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 정 Sep 17. 2015

04. 아프지 않아

정말 아프지 않았던 건지, 무뎌진 건지

 나는 종종 질문을 받는다. 아픔을 잘 견뎌내는 사람이냐고. 통각이 거의 없는  듯하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어왔다. 딱히 아픔을 잘 참는 성격도, 아주 아픔을 못 느끼는 편도 아니다. 그냥 습관처럼 내 생각보다 내 입에서 '응, 아프지 않아. 괜찮아.'란 말이 더 먼저 나갈 때 그 한 마디가 나를 온통 불편하게 만드는 것 같다.


오늘 어디서 그렇게 덤벙거렸는지 발이 쿵 하고 찧여 별 것 아닌 줄 알았는데 피를 뚝뚝 흘리며 보니 발톱이 깨져있었다. 얼마나 힘을 주고 걸어 다녔던 것일까. 뭐가 그렇게 급했던 것일까. 나 자신이 그렇게 바보 같아 보였다. 피를 흘리고 아프다는 것보다 이 상황에서 창피한 것이 가려지지  않는다는 게 부끄러웠다. 아픔은 금세 가셨지만 발톱 상태는 금방 사라질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아픔을 계속 표현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다고 생각하니 아픔이 조금씩 무뎌지기 시작했다. 


병원 냄새가 익숙한 나에겐 그 어떤 말보다 '괜찮아'라는 말이 모두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한 마디면 가슴을 졸이던 혹은 밤새 잠도 못 잔 퀭한 눈빛으로 혹은 눈물 한 방울도 흘리신 적이 없던 부모님의 눈가가 촉촉해지던 모습을 나는 본 적이 있다. 그래서 난 습관적으로 그 말을 되뇌고 또 되뇌었다.


괜찮아, 아프지 않아

그래서 그랬을까. 가장 아팠을 순간들에 가장 덜 슬픈 얼굴을 하고 있어야만 했다. 첫 이별을 겪었을 때도, 내 꿈이 좌절되었을 때도, 내 맘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을 때도 나는 늘 괜찮은 사람이었지만 사실은 제일 아팠을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난 정말로 괜찮았던 걸까. 지금 이 순간, 나는 괜찮은 걸까.

매거진의 이전글 03. 꿈을 잃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