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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duwinetasting Dec 16. 2021

얼죽샴

mandu의 와인 이야기 및 테이스팅 노트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커피) 취향인 사람이 있듯 나처럼 얼죽샴(얼어 죽어도 샴페인) 취향인 사람도 있지 않을까?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 어느덧 2021년을 떠나보내야 하는 때가 다가오고 있다. 이런 시국에 송년이나 연말 파티는 물 건너갔고 홀로 또는 가까운 사람과 함께 조촐하게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이럴 때 빠지면 안 되는 게 샴페인이라고 홀로(?) 외치는 나는 얼죽샴이다. 이 겨울에 무슨 샴페인이냐고, 아이스 버킷에 담긴 와인 병만 봐도 춥다고? 일단 마셔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추운 겨울 별미가 냉면인 거처럼, 겨울에도 아이스크림을 찾는 이들이 있는 거처럼 겨울 샴페인 매력에 푹 빠져볼 시간이다.


샴페인은 차갑게 칠링을 해서 마시는데 그래도 술이니깐 몸이 화끈 달아오르는 느낌이 든다. 특히, 찬바람 쌩쌩부는 날 따뜻한 실내에서 마시는 샴페인은 혀에서는 차갑게 몸에서는 뜨겁게 반응한다. 상반되는 경험이 주는 짜릿함이 찐이다. 탄산이 소멸되어버린 올드 빈티지 샴페인을 제외하고는 샴페인 잔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버블이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버블을 보고 있노라면 묘한 느낌이 든다. 빨려 들어갈 거 같기도 하고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거 같기도 한 게 잡힐 듯 안 잡히는 밀당 고수. 그러다가 코끝을 톡 쏘면 앙칼진 면에 놀라고 꿀꺽 삼키면 입에 남는 여운에 그다음 모금을 기대하게 된다. 


샴페인은 더 이상 특별한 날에만 마시는 와인은 아니지만 보통의 날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힘을 갖고 있다. 이쯤 되면 나는 샴페인 예찬론자라 불려도 될 듯하다. 최근 마신 샴페인 몇 가지를 소개한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브루노 파이야르 블랑 드 블랑 (Bruno Paillard Blanc de Blancs) 2006. 매그넘 사이즈로 스탠더드의 2배이니 1.5리터에 달한다. 그러면 스탠더드 사이즈의 2배 가격이어야 하지만 보통은 2배가 넘는다. 매그넘 샴페인이 더 맛있어서 그런가? 데고르주망이 2015년에 이루어졌으니 최소 9년은 있다가 출시된 샴페인이다. 복합미도 있고 밸런스도 좋고 고소한 내음도 올라오고 나무랄 데가 없었다. 분위기를 돋우는데 이보다 더 좋은 선택이 있을까.


빌마르 에 씨에 코흐 드 뀌베 (Vilmart et Cie Coeure de Cuvee) 2010. 멀리서 전해온 좋은 소식과 함께 한 샴페인으로 와인 잔에 따르자마자 번지는 향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샤도네이 품종 80%와 피노누아 품종 20%가 블랜딩된 RM 샴페인으로 그 강렬함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강렬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섬세한 면까지 갖추고 있는 걸 보면 이런 보물을 만드는 사람은 누구인가 싶다. 그래서 찾아봤다. Laurent Champs이 샴페인 하우스를 이끌고 있다는데 실제로 그로 인해 와인에 생동감과 섬세함이 더해졌다고 한다. 이 정도면 오버 좀 해서 운명적 만남이 아닌가.


라빠리즈 프호사(Lafalise Froissart) 뀌베 276.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따끈한 신상 샴페인이다. 시음 중 내가 가장 맛있다고 꼽은 와인이었는데 피노누아 비율이 높고 라꽁플리인지 루베르튀르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프레데릭 사바르 (Frederic Savart) 샴페인이 연상되었다. 인상 깊은 샴페인은 공식 홈페이지를 검색해 필요한 정보를 찾아본다. 솔레라(Solera) 방식을 사용했다는 말을 얼핏 들은 거 같아서 확인해보니 그러했다. 길고 자세하게 설명할 수도 있지만 솔레라 방식이란 빈티지가 다른 와인을 배럴에서 배럴로 이동시켜 섞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맨 아래 배럴에 가장 오래된 와인이 있고 피라미드처럼 쌓아 올린 배럴 맨 위에 새로운 와인을 넣으면 아래로 흘러서 여러 빈티지가 섞이게 된다. 그 결과, 일정하고 복합미 넘치는 논 빈티지 샴페인이 탄생하게 된다.



그동안 일하고 공부하느라고 글을 쓰지 못했다. 실은 밑천이 바닥나서 그런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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