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du의 와인 이야기 및 테이스팅 노트
한 병을 다 비우고도 와인의 정체를 끝끝내 모를 수 있다. 와인메이커가 기대하는 만큼 온전히 숙성된 맛을 느끼려면 혹은 와인 속 미생물들이 지들 멋대로 움직이면서 최적의 맛을 만들어내는 그 순간을 느끼려면 시음 적기에 딱 맞춰 와인을 마셔야 하는데 이건 적당한 시기에 주식을 매도하여 수익을 내는 거만큼 어렵다. 시음 적기에 들어선 와인을 만나면 그래서 짜릿하다. 한 모금에 온 몸이 짜릿짜릿해지는 경험은 언제나 놀랍고 신기하다. 산도 (acidity)나 새콤한 과실 향 (레몬, 라임 등) 때문에 털이 곤두서는 그런 느낌이 아니라 다양한 맛이 어우러져 균형감이 느껴질 때, 뭐 이런 게 다 있나 싶어 짜릿. 특히 견과류 향과 꽃향이 은은하게 올라오는 와인을 좋아하는데 견과류 향이 와인의 무게감을 꽃향이 우아함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그 짜릿함을 좇아 와인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상대를 알고 싶어 지듯 나도 와인이 알고 싶었다. 얘는 왜 이렇게 맛이 있는지 또 다른 애는 뭐가 부족한 건지. 그러면 누가 이런 걸 만들었는지, 어떤 복잡하고 지난한 양조과정을 거쳐야 하는 건지. 포도를 수확한 농부도 수확한 포도로 와인을 만들어내는 와인메이커도 만나고 그들과 수다를 떨며 와인을 시음해보고 싶어 졌다. 프랑스든 미국이든 직접 가서 내 눈으로 보고 싶다. 물론 호주 바로사 밸리를 방문한 경험이 있지만 그때는 내가 와인에 빠질 줄은 정말 몰랐다.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직접 방문은 당분간 어렵기에 아쉽기만 하다.
어떤 와인을 시음하고 1년 후 다시 테이스팅 할 때가 있다. 보통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데 꽤 괜찮은 품질의 와인이라면 들쑥날쑥했던 맛과 향이 조화를 이루고 산도는 튀지 않고 타닌은 부드럽지만 개성은 남아 있다. 쉽게 말해 조금 더 맛있어진다. 느긋한 마음을 갖고 기다려주면 와인은 변한다. 1년이 아니라 1시간 만에도 와인은 변한다. 코르크를 열고 산소와 접촉하는 순간, 와인은 병 속에서 그리고 잔 속에서 변화를 거듭한다. 변화를 느껴본 사람이라면 와인 마실 때 느긋함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걸 알 테다. 너무 빠른 속도로 와인 잔을 비워낸다면 와인은 자신을 다 뽐내보지도 못하고 우리는 그 정체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느긋함을 갖는다면 와인은 자신이 가진 장단점을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다.
친구들과의 수다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주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다. 100세 시대라는 말은 솔직히 두렵다. 평생 한 가지 일로 먹고 산다는 게 쉽지 않을 테니 투잡, 쓰리잡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질 거다. (나는 번역가인데 AI가 곧 다 해줄 테니 내 직업은 없어질 테지...) 벌어 놓은 돈으로 새로운 사업을 해볼 수도 있고 공부를 더할 수도 있고 완전히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도 있다. 나는 사업체 공식 및 개인 블로그에 와인 관련 글을 벌써 2년째 쓰고 있는데 글을 보고 와인을 구매하러 온 사람들이나 내 글을 읽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좋다. 나아가 테이스팅 경험을 쌓으며 와인을 알아가는 중이다. 테크니컬 시트 (Technical Sheet: 와인에 관한 상세한 정보가 담긴 글로 포도 수확시기, 기후, 토양, 품종, 숙성기간 및 방법, 알코올 도수, 테이스팅 노트, 페어링, 수상이력 등의 정보를 포함)를 보면 와인에 대한 팩트는 알 수 있어도 테이스팅 시점 및 환경에 따라 와인의 향, 맛, 느낌 등은 완전히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와인을 알기 위해서는 마셔보는 수밖에 없다. 어느 유명 도멘의 와인메이커는 내게 말했었다. 테크니컬 노트는 참고할 수 있지만 와인을 다 보여주지는 못한다고. 첨언하자면 와인은 정복할 수 없기에 더 매력적이다. 그래서 시작은 있지만 중간에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