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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위밍 Jul 21. 2021

2021/07/20

멀고 먼 수련의 길

요즘엔 좋아하는 작가가 쓴 능청스러운 문장, 인류애로 가득한 아름다운 글을 보아도 기분이 마냥 좋진 않다. 만약 이 사람을 내가 회사에서 만났다면, 작가가 내 직장 상사이거나 동료이거나 후배였어도, 나는 변함없이 그 사람을 좋아할 수 있었을까? 작가가 가진 여유와 유우머, 성숙하고 깊이 있는 생각, 인간과 자연에 대한 사랑 같은 것들은 지옥철을 타고 출근해 종일 소모적인 회의를 하는 직장인이 되어도 온전히 지켜졌을까? 


내년이면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10년이 되어가는데도 아직 사회생활의 갈 길이 멀다고 느낀다. 첫 직장에서 만나 지금 같은 회사에 있는 동료가 얼마 전 "그때는 정말 지금보다 훨씬 날것의 언니를 많이 봤어. 그에 비하면 지금은 아주 돌려서 말도 잘하던데요."라고 말해주긴 했다만. (칭찬인가 욕인가?) 회사를 그만 다니고 싶다고 느낀 이유 중 하나는,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다기보다는 나의 괴팍한 면이 더 드러나지 않길 바랬기 때문이었다. 1년 정도 일을 쉬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 나는 정말 제너러스 그 자체였고, '대체 세상 살면서 화를 내거나 짜증 날 일이 뭐가 있지?'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나를 좋아하는 사람 하고만 만나도 충분히 윤택한 인간관계였고, 그 안에서 의미 있고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회사는 다니지 않아도 개인적인 프로젝트 두 개를 진행하느라 종일 책상에 앉아있을 때도 많았는데, 그것 역시 재밌게 했다. 여행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나를 만난 사람들은 내게 넉살이 좋고 유쾌하며 인싸라고 했다(설마요?). 그것 역시 나의 일부란 것을 알고 있긴 하지만, 회사에선 어쩐지 점점 '쎈캐'가 되어가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다. 팍팍한 환경에 있지 않으면 나의 괴팍한 면도 드러나지 않으니 좋은 일일까? 아님 이렇게 바닥을 드러내며 나의 부족함을 알고 보완해나가는 기회로 삼아야 하는 것일까? (좀 더 상냥하고 말을 이쁘게 하는 사람이 되는...?) 이렇게 다양한 인간군상을 만나고 내면의 혼란을 겪으며 나의 작품 세계가 깊어지게 될까? (아무 작품도 안 쓰는 게 함정)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지만, 적어도 내가 속할 사회 정도는 내가 택할 수 있지 않나? 정신수양의 길은 멀고도 험하구나. 오늘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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