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지,『기록하기로 했습니다』를 읽고
무엇을 기록해야 하냐고요?
지금 사랑하고 있는 것들을 기록하세요
지금 사랑하고 있는 것들을 기록하세요
우리가 사랑한 모든 것은 언젠가 사라질 테니까요
-본문 中-
2022년 올해도 벌써 한 달 후면 끝이다. 새해가 시작됐다면서 각종 안부 인사를 주고받은 게 엊그제 같은데, 시간은 정말 매일, 어쩔 수 없이 흘러간다. 그렇게 어영부영 눈 떠보니 또 한 살 더 먹게 생겼고 그러면서 내가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은 걸까, 싶었다.
내 나이에 대해 수적으로 적고 많음을 판단하고자 한 생각은 아니다. 다만 지나온 내 인생을 돌아봤을 때 그동안 내 인생에서 ‘무엇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단번에, 제대로 생각나지 않음에 대한 찝찝함과 아쉬움, 그사이의 감정이었다. 힘들면 힘든 대로, 기쁘면 기뻤던 대로, 바쁘면 바빴던 대로 어영부영 흘려보낸 기억들이었다. 무엇이 왜 힘들었는지, 기뻤는지, 바빴는지 기록해 두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는 이러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을 무렵에 읽은 책이다. ‘무엇을 기록해야 하냐고요? 지금 사랑하고 있는 것들을 기록하세요. 우리가 사랑한 모든 것은 언젠가 사라질 테니까요.’라고 쓰인 책의 뒤표지 카피를 보고는 저자가 기록에 대하여 어떤 이야기를 해 줄지, 앞으로 나는 어떤 기록을 할 수 있을지 사뭇 궁금해졌다. 그러면서 든든한 기록 메이트가 한 명 생긴 기분이었다.
나는 스스로에 대해 평소 블로그며, 브런치며 나름대로 잘 기록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저자의 다양한 기록법에 대해서 알기 전에는 말이다. 총 네 가지의 파트로 이뤄진 이 책은 일기를 쓰는 일, 순간을 수집하는 일, 영감을 모으는 일, 사랑하는 순간과 사람들을 기억하는 일들에 대해 방법론적으로 접근한다.
이는 부끄럽지만, ‘일기? 그냥 쓰면 되지!’ ‘사진? 그냥 찍으면 되지!’ 혹은 ‘SNS 계정? 그냥 운영하면 되지!’라고 하던 나의 단순하디 단순했던 생각들에 큰 터닝 포인트를 줬다. 글 하나를 쓰고, 사진 하나를 찍더라도 어떻게 하면 미래의 내가 덜 후회하지 않을 방법으로 기록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면 우리의 기록법은 반드시 달라져야 한다. 이 책은 그 가치와 필요성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다만 속절없이 흘러가는 그 시간을 오랫동안 묶어둘 것이냐, 그냥 흘려보낼 것인가 하는 건 각자의 몫이다. 그래서 나도 지나온 시간보다 지나갈 시간이 더 많다는 걸 기억하고 더 더 부지런하고 다양하게 나의 순간들을 남기려고 한다. 주저앉을 때마다 나를 일으키는 말, 힘이 빠질 때면 다시 살아갈 원동력을 주는 말, 내 인생을 바꿔 놓은 책과 영화에 대한 후기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모습들. 그렇게 하다 보면 누가 뭐래도 나 하나만큼은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한 삶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아빠를 흉보는 할머니의 모난 말투가 재미나서, 내게는 아무것도 아까워하지 않는 주름진 손이 애틋해서, 저는 그 영상을 자꾸자꾸 틀어봅니다. 그러고 있으면 먼 미래에서 다 울고 난 얼굴의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보입니다. 나는 두 개의 인생을 살 뻔했다고. 할머니의 영상을 남겨둔 인생과 남겨두지 않은 인생. 엄마 아빠의 바지런한 하루를 찍어둔 인생과 찍어두지 못한 인생. 전자가 훨씬 다행스럽지 않으냐고. 그러니까 이제 그만 울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인생은 늘 그런 식으로 우리를 가르치는지도 모르겠어요. (184p)
-공부가 더 하고 싶어 공장 기숙사에서 천자문을 뗐다는 한 여자의 일생과 사는 일이 마음 같지 않아 술에 취한 채로 몇 해를 보내야 했던 한 남자의 일생을 이해하고 싶어서. 그들에 대해 너무 아는 게 없어서. 저는 새로운 기록을 시작합니다. 마주 앉은 우리 사이에 이야기가 흐르겠죠. 한번도 닿지 못한 시간에 우리는 닿을 것입니다. (192p)
11월 한 달, 손으로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쓴 일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