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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와인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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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duwinetasting Aug 08. 2024

무더운 여름, 달뜨거나 가라앉거나

와인취향

뜨겁거나 청량하거나. 활기차거나 지치거나. 달뜨거나 가라앉거나. 햇빛이 너무 뜨거워 모든 것이 다 녹아버릴 듯하다가 물기를 머금은 먹구름이 몰려와 비를 한차례 뿌리고 가면 상황 반전. 여름은 변덕스러운 날씨만큼 우리를 수많은 감정 소용돌이 속으로 인도한다. 이런 여름과 어울릴 거 같은 영화,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홀짝거리거나 여운을 느끼며 마셔보면 좋을 와인을 내 마음대로 소개한다.



한여름 밤 열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영화 <콜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 2018>은 앳된 티모시 샬라메를 볼 수 있어도 좋지만, 여름 별장과 휴가라는 한정된 시공간에 머무는 두 청년의 사랑이 설레기도 풋풋하기도 안타깝기도 해 마음을 놓지 못하고 본 영화다. 상반된 모습을 한 청년 (친화력이 좋은 건장한 청년 올리버 그리고 감수성이 예민하고 마른 엘리오)는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눈 부신 햇살 속에 등장해 사랑을 키워가는데 영상미 넘치는 장면들과 애틋한 마음이 소중하게 느껴져 퀴어 영화라는 사실을 잊고 공감해 버렸다. 


아련하지만 또 눈부시기도 했을 첫사랑. 이탈리아 토착 포도 품종인 코르테제(Cortese)로 만드는 피오 체사레 가비(Pio Cesare Gavi)가 떠올랐다. 영화 속 아름다운 이탈리아 시골이 나와서일까. 산뜻하고 깔끔하며 여운이 길지는 않아도 단조로운 와인은 아니다. 레몬과 라임과 같은 시트러스 계열 과일 향이 올라오고 숙성되면 또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지만, 여운에서 느껴지는 쌉싸래함은 어쩐지 이어지지 않은 두 청년의 사랑 같이 느껴진다.



감각적인 색감으로 눈길을 사로잡으면서도 가난, 성매매, 위탁 가정 등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아이의 시선으로 사랑스럽게 그리고 천진난만하게 그려낸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The Florida Project), 2018>. 주인공인 무니와 그녀의 엄마는 싸구려 모텔인 매직 캐슬에서 지내며 막막한 현실을 마주한다. 그러다 잘못된 선택을 하는 무니의 엄마, 그리고 헤어질 위기에 처한 모녀. 미혼모인 핼리는 딸 무니를 사랑하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그녀에게 어떤 선택권이 있었을까.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디즈니랜드의 화려함과는 비교되는 빈민층의 삶이 고단하게 느껴진다. 미혼모인 핼리는 딸 무니를 사랑하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그녀에게 어떤 선택권이 있었을까. 어린 나이에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기도 어렵고 살 집도 없지만 아이를 버리지 않고 키워 나가는 핼리에게 정부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화려한 건물 외관과 아이들의 경쾌한 웃음소리로 가려져 있지만 언제든 비집고 나올 준비가 되어있다.


프랑스 부르고뉴(Bourgogne) 지역의 샤르도네로 만드는 내추럴 와인, 프레데릭 코사흐 블랑 비고뜨(Frederic Cossard Bourgogne Blanc Bigotes). 정감 있는 레이블에 손이 가는 부분도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느껴지는 균형감에 미소가 절로 난다. 사회 시스템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지만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고민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 영화를 본 후 느껴지는 착잡한 마음을 조금이나 달래 줄 것 같은 화이트로 까르르하는 아이들처럼 활기차다. 블랑의 산도가 기름진 음식의 텁텁함을 한 방에 해결해 주듯이 현실에서의 문제도 그렇게 해결되면 좋겠다는 건 너무 이상적인 생각이겠지.  


한국 영화 말고 일본 영화인 <괴물(Monster>, 2023>은 꼭 보려고 했던 영화 중 하나인데 극장에서 본 후 여운이 진하게 남았다. 다는 아니겠지만 특유의 느릿하고 따라가기 어려운 감정선 때문에 일본 영화를 막 찾아서 보지는 않는데 이 영화는 분명 인상적이었다. 돼지 뇌에 관한 이상한 질문, 미심쩍은 학교와 선생들, 가정 폭력이 의심되는 흔적, 수상한 어른들, 아이들만의 아지트, 화재, 폭우 등, 이 모든 게 크게 3가지 시선으로 진행된다. 누가 괴물인가? 처음엔 학교 측 관계자들이 괴물인 줄 알고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다른 가해자가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소문과 오해가 무성한 가운데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불분명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저지른 죄를 남편에게 덮어씌운 교장 선생님, 요리에게 부정적인 말을 퍼붓는 요리의 아버지, 미나토가 요리를 괴롭히고 있다고 믿는 호리 선생, 요리를 괴롭히는 반 아이들, 미나토의 말을 듣고 학교와 선생님을 의심하는 엄마 사오리 등 반전, 복선 그리고 트릭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영화다. 특히, 결말이 기억에 남는데 폭풍으로 바깥은 난리가 났는데 기차 안에 미나토와 요리는 무사할까. 나는 맑은 날 푸르른 숲에서 신나서 뛰어나가는 두 아이를 바라보며 하늘나라로 간 것으로 생각했다. 누군가는 아이들이 이미 기차에서 빠져나왔으며 폭풍이 지나가 해맑게 뛰어다니는 것이라고 했다. 결말이 무엇이든 간에 불안하고 슬픈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 영화 두 번은 봐야 할 듯하다. 다시 보면 놓친 부분이 보일지도. 




시선에 따라 같은 사건도 다른 이야기로 풀이된다. 나도 타인도 어느 순간 괴물이 될 수 있고 의도했든 하지 않았던 오해를 낳아 원치 않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알리고떼(Aligote)는 샤르도네(Chardonnay)와 비교당하며 한때 외면 받던 억울한(?) 품종인데 다른 시선으로 이 품종을 바라보면 그 맛과 잠재성에 매혹될 수 있다. 그저 가볍게만 마실 수 있는 화이트가 아니란 사실에 주목해 보자. 물론, 기후 변화의 영향도 있었지만 누가 만드는 알리고떼냐에 따라서 또 그간 품종에 대한 연구와 발전 덕분에 변신을 시도한 화이트 품종임엔 틀림없다. 엠마누엘 후제 부르고뉴 알리고떼(Emmanuel Rouget Bourgogne Aligote)나 도멘 드 빌레인 부즈롱 알리고떼(Domaine de Villaine Bouzeron Aligote)을 마셔본다면 달리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플롯매거진>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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