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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톡 주인장 Jun 16. 2024

일방통행, 엄마를 향한 '나 혼자 복수'

누가 나 좀 말려주세요

엄마 전화 먼저 끊어버리기


저녁 약속이 있어서 늦는다고 엄마에게 전화했다. 아침에 나오면서 이야기했지만 기억 못하실테니까. 혼자 저녁식사 하시라고 짧게 통화하고 끊으려 하는데 수화기 너머 뭐라뭐라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핸드폰을 다시 귀에 대는 대신 그냥 끊어버렸다. 일찍 와라, 그런 종류의 내용이겠지. 찝찝하게 통쾌했다. 

예전 직장 시절, 야근하고 있는 내게 전화해서 오늘도 늦냐, 무슨 일이 그렇게 끝이 없냐, 대한민국 월급 너 혼자 다 받냐 등등 일방적으로 하고 싶은 말 쏟아내고 딱 끊어버렸던 엄마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니, 그게 아니고, 어버버하다가 뚜우~ 통화 종료음을 들으며 씁쓸한 뒷맛에 일하던 리듬도 잃곤 했었는데, 이제 엄마가 당할 차례인 거야.


며느리들이 전화 안 한다, 당신을 무시한다, 고정 레퍼토리를 시작하시면, 다 엄마가 이어준 건데, 더 좋은 며느리감 구하지 그랬냐고 대꾸한다. 한 다리 건너인 며느리가 아니라 아들한테 뭐라 하라고 한소리한다. 당신의 시집과 친정을 ‘술 좋아하는 집안 VS 학자 집안’으로 비교하는 단골 멘트에는 요즘 외할머니할아버지 제사를 누가 지내고는 있냐고 (외갓집 장손이 집안과 의절 중) 살짝 비웃어준다. 

딸 많은 친구분이 이 딸 저 딸이 모시고 놀러 다닌다고 부러워하면, 나도 언니동생이 없어서 힘들고 아쉽다고 되돌린다. 다른 친척 집안과 비교하며 자식들을 모두 대학까지 가르쳤다고 자부하시면, 우리 형제는 교육은 받았지만 사랑과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엉뚱한 토를 단다. 

엄마의 인지능력에 문제가 있다 보니 타격감이 부족한데도 꾸준히 도발하고 타박한다. 그래서 안심하고 더 막하는지도 모르겠다. ‘기억은 못해도 감정은 남는다’는 돌봄의 금언은 애써 무시한다. (나, 오늘 이러다 돌 맞는 거 아냐? 너무 바닥인데...)


의무로 돌본 엄마와 도리로 모시는 딸


가끔 생각한다. 나는 지금 엄마에게 복수하고 있는 걸까? 제대로 하는 것 같지도 않으니 ‘복수하고 싶은 걸까?’가 정확한 워딩일 수도 있겠다. 복수라니! 배 아파 낳아서 뜨신 밥 해먹이며 대학까지 시킨 엄마에게 할 소린가. 싱글맘이 된 후 가장 노릇을 할 수 있게 육아를 도와준 엄마가 아닌가. 무엇보다 현재 단 둘이 살며 서로의 일상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받는 사이잖아. 패륜의 분위기는 피하고 싶지만, 복수 대신 앙갚음이나 되갚음, 보복, 학대 같은 단어가 떠오르니, 뭐 거기서 거기다. 


아, 물론 정서적, 감정적, 심리적으로 그렇다는 의미다. 나는 내 집에서 엄마의 의식주를 책임지며 모시고 있다. 아파트 단지 평균 2.5배의 난방비를 내고 홍삼과 뉴케어와 베지밀이 떨어지지 않도록 신경쓰며 일요일이면 절에 가자고 외출을 채근한다. 밥을 한 숟갈이라도 더 드시게 하려고 잔소리를 하고, 칭찬받지 못하는 새 옷을 사드리고, 노인용 컬러링북과 퍼즐을 주문한다. 상황이 된다면 가까운 공원에라도 모시고 나가려고 한다. 이밖에도 쏘매니매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노 프러블럼. 늘어놓고 보니 무슨 효녀라도 난 것 같지만, 그럴 리가! 이제 와서 남동생 집에 가시라고 해서 평지풍파 일으키기 싫으니까, 객관적으로 내 환경이 제일 나으니까, 그냥 내가 모시고 있는 거다. 엄마가 부모로서의 의무로 우리를 돌봤듯이 나는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하고 있는 중이다. 


사랑은 기억 못하고 상처만이 남는다


내가 엄마에게 주지 않는 또는 주지 못하는 것은 사랑, 다정함, 지지, 위안, 공감 따위들이다. 나도 받은 바가 없는 것들이다. 오히려 내가 기억하는 건 엄마로부터 받은 상처들이다. 어렵게 전한 나의 이혼 결심을 듣고 던진 첫 마디가 “너도 잘못한 게 있겠지!” 였다. 이혼 후에는 “여자가 한 번 결혼했으면 됐지, 재혼할 생각은 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나름 걱정스런 수술을 앞두고 병원에 오실 필요 없다고 했더니 “그래. 내가 간다고 무슨 도움이 되니. 난 안 갈란다.” 하시더니 3박4일 입원 동안 진짜 안 오셨다. 2회 동일한 상황 반복. 내 운을 몰빵한 아들에 대해 거침없는 혹평을 쏟는 일도 다반사다. (나, 오늘 커밍아웃데이인가? 너무 달리는 듯...) 


주위에서 보면 일찍 남편을 잃고 혼자 자식을 키운 엄마들은 대체로 자기 주장 강하고 독립적인 분들이 많다. 환경이 만들어낸 당연한 결과이리라.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다. 원래 감정보다 이성이, 공감보다 문제 해결 능력이, 하고 싶은 말은 하고야마는 성향이 더 발달했으리라. 나도 엄마 못지않다. 대학도 직장도 결혼도 이혼도 이사도 퇴직도 모두 내가 결정하고 살아왔다. 자주 확인하는 바이지만, 나는 엄마와 많이 닮았다. 그래서 서로 밀어내는 건지도 모르겠다. 


불현듯 남동생들이 강한 성정의 엄마와 누나 사이에 끼어 힘들었던 건 아닐까 궁금해졌다. 이런저런 대소사에 다정한 공감과 의논보다는 통보에 가까운 대응을 경험했을 것이다. 남자형제들끼리 무언의 공감대를 지니고 있을 것도 같다. 하긴 그 정도 난처함과 소외감은 내가 딸로서의 보살핌을 받는 대신 엄마와 함께 집안 문제를 해결하는 半 가장으로 살아온 것에 비하면 충분히 감당할 만한 것이었으리라. 


엄마가 돌아가시면 정말 슬플까?


엄마가 돌아가시고 의외로 오랫동안 힘들어하는 후배와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셔도 그렇게 슬플 것 같지가 않은데 너를 보면서 이런 마음이 괜찮은 걸까?’ 싶다는 나의 고백에, 후배는 자신도 그랬는데 막상 돌아가시고 나니 잘못한 게 너무 많이 생각나고 마음이 아프다고 대답했다. 자신도 정말 그럴 줄 몰랐으며, 선배는 같이 살았으니 더 많이 힘들 거라고 덧붙인다.


현실로 닥치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니, 더 이상의 왈가왈부는 무의미한 셈이다. 한동안은 엄마와 나의 관계가 질적으로 개선되기를 바랬다. 주변과 SNS 등에서 목격하는 다정하고 애틋한 모녀가 조금은 부러웠다. 무엇보다 이렇게 데면데면한 사이로 돌아가시면 내게는 또다른 상처가 될 것 같았다. 엄마의 전화에 “네에” 또는 “저예요. 말씀하세요” 라는 형식적인 스타카토 응대가 아닌 “응, 엄마~” 다정하게 말꼬리를 높이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린 비슷한 게 많은 모녀니까, 그리고 같이 살고 있으니까, 어느 날 사소한 걸로도 사이가 좋아지지 않을까 기대했다. 각자 상대방에게 원하는걸 요구하고 지적질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위하며 마음을 나누는 그런 엄마와 딸이 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었다. 그런 기대가 오히려 관계에 도움이 안 되고, 스스로 실패하는 기분이 들게 하는 것 같아서였다. 엄마는 우리 사이가 어떤지 크게 주목하고 있지 않으니 결국 내가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 모녀관계 개선의 키는 내가 쥐고 있으니, 실마리를 풀지 못하는 것도 내 책임인 셈이다. 그런데 이게 이토록 어려운 일일 줄이야. 

그렇다면, 뭐, 지금 이 상태도 나쁘지 않은 걸로!! 이런 사이로 언젠가 엄마와 헤어지게 되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걸로!! 이렇게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마음 속 얼음이 스르르 녹아버린다면 감사한 걸로!! 새로운 결론은 나를 편안하게 한다. 


서로 사랑을 확인하지 못하는 모녀


어쩌면 엄마 마음 저 깊은 곳에서는 나를 향한 고마움과 사랑이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도 받은 경험이 없어서, 먹고 살기 바빠서, 자식의 마음 따위는 들여다 보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확인되지 않으면, 보고 듣고 만지지 못하면, 그건 있어도 없는 거다. 나도 엄마를 사랑하고 있을까? 아마 우리는 죽을 때까지 서로를 향한 사랑을 확인하지 못하게 될 터이다. 그럼 그건 없다고 해야 맞겠지. 꼭 사랑을 확인해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


혹시라도 엄마가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 어떻게 하지? 민망해서 못 들은 척 할지도, 감정이 북받쳐서 또르르 눈물 한 방울 흘릴지도, 낯설어서 소름이 돋을지도 모르겠다. 아, 무엇보다 이제 엄마를 디스하기는 다 틀린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사족/ 내 맘대로 주저리주저리 늘어 놓으니 망정이지, 엄마도 할 말 많을 터이다. 부족하고 서툰대로 최선을 다해 키워놓았더니, 애써서 가르친 덕에 지 밥벌이하게 해놨더니, 다 늙어서 사랑은 왜 안 주냐고 따지고 있으니 말이다. 당신은 기억도 못하는 일들을 소환하며 상처 받았다고 운운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 나는 언제쯤 진짜 어른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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