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스민 이야기
한국에 놀러 온 친구가 비건(vegan)이라 합정에 비건 음식을 판매하는 곳을 찾아본 적이 있었다. 채소, 과일, 콩, 견과류 등을 먹는 친구인데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샐러드 정도였다. 콩으로 만든 스테이크처럼 다양한 요리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고 채식주의자용 비건 만두를 사서 먹어봤다. 담백하니 또 생각이 날 거 같았고 눈에 띄면 사두곤 한다.
동물 실험과 같은 동물에 대한 학대나 착취 등을 거부하는 브랜드나 기업체가 늘어나면서 음식 말고도 이러한 신념이나 철학을 실천하는 패션 및 뷰티 브랜드가 많아지고 있다. 비거니즘(Veganism: 동물에 대한 착취나 학대를 거부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종차별을 반대하며 동물 복지를 생각하고 나아가 환경과 건강에 대한 인식으로 연결된다.
비건 패션(vegan fashion)이라고 하면 동물 가죽이나 털로 만들어진 옷, 가방이나 액세서리를 착용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동물의 사육환경이나 운반 및 도축 방식을 소비자들은 모두 알 수 없고 몇몇 다큐멘터리에서 드러난 동물 사육 현장이나 도축 방식은 참담했다. 이를 간접적으로 목격한 이들은 비건 패션에 관심을 두게 되고 이러한 패션 철학을 지지하는 기업체나 브랜드 제품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프라다, 구찌, 샤넬 등 해외 유명명품 브랜드들은 컬렉션에서 퍼(fur)나 동물 가죽 제품을 제외하고 우리에게 익숙한 나이키나 H&M도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했다. 그렇다고 가죽이나 양모 등을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식품산업에서 사용하고 남은 부산물을 활용하는 등 변화의 움직임이 보인다.
비건 패션이 모두 친환경적인 것인가? 아니다. 동물성 원료를 담고 있지 않은 흔하디흔한 소재인 폴리에스테르나 나일론은 보통 재활용이 불가한 자원으로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비교적 친환경적인 비건 소재의 제품을 고르는 안목이 필요하다. 실험실에서 재배한 실크, 과일과 잎으로 만든 비건 가죽, 친환경 버섯 가죽인 마일로(Mylo leather), 버려진 고기잡이 그물 등으로 만들어진 재생 나일론(ECONYL), 해로운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은 오가닉 코튼(Organic cotton), 상대적으로 살충제 등 화학 제품을 덜 사용하며 재생 가능한 린넨(Linen), 너도밤나무의 재생 섬유로 만드는 모달(Modal), 생분해가 가능하고 내구성이 좋은 삼(Hemp), 콩 가공 부산물로 만들어진 친환경 소재이자 베지 캐시미어로 알려진 소이 패브릭(Soy fabric) 등 알아 두면 좋은 비건 패션 소재다.
동물 실험을 반대하고 재생가능한 소재를 개발해 사용하고 있는 스텔라 매카트니(Stella McCartney)의 비건 가죽 백을 구경하다가 마르헨제이(Marhen.J)와 낫아워스(NOT OURS)라는 브랜드까지 알게 되었다. 동물 가죽을 사용하지 않고 가공품 부산물 가루에서 만들어진 가죽을 활용하거나 리사이클 나일론을 사용해 만들어진 가방에 눈길이 갔다. ‘눈으로 보기에만 예쁜 가방이 아니라 동물과 환경을 고려하는 패션이라니.’ 비건 패션은 물론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될 게 뻔하다. 아니 사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패션에서 가치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친환경적 소비 또는 가치 소비에 중점을 둘 것이고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이 어쩐지 반갑다.
*<플롯매거진>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