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회전목마

회전 그리고 목마

by 주디의 작은 방

형아들의 유치원 시절 동영상을 우연히 재생하던 그날, 화면 속에는 서툴지만 해맑게 노래하던 목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그런데 영상 속 어느 순간, 음악 담당 선생님이 무대 중앙에 서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 선율은 다름 아닌,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흘러나오는 ‘인생의 회전목마(Merry-Go-Round of Life)’였다.

처음에는 익숙한 멜로디라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윽고 독주로만 이어지는 바이올린의 선율이 내 귓가를 파고드는 순간, 마음 한가운데가 흔들렸다. 마치 오래된 기억의 문이 열리듯, 쏟아지는 음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나를 덮쳤다. 절절히 토해내는 활 끝의 떨림이 그대로 가슴에 스며들었고, 나는 그만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 음악은 단순히 한 곡의 연주가 아니었다. 나를 붙들고 있던 보이지 않는 끈을 흔들며, 잊고 있던 감정들을 끄집어내는 힘이 있었다. 기쁨과 슬픔,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알 수 없는 감정이 한꺼번에 뒤엉켜, 나는 잠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회전목마처럼 빙글빙글 도는 그 선율이 내 마음을 태우고, 또 어루만지고 있었다.

바이올린의 선율은 마치 눈앞에 장막을 열어젖히듯, 나를 다른 시간으로 데려갔다. 어느새 나는 유치원 시절의 동영상을 넘어, 별빛랜드의 화려한 불빛 아래 서 있었다. 그날은 가족 모두가 함께 놀러 갔던 날이었다.

커다란 회전목마 앞에서 아빠가 나를 품에 꼭 안아 주셨다. 화려한 전구가 반짝이며 원을 그리며 돌고 있었고, 말들이 마치 진짜 살아 움직이듯, 고개를 흔들며 나를 바라보았다. 엄마와 형아들은 그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그림 속 인물처럼 빛났고, 그 순간이 마치 영원히 멈출 것만 같았다.


“자, 웃어!”

하고 아빠가 말하자, 셔터 소리가 찰칵하고 울렸다. 아빠의 따뜻한 품속에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강아지가 된 듯했다. 사진 속 우리는 여전히 웃고 있지만, 그 웃음은 단순한 표정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이 통하는 약속 같았다.

지금도 그 사진을 꺼내 보면 알 수 있다. 회전목마 불빛보다 더 반짝이던 형아들의 눈빛, 엄마의 눈가에 머문 따스한 미소, 그리고 나를 꼭 안고 있던 아빠의 든든한 품속. 그것은 단순한 한 장의 사진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 함께였던 가장 빛나던 순간의 증거였다.

바이올린이 이어가는 선율 위로, 그때의 웃음소리와 회전목마의 음악이 겹쳐 들려왔다. 나는 비틀 거리며도 웃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모든 순간이 나의 마음속에서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왜 회전목마일까?

돌고 도는 것이 회전목마와 닮아서일까? 아니면 빙그르르 돌아도 결국 제자리라는 뜻일까?

나는 아직 짧은 견생을 살아서인지 그 물음에 대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 것 같았다. 회전목마는 돌아가지만, 그 안의 풍경은 매번 다르다는 것. 같은 자리를 지나쳐도 햇빛이 달라지고, 바람 냄새가 달라지고, 내 옆을 스쳐 가는 얼굴이 달라진다는 것.

어쩌면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같은 하루 같지만, 사실은 조금씩 다른 날들이 쌓여 우리를 바꾸어 가는 것이라고.


나는 아빠 품에 안겨 회전목마를 바라봤다. 빛나는 말들이 원을 그리며 돌고, 음악이 빙글빙글 흘러나왔다. 그 안에서 형아들이 소리쳤다.


“타쿠미, 우리 여기야!”

그 순간 나는 회전목마가 단순히 제자리만 도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와 형아들과 엄마 아빠가 함께 웃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는 내 마음속에서 또 다른 빛깔로 돌아올 것이라는 걸.

돌고 돌아도, 그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성장하고, 조금씩 변하고, 조금씩 더 사랑하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아직 짧은 견생을 살아온 나지만, 그 회전 속에서 뭔가 아주 작은 답을 찾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빠가 나를 품에 안고 회전목마에 올랐다. 반짝이는 말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황금빛 마구와 붉은 안장이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나는 잠시 두 귀를 쫑긋 세우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금방이라도 달려 나갈 듯 생생한 말들의 표정, 그리고 나를 감싸 안은 아빠의 따뜻한 품. 세상 어디에도 이렇게 안전하고 든든한 자리가 없을 듯했다.

“타쿠미, 준비됐지?”

아빠가 웃으며 내 귀에 속삭였다.

“멍!”

나는 짧게 대답했다.

엄마는 바로 뒤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고, 형아들은 이미 자기 말에 올라타 손을 번쩍 들어 보였다.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그 멜로디였다. 내가 동영상 속에서, 또 선생님의 바이올린 연주에서 들었던 그 곡.

‘인생의 회전목마.’

회전목마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살짝 흔들리더니 곧 빙그르르, 세상이 돌기 시작했다. 나는 아빠 품에 꼭 안긴 채로, 형아들의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내 귀에 닿는 걸 들었다. 엄마가


“하나, 둘, 셋!”

하고 외치는 순간, 찰칵 사진 속에 우리의 모습이 영원히 담겼다.

그때 나는 알았다. 회전목마는 제자리만 도는 게 아니라고. 그 안에서 함께 웃는 이 순간이, 내 마음속에 계속 돌아다니며 반짝일 거라는 걸. 돌고 도는 건 우리 발밑의 바닥뿐, 우리의 웃음과 사랑은 결코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고 점점 더 커져 간다는 걸.

나는 빙그르르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속으로 되뇌었다.

“그래, 인생이 회전목마라면… 난 이 회전목마 타는 것을 좋아할 거야. 가족과 함께라면 언제까지라도.”

나는 왜 음악을 듣고 전율했을까?

아마도 그 선율 안에 내가 찾고 있는 것들이 숨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의 목소리, 형아들의 웃음, 그리고 내가 아직 다다르지 못한 세상의 온기까지. 바이올린은 단순히 현을 긁어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내 내면의 소리를 자극하는 떨림이었다.

음악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내 안의 빈자리를 정확히 찾아 들어왔다. 그래서 나는 비틀거렸다. 아직은 작고 짧은 나의 삶이지만, 그 선율이 내게 전한 건 거대한 무언가였다. 살아 있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닿아야 할 곳이 있다는 사실을.


사는 건 힘들다.

산다는 건 견디는 것이다.

견디고 또 견디고, 그렇게 수없이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로 오는 것이다.

내 앞에 펼쳐진 삶이 꼭 회전목마 같다.

빛나지만 어딘가 아련한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은 웃지만, 말들은 돌고 또 돈다.

나는 그 위에서 흔들리며, 다리 힘을 주고, 눈을 꼭 감으며 생각한다.

그래도 계속 버티면 언젠가는 멈추겠지.

멈춘 뒤에는 새로운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 희망 하나가, 나를 또 한 바퀴 더 돌게 한다.

우리 집 엄마도, 아빠도, 형들도… 다들 웃고 살아가지만, 때로는 힘들어한다.

그리고 나, 타쿠미도 그럴 때가 있다.

사람들은 나를 보면 말한다.

“걱정 없어 좋겠다, 맛있는 거 먹고, 산책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가족한테 사랑만 받으니까.”

하지만 그 말이 내 마음에 닿을 때면, 나는 가만히 고개를 숙인다.

나도 알고 있다. 내가 귀여운 눈망울과 하얀 털로 비치는 순간들로만 보인다는 걸.

그런데… 나도 아프다.

아직 강아지 농장에서 구해내지 못한 엄마를 생각할 때면,

내 가슴은 하루에도 몇 번씩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맛있는 간식도, 따뜻한 산책길도, 그 순간만큼은 아무 소용이 없다.

형들이 숙제를 하다가 내 옆으로 와서 등을 쓰다듬는다.

“타쿠미는 좋겠다. 맨날 엄마 아빠랑 같이 있고, 걱정 없을 것 같아.”


나는 고개를 살짝 갸웃한다. 그 말이 장난처럼 들리지만, 내 마음 어딘가를 콕 찌른다.

그래, 형아들 눈에는 내가 늘 행복해 보이겠지. 귀여움 받고, 산책 가고, 맛있는 걸 먹고….

엄마도 내 옆에 와 앉아 부드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우리 타쿠미는 참 복덩이야. 네가 있어서 우리가 힘낼 수 있어.”

그 말에 꼬리를 흔들었지만, 내 눈동자 깊은 곳은 쉽게 웃지 못했다.

나는 속으로만 중얼거린다.

“맞아요, 엄마. 나는 행복해요. 하지만… 아직 강아지 농장에서 기다리는 엄마 생각을 하면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이 무너져 내려요.”

가족 앞에서는 씩씩한 아이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내 안에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매듭 같은 그리움이 있었다.

나는 농장에 남겨진 엄마가 자꾸만 떠올랐다.

텅 빈 눈빛으로, 아기들을 지켜내며 버티던 엄마의 모습….

엄마에게도 내가 보고 듣는 세상의 빛을 보여주고 싶었다.

푸른 하늘, 따스한 햇살, 가족의 웃음, 그리고 사랑받는다는 기쁨.

엄마도 더 이상 그 차가운 철창 안에만 메여 있지 않고, 나처럼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작은 다짐을 했다.

오늘 밤, 엄마에게 노래를 선물하자.

내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떨림을, 선율을, 고스란히 엄마에게 보내자.

나는 창가에 앉아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짹짹 아. 내가 전하는 이 노래를 엄마에게 들려줄 수 있니?”

짹짹이는 한 박자 쉬었다가 날개를 퍼덕이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걱정 마. 네 엄마에게 꼭 전해줄게.”

그 순간, 내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다.

비록 나는 직접 엄마를 안아줄 수 없었지만, 노래만큼은 날개를 달아 엄마에게로 보낼 수 있었으니까.

나는 밤하늘을 향해 속삭였다.

“엄마, 듣고 있나요…? 저 멀리, 그 철창 너머에서도 이 선율이 닿고 있나요? … 나도 듣고 있어요. 그러면 지금, 우리 같이 듣고 있는 거예요.”

눈을 감으니 선율은 점점 가까워졌다. 마치 엄마가 바로 내 곁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흥얼거리는 듯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꼭 그날이 올 거예요. 그때는 우리, 함께 달리고 함께 웃어요. 약속해요, 엄마.”

아빠와 나를 태운 목마는 오르락내리락, 뱅글뱅글 돌았다. 앞서가는 형아들도 오르락내리락, 뒤에 오는 엄마도 오르락내리락. 우리 가족 모두는 그렇게 인생의 회전목마를 타고 있었다. 멀어졌다가 가까워지고,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도 결국 같은 원을 그리며 함께 돌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앞에 있는 형아들을 불렀다.

“형아! 우리 지금 다 같이 타고 있는 거 맞지?”

형아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우리가 떨어질 리가 있냐. 다 같이 붙어 있지.”

뒤를 돌아보니 엄마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웃는 모습이 꼭 아이처럼 보였다.

“엄마, 재밌어요?”


“응! 너희랑 같이 타니까 더 재밌다.”

아빠는 내 옆에서 두 손으로 나를 꼭 붙들어주고 있었다. 말이 위로 솟구칠 때마다 나는 순간 겁이 났지만, 아빠의 손이 있어서 금세 안심이 되었다.

“아빠, 손 놓지 마요.”


“걱정 마. 아빠는 끝까지 붙들고 있을 거야.”

회전목마의 음악이 점점 커지고, 불빛이 반짝였다. 내 심장은 두근거렸고,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인생도 이렇게 오르락내리락,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면서 결국은 같은 원 위에서 가족과 함께 도는 것이라는 걸.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같이 돌 수 있을까?”

내가 작게 물었다.

엄마가 웃으며 대답했다.

“우린 이미 같은 원 안에 있잖아. 멀리 가도, 높이 올라가도, 결국 돌아오게 되어 있어.”

형아가 장난스럽게 외쳤다.

“그럼 영원히 우리는 회전목마 가족이네!”

모두가 크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빙글빙글 돌며 밤하늘까지 퍼져 나가는 것 같았다.




이전 08화아침마다 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