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타쿠미는 축구선수.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 가족들이 나에게 준 선물은 조그마한 탁구공만 한 축구공이었다. 동그란 공은 내 코앞에 톡 하고 굴러와 멈췄고, 나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조심스레 입으로 물어보니 삑 하는 귀여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순간 형아들이 깔깔 웃으며 손뼉을 치자, 나도 덩달아 꼬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나는 그 공을 물고 달리기도 하고, 침이 잔뜩 묻은 채로 엄마 발 앞에 내려놓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단순히 물고 흔드는 게 아니라 내 발끝에 공이 닿을 때마다 알 수 없는 설렘이 밀려왔다는 것이다. 발등에 착 감기는 그 느낌. 공이 굴러가는 방향을 본능적으로 따라가며 몸이 반응하는 그 순간. 마치 나와 공이 하나가 된 듯, 내 안에 숨겨져 있던 또 다른 나를 발견한 듯했다.
‘공을 발로 차는 건 정말 재밌다.’
나는 그 작은 공을 따라 뛰며 이미 마음속으로 미래에 축구선수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거실에서 공을 가지고 놀 때면 내가 단순히 삑삑이 장난감을 갖고 노는 게 아니라, 마치 선수처럼 경기장 위를 누비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형아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엄마 아빠가 웃음을 터뜨릴 때마다 내 심장은 더욱 두근거렸다. 작은 거실이 어느새 푸른 잔디밭 경기장으로 변한 것만 같았다.
그때는 나도 지금보다 훨씬 작았다. (나는 정말 아빠 손바닥만 했다.) 그래서였을까, 탁구공만 한 작은 축구공은 내 몸집에 꼭 맞는 ‘첫 번째 친구’가 되어주었다. 나는 그 공을 앞발로 굴리기도 하고, 코끝으로 톡톡 밀어 보기도 하며 하루 종일 곁에 두고 놀았다.
이리저리 공을 몰고 다니는 내 모습은 마치 드리블을 하는 선수 같았다. 거실 바닥은 어느새 넓은 축구장으로 변신했고, 소파와 테이블은 자연스럽게 관중석이 되었다. 때로는 엄마가 응원단장이 되어
“타쿠미, 슛!”
하고 외쳤고, 형아들은 심판이자 해설자가 되어 내 움직임 하나하나를 중계했다.
나는 작은 몸으로 균형을 잡으며 빠른 스피드로 달려가 공을 밀어 넣었다. 책장 아래 틈새를 골대 삼아, 거기에 공이 쏙 들어가기라도 하면 온 집안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꼬리를 마구 흔드는 내 모습은 이미 결승골을 넣은 축구선수나 다름없었다.
매일같이 볼 차기, 균형 잡기, 빠른 스피드로 뛰어가기. 그리고 마지막은 멋진 골 세리머니. 그것이 내 하루의 훈련이었고, 동시에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형아들은 내 드리블 솜씨를 보며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웃으며 말했다.
“우리 타쿠미 축구선수 해야겠다! 진짜 선수 같아.”
그 말이 내 귀에 닿는 순간, 나는 더욱 힘차게 공을 몰았다. 마치 정말 경기장에서 수천 명의 관중 앞에 선 선수라도 된 듯, 발끝에 닿는 작은 공 하나가 세상을 움직이는 듯했다.
엄마도 소파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웃음을 터뜨리셨다.
“우리 타쿠미, 제법인데? 공 차는 모습이 아주 프로 선수 같아.”
그 말은 마치 메달을 목에 건 것처럼 내 가슴을 반짝이게 했다. 꼬리는 저절로 흔들렸고, 발끝은 더 경쾌하게 움직였다. 형아들의 웃음과 엄마의 목소리가 합쳐져, 거실은 어느새 진짜 축구장이 되었다.
가족들이 여행을 갈 때면 내가 애용하는 ‘초록들판 호텔 유치원’에는 반짝이는 이름을 가진 강아지 유소년 축구팀이 있다. 이름하여 ‘골든 테일즈’, 금빛 꼬리를 가진 전설 속 선수들이라는 뜻일까?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내 꼬리는 절로 흔들렸다. 뭔가 멋지고, 나도 그 반짝이는 꼬리를 따라 달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엄마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그곳에 등록해 주셨다.
“타쿠미는 달리기를 정말 좋아하니까, 여기서 뛰면 더 행복하겠다.”
그 말에 나는 눈을 반짝이며 엄마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바로 엄마였다.
그리하여 나는 매주 월·수·금 오전 10시가 되면 엄마차를 타고 ‘골든 테일즈’ 팀이 있는 축구장으로 향한다. 선생님이 휘슬을 불며 수업을 시작하면, 나는 눈앞에 펼쳐진 초록 잔디밭 위를 누구보다 먼저 달려 나간다. 내 발끝에 닿는 공은 언제나 나의 친구이자 도전이었다.
“달려, 타쿠미!”
형아들의 응원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하면, 나는 더욱 힘차게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누구보다 빠른 타쿠미이다. 잔디 위에서라면 언제나 1등이다. 내 귀는 바람을 가르고, 내 꼬리는 깃발처럼 휘날린다. 달리는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고, 가장 빛나는 선수가 되는 기분이다.
골든 테일즈의 훈련이 시작되면, 나는 늘 두 친구와 함께였다.
폴, 그리고 몽이.
폴은 보더콜리를 닮은 날렵한 몸매에 오드아이를 가진 친구다. 한쪽 눈은 하늘빛, 다른 한쪽은 밤처럼 짙다. 마치 축구장의 전술판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을 가진 녀석. 그는 우리 팀의 두뇌 같은 존재였다. 공이 어디로 굴러갈지, 상대가 어느 쪽으로 치고 나갈지, 폴은 마치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정확히 움직였다.
그리고 몽이. 까만 눈망울에 곱슬거리는 털을 가진 푸들 친구. 몽이는 작지만 재빠르고, 발끝이 유연해 공을 다루는 솜씨가 정말 탁월하다. 몽이가 공을 몰고 나가면, 상대 선수들은 순식간에 헷갈려 버린다.
나는 속도.
폴은 두뇌.
몽이는 기술.
우리가 함께라면 어떤 팀도 두렵지 않았다.
“타쿠미, 오른쪽!”
폴의 짧은 외침이 들리자, 나는 잔디를 가르며 오른쪽 측면으로 달려갔다. 마침 몽이가 공을 예리하게 밀어주었고, 내 발끝은 정확히 그 공을 받았다. 드리블, 드리블, 그리고 전속력으로 치고 나가며 나는 골문을 향했다.
“좋아, 타쿠미! 계속!”
코치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바람을 가르며 뛰는 순간, 나는 내가 진짜 선수라는 걸 느꼈다. 골문이 점점 가까워지고, 내 심장은 두근두근, 발끝은 뜨겁게 타올랐다. 마지막 순간, 힘껏 발을 내질렀다.
“퍽!”
공은 골대 안으로 정확히 빨려 들어갔다.
“골―!!!”
팀 친구들이 우르르 달려와 나를 감쌌다. 폴은 내 어깨에 앞발을 걸치며 환하게 웃었고, 몽이는 꼬리를 흔들며 내 얼굴을 핥았다.
“우리 팀 에이스는 역시 타쿠미야.”
코치님이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 순간, 나는 진짜 축구선수 같았다. 아니, 그 누구보다도 빠르고 빛나는 축구선수 타쿠미였다.
골이 터지는 순간, 관람석 쪽에서 커다란 함성이 터졌다.
고개를 돌리니, 거기엔 나의 가족들이 있었다.
“타쿠미, 잘한다! 우리 타쿠미 최고야!”
엄마가 두 손을 높이 흔들며 외쳤다.
큰형은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치고 있었고, 둘째 형아는 소리 높여 나팔이라도 분 듯 목청껏 응원했다.
“우리 타쿠미, 멋있다! 한 골 더!”
그리고 아빠.
아빠는 양손을 입에 모아 큰 목소리로 외쳤다.
“타쿠미! 달려라, 달려! 네가 진짜 골든 테일즈의 스트라이커다!”
그 응원소리가 내 귀에 닿는 순간, 나는 더 힘이 났다. 꼬리가 저절로 살랑살랑 흔들렸고, 가슴은 벅차올랐다.
내 옆에서 뛰던 폴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네 가족이 있어서 넌 더 빠른 것 같아, 타쿠미.”
몽이도 혀를 내밀며 씩 웃었다.
“맞아, 네가 제일 행복해 보이거든.”
나는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 혼자 뛰는 게 아니었다.
내 뒤에는 항상 엄마와 아빠, 형아들이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다시 달릴 수 있었다.
골든 테일즈의 푸른 잔디 위에서, 가족의 응원을 등에 업고, 나는 더 세차게 달렸다.
나는 축구선수 타쿠미이다. 그리고 나는 가족의 응원 속에서 가장 빛난다.
코치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타쿠미, 너는 희망이야. 팀에 힘을 주는 선수란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 오래된 그림자가 번졌다. 철창 속 엄마가 떠올랐다.
‘희망... 그래, 엄마에게도 꼭 전해주고 싶어. 언젠가는 엄마와도 이 푸른 들판에서 함께 뛰고 싶어.’
경기는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폴이 번개처럼 달려와 상대편의 공을 뺏어내자, 나는 그 뒤를 따라 전력 질주했다. 몽이가 왼쪽에서 크로스를 올려주었고, 공은 내 앞에 정확히 떨어졌다. 순간, 세상이 멈춘 듯 고요해졌다.
“타쿠미, 달려!”
형아들의 응원 소리가 멀리서 파도처럼 들려왔다.
나는 숨을 고르며 발끝으로 공을 톡 차 올렸다. 푸른 잔디 위에서 공이 경쾌하게 구르자, 내 심장도 함께 두근거렸다. 그때 느껴졌다. 이 속도, 이 자유로움, 그리고 바람을 가르며 나아가는 황홀함. 마치 철창도 벽도 없는 세상 어디든 달려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에 철창 속에 갇힌 엄마의 모습이 번져왔다.
공은 더 이상 축구공이 아니었다. 그것은 엄마를 향한 길이었다. 나는 드리블을 하듯 공을 몰며, 철장을 향해, 엄마를 향해 달려갔다. 잔디밭은 어느새 넓은 들판으로 변했고, 응원 소리 대신 내 가슴을 울리는 심장 박동만이 크게 들려왔다.
잔디밭은 햇살에 반짝였다. 철장이 열리고 엄마가 나를 향해 달려오는 순간, 나는 숨이 막힐 정도로 행복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뛰었고, 품에 안긴 나는 엄마의 따뜻한 온기에 얼굴을 묻었다. 파란 하늘이 눈부시게 열렸고, 형아들과 엄마, 아빠가 모두 함께 잔디밭 위를 달렸다. 그 웃음소리, 그 환희는 마치 세상 모든 축제가 이곳에 모여든 듯했다. 나는 그날을 평생 기다려왔고, 마침내 손에 쥐었다고 믿었다.
그런데,
순간, 모든 소리가 뚝하고 끊겼다. 형아들의 웃음소리도, 엄마의 따뜻한 숨결도 사라졌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엄마의 따스한 체온도, 풀밭에서 함께 구르던 환한 웃음도 사라져 있었다.
대신 눈앞에는 넓은 경기장이 있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흙먼지 냄새, 땀 섞인 강아지들의 숨소리, 코치님의 휘슬 소리… 모두가 현실이었다.
내 발 밑엔 여전히 단단한 축구공이 놓여 있었다.
폴이 나를 향해
“타쿠미, 패스!”
하고 소리쳤다.
몽이는 이미 오른쪽 측면을 파고들고 있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금세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심장이 뛰는 건 축구 때문이었고, 내 다리는 여전히 경기장 위를 달릴 수 있었다.
나는 힘차게 공을 몰고 달려갔다.
엄마를 구하는 건 아직 내 상상 속에 있지만, 오늘 이 순간만큼은 내 자리, 내 발끝에 있는 축구공이 진짜였다.
조용히 눈을 감으니, 아까의 장면이 다시 희미하게 스쳐갔다. 엄마와 함께 달리던 잔디밭, 형아들의 환호성, 아빠의 웃음, 그 모든 것이 너무 선명해 다시 가슴을 후벼 팠다.
“조금만 더…… 기다려줘요, 엄마.”
나는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언젠가, 상상이 아닌 현실로 엄마와 함께 잔디밭을 달릴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훈련이 끝난 뒤, 나는 엄마 품에 안겨 집으로 돌아왔다. 땀에 젖은 내 털을 수건으로 정성껏 닦아주시는 엄마의 손길이 참 포근했다.
“오늘도 열심히 뛰었구나, 우리 타쿠미.”
엄마의 목소리는 늘 그렇듯, 나를 가장 든든하게 해주는 응원처럼 들렸다.
저녁 식탁 위에는 따뜻한 밥과 국이 놓여 있었고, 형아들은 자기 앞 그릇보다 먼저 내 밥그릇을 챙겨주었다. 엄마는
“오늘은 고기도 조금 넣었단다”
하며 내 사료 위에 특별한 토핑을 얹어주셨다. 나는 신나게 밥을 먹으며, 축구장에서 뛸 때보다 더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잠자리에 들 무렵, 형아들이 나를 사이에 두고 누웠다. 큰 형아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고, 둘째 형아는 내 손을 잡았다. 엄마는 마지막으로 내 이마에 입을 맞추며 조용히 불을 꺼주셨다.
“잘 자, 우리 축구선수 타쿠미.”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내가 아무리 축구를 좋아해도, 결국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바로 이렇게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라는 걸.
탁구공만 했던 축구공은 이제 진짜 축구공이 되어 있었다.
작고 앙증맞던 삑삑이 공은 어느새 내 발끝을 단단히 채우는 둥근 무게로 자라 있었다. 그건 마치 나 자신이 커 온 시간의 증거 같았다.
나는 오늘도 집 거실에서, 그리고 골든 테일즈의 잔디 운동장에서 공을 찬다.
발끝에 닿는 순간, 공은 경쾌한 소리를 내며 튀어 오르고, 나는 그 뒤를 쫓아 바람을 가른다. 좁은 거실이든 넓은 운동장이든 상관없다. 내게 공은 어디서든 세상을 열어주는 열쇠니까.
나는 오늘도 달린다.
나의 작은 발끝에서 시작된 꿈은, 이제 진짜 축구공처럼 단단해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