩의 사태(?)를 설명하기 위한 사고실험이었던 '슈뢰딩거의 고양이'에서 착안했다. 세상이 요구하는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어떤 장애를 가진 이들은 집단에 존재하나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비유가 이 소설의 맥이다. 양자중첩은 인간의 의지가 좌우할 수 없는 과학적 사실이다. 우주 어디에서나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법칙이다. 그러나 차별과 편향은 법칙이 아니다. 인간의 편향된 의식은 진화가 만든 경향이기는 하겠지만 절반은 자유의지가 선택한 결과다. 그래서 차별을 하면 도덕적 책임이 뒤따른다. 역사를 돌아볼 때 소외받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못하는 중첩 상태가 아니라 언제나 존재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최의택 작가는 소외받는 사람들의 처지를 보통사람들이 볼 수 없는 탁월한 방식으로 그려낸다. 장애를 가진 인물과 장애인 가족을 둔 인물들의 심리와 시선이 서술될 때는 우리가 평소 의식하지 못한 마음속 편향적 태도를 뜨끔하게 끌어올린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02688727


7. 헤겔, 김준수


 나는 왜 이 책을 억지로 읽었을까. 이렇게 머리에 남는 게 없을 정도로 볼 것이라면 중간에 포기하는 게 낫다는 교훈이 남았다. 그래도 "즉자대자", "절대정신"이라는 용어와 헤겔의 저서 몇 권의 제목, 간단한 그의 일생을 '기억'하게 되었다. 내 지능이 좀 떨어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렵고 집중할 수 없었던 책이다. 보통 이렇게 힘든 책을 만나면 두 번 읽어서라도 도전하는데 이 책은 도저히 아니다. 저자 스스로는 무슨 말인지 알고 쓴 것인지 의문이다. 추천하지 않으며 링크도 생략한다.


8. 한산:태동하는 반격, 김동하


 영화 "영웅"에서 안중근의 기도가 이 소설에서도 중요한 질문이다. "조국이란 무엇입니까?"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이순신과 진송과 박예진의 상반된 선택을 대비하면서 결국 '살고자 하는' 개인들의 지극히 당연한 욕구가 사회와 국가의 근간임을 보게 한다. 소설 "한산"은 거대한 역사의 와중에 소모품처럼 사라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한 삶에 대해 말한다. 나에게는 취사반(?) 식모의 대사가 가장 중요하게 울린다. "다 살자고 하는 일인데. 살아야지." 그래서 소설 "한산"에서 이순신의 출정사는 특별하다. "너희는 각자의 몸을 나라처럼 여겨야 할 것이다!" 왕이나 국가에게 충성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이 아니다. 전쟁으로 짓밟힌 장병들 각자와 가족과 이웃의 삶을 되찾기 위해 구국하는 행위다. 그러므로 "구국의 공을 세움에 있어 신분의 귀천이 있을 수 없다."

 인간은 모여서 사회를 만들고, 사회를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타자의 삶을 파괴하는 폭력을 일으킨다. 다른 한편에서는 사람들의 삶을 지키려는 영웅들이 사회적 폭력에 저항하며 처절하고 비장하게 사랑하는 일에 목숨을 바친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10333072


9. 코드 브레이커, 윌터 아이작슨


 바야흐로 유전자 조작의 시대가 열렸다. 유전자 편집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느낌이 상당히 줄어든다. 용어가 무엇이건 간에 과학적 기술(記述)은 동일하다. DNA를 인위적으로 수정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이제 자연적 돌연변이와 오랜 세월의 진화 없이도 원하는 유전형질을 즉시 발현시킬 수 있다. 인간이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표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도 여느 사람들처럼 공포스러웠다. 인류가 결국 금기를 넘어서는 것인가!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 발견하고 보니 유전자 편집은 그리 어렵고 복잡한 기술이 아니었고, 생명의 진화에 수십 억 년 동안 일어나고 있었던 느리지만 자연스러운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수십 억 년의 진화가 만들어낸 자연의 신비로서의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의 발견과 이를 활용하는 분야에서 활약한 과학자들의 오랜 이야기다. 이제 크리스퍼-CAS9을 생명체의 유전자 가위로 활용할 수 있음을 발견한 제니퍼 다우드나와 에마뉘엘 샤르팡티에라는 이름을 다윈과 멘델처럼 생물학 교과서에 실어야 할 것이다.

 과학 그 자체는 '선악과'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태도는 '선악과'다. 크리스퍼가 새로운 도약의 도구가 될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의 시발점이 될지 알 수 없다. 이 책에서 우리는 과학의 문제와 윤리의 문제를 함께 다루게 된다. 아예 사용을 금지하기에는 너무 쉬운 도구다. 그러므로 비윤리적이고 위험한 사용을 차단하기 위해 인류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이들에게 투표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07509918


10. 갈증, 아멜리 노통브


 사형선고에서 부활 직후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1인칭 시점을 상상한 발칙하고 무례한(?) 소설.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어느 쪽도 부정하지는 않지만 신성보다는 인성에 집중한다. 인간이 '엄청나게 현존'의 방식을 '사랑, 죽음, 갈증'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시선은 신선하다. 그러므로 인간 예수도 '사랑, 죽음, 갈증'이 세상에서 엄청나게 현존하는 방식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로지 인간으로서 느꼈을 가장 중요한 감정과 감각이 무엇이었을지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신성과 인성이 모두 완전한 존재라는 그의 정체성은 곧바로 완전과 불완전의 공존이라는 논리적 오류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현실적인 이유는 아마도 신성 모독의 논란에 말려들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노통브는 금기를 넘어갔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05746596


11. 느빌 백작의 범죄, 아멜리 노통브


 "갈증"에서 본 노통브의 시선이 놀라워서 연이어 읽었으나 이건 좀 스토리 전개가 억지스러워서 별로였다. 어쩌면 인간의 억지스러움 자체가 이 소설의 주제인가 싶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주 어떤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걱정에 빠져들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지레 에너지를 쏟는다. 점쟁이의 엉뚱한 한마디가 느빌 백작의 일상을 뒤흔드는데, 사교계의 허영심이 가득한 느빌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눈앞에 뻔히 보이는 데도 독자들의 가슴에 열불이 터지도록 엉뚱한 방향으로만 생각을 집중한다. 가끔 '이 인간은 몰라서 이러는 걸까, 아니면 일부러 이러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의외로 이런 편향은 일반적인데, 하기로 마음먹은 일이나 앞에 놓인 선택지가 자기 편향된 사고와 결이 맞아떨어지면 다른 방향을 돌아볼 여유가 극단적으로 줄어든다. 그렇게 하기로 선택했으니 선택을 만족시키는 이유가 옳은 것이고 선택을 반대하는 것은 나쁜 것이다. 인간의 판단력은 사실 그렇게 억지스러움을 넘어서야 비로소 이성적이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44781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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