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란 원래 그런거
"엄마~~~ 오빠가 내 사진 보고 못생겼다고 놀렸어요~~"
오늘도 역시나다. 우리 집 고자질 대마왕 막내 따님의 목소리가 집안곳곳에 쩌렁쩌렁 울러 퍼진다. 아이가 셋인 집은 돌아가며 한 번씩만 싸워도 3번이다. 아이들의 다툼은 어른의 세계처럼 예측 가능한 예고편도 없다. 분명히 방금 전엔 세상 죽고 못 사는 사이가 없다 싶을 정도로 깔깔거리며 웃고 놀았는데 갑자기 배경음악이 막장드라마 버전으로 깔리며 서로 끝장을 볼 듯 헐뜯으며 투닥거린다.
"그래 둘이 나와봐라. 1호, 니는 뭐가 문제고?" "2호는?" 잘잘못을 가려주는 판사도 되었다가 "이눔들!!! 떽!!" 호랭이 선생님도 되었다가 "제발 좀 싸우지 좀 마라 엄마 피곤하다" 사정도 해봤다가 '그냥 두 자. 저러다 말겠지' 방관자도 되었다가.... 엄마의 캐릭터도 세월의 옷을 입듯 카멜레온처럼 바뀌어간다.
오늘은 큰 아이도 억울한 것이 많다.
"아니, 제가 처음부터 그런 것이 아니에요. 하린이가 자기가 먼저 나를 놀려놓고, 그래서 나도 그런 건데 결국엔 나한테 다 뒤집어 씌우니깐 저도 너무 억울해요"
얼마나 억울했는지 큰 아이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흐른다.
"한결아 하린이 또한 너를 먼저 놀린 것이 화나겠지만, 하린이는 이제 1학년이고 너는 6학년이잖아.. "
나도 모르게 첫째라는 프레임에 큰 아이를 가두는 오류를 범하고 만다.
"엄마는 매번 하린이는 봐주고, 하린이는 혼내지도 않고, 매번 하린이는 괜찮고, 그렇게 오냐오냐하니깐 쟤가 나에게 매번 그러는 거잖아요!"
아~ 정말 아이들 싸움에 엄마 등이 터져도 수백 번은 터지고, 새로 갈아입은 그 갑옷 마를 날 없이 또 터지고, 이젠 일상이 되어버린 형제간 싸움이지만, 오늘도 폭주 기관차를 통으로 삶아 먹은 듯 내 속은 시끄럽기만 하다.
"너는 5살이나 많은 오빠가 그게 지금 할 말이야!"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오지만 잘 해도 본전인 첫째의 숙명, 그것을 나도 익히 알고 있기에 동질감에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무엇을 말해야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결과를 착 내놓을수 있을까? 엄마라는 위치는 그러고 보면 오랜 시간 푹 고아 낸 심사숙고라는 것을 패스트푸드 차려놓듯 빠르게 꺼내놓아야 하는 위치에 있다.
"한결아, 너는 지금 6학년의 뇌로 사고하고 있어. 은결이는 4학년, 하린이는 1학년이야.. 자~ 네가 1학년 때로 돌아가 한번 생각해 볼래? 어땠어? 어땠는지 기억이 안 날 수도 있어. 그건 그만큼 너의 뇌가 1학년에서 멀어져 6학년으로 성장했다는 의미야.. "
그렇지만 큰 아이는 왜 자기도 억울한데, 왜 동생들까지 이해해야 하는지 짜증이 가시지 않은 표정이다.
아이의 눈을 통해 본 그 안에 내가 보였다.
"야! 내가 얼마나 억울한지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이해가 안 돼!!!"
남편이랑 트러블이 생기거나 사이가 좋지 않을 때마다 어김없이 내가 먼저 전화를 거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보편적인 사람들처럼 내 마음을 공감하지도, 어떠한 솔루션도 내놓지 않는다.
그는 유머러스한 감각으로 너스레를 떨듯 그저 남편의 입장에서만 이야기를 해준다. 그러면 나는 '아~~ 그러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연민이라는 감정이 자연적으로 생기면서 "그러고 보니 내가 미안했네~ 앞으로 더 잘해줘야겠다." 라는 마음이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자연스레 든다.
그 연민이라는 감정이 주도적이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무엇이든 그 후에 해결책도 제시해야 효과가 있는 법이다.
(조용하게) "한결아 하린이를 한번 생각해 봐. 얼마 전에도 너 봤지? 아직도 5+5 더하기도 힘들게 하는 거~ 하린이의 뇌는 아직 거기에서 점점 자라고 있는 중이야. 그리고 은결이도 봤지? 한결이는 금세 해결하는 나눗셈도 힘들어하는 거? 그런데 한결이는 지금 저들은 모르는 약분 통분도 너무 자연스럽게 하고 있잖아~ 그러니 동생들이 한결이처럼 이해할수있으려면 조금 더 기다려 줘야 해. 지금은 여러 번 말을 해도 잘 모를 수 있어."
그전 까진 자신이 너무 어울 하다고 호소하던 그 입을 가진 아이는 온데간데없이 쏘옥 들어가고,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만 내 앞에 덩그러니 서 있다.
뭐지 이건? 나는 주입 싫어하는데 혹시 내가 아이를 가스라이팅 한 것인가?를 의심하게 될 만큼 아이가 급격히 공감하기 시작했다.
"동생들은 지금의 너와는 다른 거야 그들의 뇌의 성장은 다르니 이해하는 그 능력도 그 나이에 따라 다른 거야. 왜 쟤는 나한테 그걸 안 해줘!라고 하염없이 생각하면 6학년의 뇌인 한결이만 너무 힘들어져. 그러니 나는 동생들과 다르구나!라는 걸 받아들이고 네가 해결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 오히려 너의 마음은 은 더 편안해져~"
대화가 마무리 된 후 갑자기 내 동생들은 아직 어려서 내가 도와줘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격하게 들었는지 엄마와의 대화가 끝나자 급히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것은 또 다른 막장 드라마인가 싶을 정도로 막내동생에게 책을 읽어주고, 자상한 말투의 친절한 오빠로 탈바꿈을 했다. 그리고 다시 깔깔깔 셋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렇지~ 이것이지~ 난 아무래도 너무 좋은 엄마 같아... 아 난 내가 너무 기특해 자랑스러워~ 하하하"
스스로 나를 좋은 엄마 게이지 중 최고점에 안착시킨다. 그리고 이것을 주제로 삼아 기분 좋게 오늘의 글을 써 내려가 본다. 기분이 좋아 그런지 오늘따라 글이 술술술 쓰인다.
"어엄마~~~ 형아가~~~"
이것은 또 무엇인가?
불이 꺼진 방에서 익숙한 그의 소리가 들러온다.
'아.... 이번엔, 둘째군.... 휴우~'
힘들게 올려놓은 것이 어느덧 예고 없이 굴러 내려오고, 그래서 또다시 올려놓으면 또 내려오고, 정말 끝이 없다. 하지만 그 당연한 것을 내일도 즐겁게 해내는 힘 또한 그들에게서 나온다.
육아란 원래 그런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