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낭 여행 2일 차: 설렁설렁 조지타운 구경
페낭에 다녀온 것이 마치 전생 같다. 다녀와서 지난 한 달간은 논문을 마무리하고 최종 디펜스까지 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 브런치에는 마치 여러 편을 쓸 것처럼 '1편'이라고 썼다가 나의 게으름으로 인해 이후 이야기가 없는 포스팅이 많은데, 페낭 여행기도 그렇게 될 뻔하다가... 기억을 더듬어 이어서 써보겠다.
페낭 여행 2일 차. 조지타운 근처를 설렁설렁 구경했다. 제일 먼저 들른 곳은 페라나칸 맨션. 페낭 여행자라면 아마도 한 번씩은 꼭 들를 곳으로, 19세기에 페낭으로 이주한 중국인 사업가 Chung Keng Quee가 사용했던 고택을 보존하여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영어, 중국어를 포함한 다국어 가이드 투어(도슨트?)도 제공되는데, 운 좋게 내가 입장하고 10분 뒤에 투어가 있다고 해서 합류했다.
페라나칸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로 이주한 중국인과 현지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 혹은 중국계 말레이/인니인들의 문화나 정체성 자체를 일컫기도 한다.
집주인은 카피탄 차이나, 즉 캡틴 차이나라는 이름으로도 불렸으며, 주석 채굴을 중심으로 농업, 벌목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해 백만장자로 위세를 떨쳤다고 한다.
1890년대에 지어진 집인데, 집주인이 당시 페낭 최고의 부호였던 만큼 내부는 영국에서 온 수입 자재과 장식품, 중국에서 온 도자기 등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부자 집이란 이런 거구나...
가이드로부터 부인이 네 명이었다는 둥(다섯 명인가) 다양한 비화도 들었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투어가 생각보다 오래 걸렸기도 했고 밖에 비가 쏟아지고 있어서 페라나칸 맨션에서 2시간 이상을 보낸 뒤에 밖으로 나왔다.
출출해서 Loong Fong Cafe에서 간단히 간식을 먹었고 이리저리 걷다가,
ARECA BOOKS라는 서점을 발견해서 들어가 봤다. 서점 내부 사진은 찍지 않았는데 정말 멋졌다! 알고 보니 그냥 서점이 아니라 책을 만드는 로컬 출판사이기도 했다. 페낭이나 말레이시아에 대한 책도 많았고 영어, 중국어 도서가 모두 있었다. 서점 주인은 페낭에 온 지 10년 정도가 되었다고 하셨는데 (말레이 분) 너낌 있는 멋쟁이셨다. (책방 주인 바이브란 전 세계 어디나 비슷한 걸까...) ARECA BOOKS에서 출판한 책 코너가 따로 있어서 한참을 살펴보다 나도 맘에 드는 책을 하나 샀다.
바로 이 책인데, 페낭의 조지타운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다양한 사회, 문화, 도시 변화의 역사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페낭 출신인 저자가 영국에서 쓴 박사논문을 기반으로 펴낸 책이다(멋져...) 앞부분만 대충 훑어봤는데 문화유산 보존구역으로 지정되기 전과 후, 그리고 현재까지 지속되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부분이 있었다. 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한 움직임이 오히려 그 역사를 만든 이들을 밀려나게 하고, 그 자리에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기념품가게가 들어오는 현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앙코르와트가 있는 캄보디아 씨엠립으로 여행을 갔을 때에도 유네스코 문화유산 보존구역 지정으로 인한 지역주민들의 거주지 이전, 보상문제 등 충돌하는 이해관계에 대해 들을 일이 있었는데, 페낭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었다. 무언가를 지키고 보존한다는 것이 실제로는 그 본질을 가장 먼저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정처 없이 조지타운을 걸어 다녔다. 책을 읽고 난 뒤라 그런지 관광객이 몰리는 소수의 중심지역에서 몇 미터만 벗어나도 도처에 버려진 빈 건물들이 즐비한 것이 보였다. 옛 식민지 시대의 건축물이나 중국풍 건물들은 관광객이 있는 곳에서는 고풍스러운 사진을 위한 배경이 되었지만, 인적이 드문 골목에서는 사뭇 쓸쓸하고 을씨년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점심때까지도 비가 오다가 오후가 되니 날이 조금 갰다. 파란 하늘과 모스크, 달 장식이 예쁘게 어울린다.
길 가다 찍은 이발소 사진. 느낌 있긴 해 ㅎㅎ
저녁은 버스를 타고 거니 드라이브 호커센터에 가서 먹기로 했다. 주요 관광지를 연결하는 버스가 아주 잘 되어 있었다. (태국은 안 그런데) 구글 맵에서 경로와 도착 시간을 정확히 알려주어서 정말 좋았다. 버스에 타서 기사님께 목적지를 말하면 금액을 알려준다. 현금통에 버스비를 넣으면 되는데 거스름돈을 안 주는 게 좀 문제 이긴 해..
참고로 호커센터는 스트리트 푸드코트같은 곳이라고 한다. 먹거리를 들고 다니며 파는 행상을 호커라고 했다는데, 이런 노점상들이 모여있는 곳을 호커센터라고 한단다.
윗 접시가 차꾸웨이띠여우. 아래가 로작. 차퀙테우 인 줄 알았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꾸웨이띠여우 쟈나? 태국어에서도 똑같이 국수다(중국어 어원인가..?) 맛은.. 그냥 팟타이와 팟씨유 중간 맛 같은 느낌으로 새로운 건 없었다.
로작은 백종원의 스푸파를 보면서 궁금했던 음식 중 하나인데 역시 모르는 맛은 아니었다. 태국에서도 파파야를 다양한 양념장에 찍어먹는 것을 즐기는데, 로작은 이걸 찍어먹는 정도가 아니라 소스에 버무려서 먹는 느낌? 한국인으로 치자면 오이를 쌈장에 찍어먹다 못해 아예 오이 당근 사과를 쌈장에 버무려먹는다고 해야 할까나 ㅎㅎㅎ 소스가 자극적인 맛이라서 한 번쯤 경험으로 충분한 것 같았다.
배 불리 먹고 호커센터에서부터 거니플라자 쇼핑몰을 지나는 산책로를 걸었다. 큰 나무가 우거져있고 운동하는 주민들도 있어서 혼자 걷기에도 좋았다. 한참 걷다 보니 주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할 때쯤 재빨리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렇게 둘째 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