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와인취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nduwinetasting Sep 04. 2024

활화산을 품은 시칠리아 에트나 와인

와인취향

이탈리아 레드 와인으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어쩌면 바롤로(Barolo)나 바르바레스코(Barbaresco)일지 모르겠지만 이에 못지않게 사람들 입맛을 사로잡은 건 시칠리아(Sicilia) 와인이다. 시칠리아섬 동쪽이자 시칠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카타니아(Catania) 북쪽에 위치한 에트나(Etna) 화산을 둘러싸고 있는 밭에서 자란 포도로 만든 레드 와인, 에트나 로쏘(Etna Rosso)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포도 품종 중 하나인 네비올로(Nebbiolo)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맛봐야 할 와인이라고 대놓고 추천해 본다.                                                               


출처: USA Today (Etna Walk/Giuseppe Di Stefano, Reuters)


기원전 4,000년부터 와인을 만들었다고 알려진 시칠리아는 온화한 기후를 보이며 해안 지역에서 불어오는 미풍의 영향을 받기도 하면서 포도가 자라는데 좋은 환경을 형성하고 있다. 과거에는 생산량을 늘리는 데 주목했기에 포도즙을 수출하는 데 그쳤지만 현재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와인 산지로 자리 잡았다. 특히, 활화산인 에트나 화산을 말굽 모양으로 감싸고 있는 포도밭은 보통 고도가 높은 곳에 있는데 와인의 산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화산토로 인해 미네랄이나 철분이 느껴지는 와인이 생산되기도 한다. 이곳 대표적인 토착 품종으로는 네렐로 마스칼레제(Nerello Mascalese), 네렐로 카푸치오(Nerello Cappuccio), 네로 다볼라(Nero d’Avola), 프라파토(Frappato), 카타라토(Catarrato) 등이 있는데 그중 네렐로 마스칼레제에 주목해 보자. 네렐로 카푸치오나 프라파토와 블랜딩하기도 하며 연한 빛깔로 여리여리한 면모를 보이진 않을까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재배 지역에 따라 다채로운 맛과 향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이고 화산토의 영향으로 강한 타닌까지 선사하니 숙성된 모습까지 기대할 수 있다. 재배하기에 까다로운 품종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어쩐지 피노 누아(Pinor Noir)스럽기까지 하다.          

 

에트나 화산은 유럽에서 가장 활동적인 화산으로 보고되었는데 위험해 보이는 이곳에 매년 수많은 관광객들이 용암 분출과 눈앞에 펼쳐지는 기이한 현상을 구경하려 방문한다. 활화산인 만큼 전문가들은 면밀하게 화산 활동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또, 화산은 지속적으로 연기를 내뿜고 있기에 비교적 활동 예측이 가능하다고 한다. 올해 7월 그리고 8월 초, 분화구에서 솟구치는 용암과 수증기 폭발 등이 목격되었으며 화산재와 연기로 인해 카타니아 공항은 비행편을 취소하는 사태를 맞이하기도 했다.


에트나 화산이 와인에도 영향을 미칠까? 물론이다. 분출로 인해 포도 재배 환경(토양 구성 등)은 계속 바뀌고 있으며 에트나 지역은 작은 구역으로 나뉘며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되었다.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이 프리미에 크뤼나 그랑 크뤼로 분류되는 것처럼 이 지역은 콘트라데(Contrade, 싱글 빈야드)로 세분된다. 자연이 가져온 변화를 와인에서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양한 와인을 갈망하는 사람으로선 반기지 않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와인 품질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133개 콘트라데가 있으며 9개가 대기 중이라고 하니 곧 140여 개가 넘는 콘트라데 와인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출처: Wine Tourism


에트나 지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와이너리 중 하나가 바로 테누타 델레 떼레 네레(Tenuta delle Terre Nere)다. 에트나를 ‘지중해의 부르고뉴’라 생각하며 와인을 양조한 이 와이너리는 에트나 로쏘의 기준을 세웠다는 평가와 더불어 풍성한 아로마와 숙성 잠재력을 갖춘 우아한 와인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필록세라(Phylloxera: 포도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진딧물)의 영향을 받지 않은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로 와인을 양조하기도 하는데* 매년 와인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140년이 넘은 포도나무라니! 네렐로 마스칼레제와 네렐로 카푸치오로 이루어진 에트나 로쏘나 산 로렌조(San Lorenzo)도 개인적으로 아주 좋으니, 기회가 닿는다면 마셔볼 수 있기를! 


무더운 여름을 견뎌내고 있는데 겨울에 에트나 스키 리조트에서 놀며 황홀한 활화산 자태를 감상한 후에 와인을 마시는 상상을 하니 괜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 Tenuta delle Terre Nere Calderara Sottana Prephylloxera La Vigna di Don Peppino Etna Rosso DOC




*<플롯매거진>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s://plotmags.com/

**<와인 좀 마셔볼까>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2e4ae9e8c67c4f54?referrer=searchRecen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