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0의 투표

by 마니피캇

어떤 뉴스에서 4050 세대가 민주화 세대라서 민주당을 지지했다는 분석을 했던데 사실 지금 40부터 50대 초중반 까지는 6월 항쟁 때에도 어려서 잘 몰랐고, 운동권이 있기는 했지만 대학 등록금 인상 저지 정도나 했던 마지막 세대였다. 대체로 목숨을 건 민주화 운동은 지금 50대 중반 이상 60대 형님 누님 세대가 마지막이었다. 우리는 민주화 운동의 공로에 감히 숟가락을 얹을 수 있는 세대가 아니다. 나는 97학번인데 우리 세대는 선배들의 목숨 건 투쟁 덕분에 민주주의에 무임승차했다. 그에 대한 부채의식은 옅게 있었다. 5.18과 4.3에 대한 거짓 정보와 4.19의 의미를 축소하는 교육 과정에 대한 배신감도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 그래서 대체로 민주당의 지지가 높은 세대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약한 연대였다.


4050 세대가 이 사악한 집단을 더 이상 인간 집단으로 "볼 수 없게" 된 강력하고 결정적 계기는 세월호 참사라고 생각한다. 2014년 그 해에 4050 세대는 3040 세대였다. 이제 막 부모가 되었거나 초중고 아이들을 키우던 부모 들이었다. 그해 봄부터 가을까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운전하다가도 울고 일하다가도 울고 걷다가도 울었다. 특히 아이들이 너무 많이 죽었기 때문에 그것은 부모로서의 공감이고 연대였다. 그런데 그 사악한 집단은 참사의 희생자들을 모욕하고 유가족들을 배상금을 노리는 시체팔이로 몰았다. 정말 끔찍한 행태였다. 그 소시오패스들은 결코 몰랐겠지만 모든 부모들의 공감 신경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이자 분노를 새긴 것이다. 이 전후에도 광우병 소고기나 교과서 획일화 등 학부모 세대를 자극하는 머저리 정책들이 많았기 때문에 4050의 정치적 입장은 점점 콘크리트가 되었다. 이태원 참사와 채상병 순직 사건은 그 집단은 역시 변하지 않는다라는 확신을 주었다. 그 부류의 인간들은 절대로 이 감정을 이해 못 하겠지만 나는 선거 때만 되면 세월호 참사와 유가족을 대하던 그 소시오패스들이 기억난다. 그자들이 희생자들을 모욕하던 태도는 마치 내가 당한 것처럼 고통과 모멸감을 일으켰다. 그래서 나의 한 표는 국가로부터 외면당한 사회적 참사의 불쌍한 희생자들을 위한 애절한 기도다. 이제 그 위에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고통이 더해졌다. 윤석열 일당의 내란은 이 고통스러운 기억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내 자식들의 터전에서 쿠데타를 해? 내 새끼들이 살 나라를 감히 북한처럼 만들겠다고? 만일 탄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4050은 정말로 무기를 들었을 것이다. 윤석열을 죽이고 독재를 막기 위해 목숨 걸고 민병대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지난 6개월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고, 그토록 투쟁적일 수밖에 없었다. 4050의 저 구도는 죽을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내란세력은 똑똑히 알기를 바란다. 이것은 진보와 보수의 대결도 아니고 정책의 호불호도 아니다. 국민들이 죽는 참사가 일어나도, 윤석열이 내란을 일으켜도 아랑곳하지 않고 권력욕만 채우기 급급한 소시오패스 정치집단에 대한 4050 세대의 "사형 판결"이다.

그 소시오패스 집단은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까맣게 모르고 리박스쿨이라는 새로운 헛짓거리를 했다. 댓글 조작도 문제지만 초등학교 교육 시스템을 건드렸다는 점은 치명적이다. 30대 부모 세대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사악한 놈들아. 계속 그 따위로 해라. 공동체의 번영과 행복은 패대기치고 너희의 정칙적 입지를 위해 아이들을 세뇌시키는 시도까지 하였구나! 그 자들은 뼛속까지 그런 놈들이다. 그 정당은 쇄신이 아니라 해체해야 한다. 정말 꼴도 보기 싫다. 영남 지역구에 꽂히는 빗자루가 되기 위해 비리와 협잡이나 하던 것들은 다 퇴출되어야 한다. 내란죄의 엄한 벌로 그자들을 다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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