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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위밍 Jun 15. 2024

이렇게 다양한 아시아 - 말레이시아 페낭 여행 (1)

페낭 여행 1일 차: 츄제티, 도교사원

방콕에 있으면서 틈틈이 주변 나라로 여행을 다닐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여러모로 여력이 되지 않았다. 다음 달 논문 심사를 앞두고 마지막 스퍼트를 끌어올리기 전에 잠시 짬을 내어 말레이시아 페낭으로 4박 5일 여행을 다녀왔다. 갈 때는 비행기를 타고, 돌아올 때는 기차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출장을 제외하고 전혀 새로운 나라로 여행을 간 것이 2016년 이후로 처음이었기에 가기 전부터 무척 설렜다. 교수님께 논문 초안을 '던져놓고' 가기 위해 하루 전날까지 바빴지만 다행히 끝내고 갈 수 있어서 더 홀가분한 마음이었다.


사회 초년생 시절, 내가 일하던 기관의 아시아 15개국(정확하진 않지만 그 정도..) 사무소 회계 담당자 연수가 한국에서 있었다. 막내였던 나는 연수 기간 동안 아침마다 뷔페 메뉴에 '치킨' '비프' '포크' 같은 걸 붙여놓거나, 마지막날 전 직원의 '서울 시티투어'를 보조하는 등 각종 잡일을 했다. 그 연수가 끝난 지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명한 한 가지 기억은 '이렇게 크고 다양한 아시아'라는 시각적 인상이었다. 동북아시아, 조금 더 넓게 봐서 (대륙부) 동남아시아까지가 내 아시아의 전부였는데, 방글라데시, 네팔, 스리랑카부터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에 이르는 다양한 아시아 국가에서 온 스텝들을 보며 한중일이 중심이 된 나의 '아시아'라는 감각이 허물어졌다. 중앙아시아로 불리는 '스탄' 국가에서 온 이들은 아시안이라고 하기엔 내게 너무 먼 '서양인'처럼 생겼었고, 인도네시아 직원은 겉모습은 그다지 이질적이지 않았지만 할랄푸드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아 식사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고 문화적 차이를 실감했다 (물론 이건 주체 측의 문제다ㅠㅠ).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 이번 말레이시아 페낭 여행은 대륙부 동남아시아만 알던 나에게 해양부 동남아시아, 혹은 과거 영국령 동남아시아라는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었다. 내가 여행했던 동남아시아 나라들은 태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가 전부였기에, 지금까지 나의 동남아시아는 소위 '상좌부불교'가 중심이 된 대륙부 동남아시아, 혹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반도'가 전부였다(태국은 제외). 학과 동기인 홍콩 친구가 화인이 많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를 통해 동남아시아를 알아온 것과는 다른 경로였다. 작년에 끄라비를 여행하면서 태국 남부 이슬람 문화를 짧게나마 엿볼 수 있었는데, 페낭 여행에서는 무슬림을 포함하여 도교, 불교, 기독교, 힌두교 등 세상 모든 종교와 타밀, 말레이, 화인(중국계 말레이인) 등 많은 민족과 언어를 경험했다. 한 블록 간격으로 힌두 사원과 모스크와 알 수 없는 민속신앙의 중국사원, 성공회 교회가 늘어선 것을 보고 이것이 페낭이구나...!! 했다.



여행 첫날, 아침 일찍 방콕 돈므앙 공항에서 출발해 페낭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20여 분을 기다려 버스에 올라타자 당황스러운 감정이 훅 밀려왔다. 저상버스의 앞쪽 부분은 지하철처럼 승객들이 마주 보는 방향의 좌석이, 뒤쪽은 운전기사석을 바라보는 뱡향으로 좌석이 일제히 앞을 향하고 있었는데, 그 뒤쪽 부분에 모두 인도계(아마도 타밀) 말레이인 남성들이 빽빽하게 앉아있었고, 버스 내에는 외국인을 제외하고는 여성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탔을 때 그 뒤쪽 좌석에 앉은 수십 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나를 바라봤는데, 순간 '내가 이 버스를 타고 되나? 여성전용구역이 있나? 아니면 여성전용 버스가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가방도 너무 무겁고 피곤했기에 눈짓으로 앉아도 되냐고 묻고는 겨우 하나 남은 빈자리에 앉았다. 버스가 공항에서 조지타운까지 거의 모든 정거장을 거쳐 1시간 가까이 걸려 가는 동안 (일요일이라 교통체증이 있었다), 중국계 말레이인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버스에는 계속해서 타밀인들만 우르르 탔다 내리길 반복했다. 다민족국가라면서 계층이 이렇게까지 분리되어 있는 건가? 중국인이나 말레이인은 자가용이 있어서 버스를 타지 않는 걸까? 아니면 단순히 이 버스가 다니는 노선에 인디언 커뮤니티가 밀집해 있는 것일 뿐일까?


말레이시아는 크게 말레이인, 중국인, 인도인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이고,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다. 페낭은 당시에 '말레이시아'라는 국가가 건설되기 전, 이미 인도와 미얀마(버마)에 식민지를 건설한 영국이 말레이 지역으로 진출하기 위한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다. 1786년 영국이 페낭 섬을 점령한 이후 1805년에 인도 총독의 네 번째 직할 식민지가 됐다. 영국이 식민지를 건설하고 섬을 개발하면서 인도와 중국에서 노동자들을 이주시키기 시작했고, 이들을 따라 무역상을 포함한 이주민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 말레이시아라는 다민족 국가가 탄생한 배경이다. (출처: 강희정 외. 2022. 도시로 보는 동남아시아사)


인도인, 정확히는 타밀인들이 페낭 섬에 처음 온 것은 1801년 동인도회사가 타밀 지역 죄수 130명을 데려와 현재의 비숍 스트리트(Bishop Street)및 처치 스트리트(Church Street)가 된 도로와 주택 건설에 투입하면서부터였다. 섬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더 많은 타밀인들이 계약 노동자로 이주하게 되었으며, 이들은 주로 위생, 수자원, 전기, 엔지니어링, 수의학, 운송, 공공사업 등에서 일했다. 동인도 회사가 페낭에 설립된 후 신문 발행을 위해 인도의 현 첸나이 지역에서 인쇄 전문 인력을 데려왔는데, 이들은 현재의 Argyll Road, Transfer Road, Penang Road 및 Northam Road에 정착했고 이들의 후손은 아직도 그 지역에 살고 있다고 한다. 독립 이전의 말라야에서 타밀인들은 육체 노동자로서 이러한 산업에서 다수를 차지했고, 이 초기 인구의 후손인 인도계 말레이시아인, 특히 페낭의 타밀계 인도인(Penangite Indians)은 출리아(Chulias)라 불린다. 초기의 타밀인들은 육체 노동자들이 주를 이뤘지만 부유한 사람들도 당연히 있었으며, 은행이나 금융 쪽에서 일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초기 이주민들의 후손들은 교육을 받고 다른 업계로 진출하거나 중산층으로 부를 축적한 경우도 많았다. (출처: https://www.penangstory.net.my/indian-content-paperrajavelan.html)


그날 내가 버스에서 목격한 풍경에 대한 의문이 정확히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이후 다른 노선에서는 중국계와 말레이계 사람들이나 인도계 여성들도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 공항버스 노선이 특이했던 게 아닐까 추측해 볼 따름이다.


자, 이제부터는 복잡한 이야기 없는 여행기다! 조지타운에 도착해서 호텔 체크인 후 먼저 근처를 좀 돌아다녔다. 여담이지만 말레이시아 한 섬의 도시 이름이 조지타운이라니... 이것부터가 낯설었다. (영국 국왕 조지 3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배가 고파 그냥 들어간 식당. 이름도 기억이 안 난다 ㅠㅠ 장식들이 다 예뻤다.


시계도 이뿌
머시기 국수랑 너무 더워서 먹은 폭력적인 비주얼의 커피. 무려 커피와 마일로의 조합. (혈당스파이크!!!)


벽화거리를 한 바퀴 돌고 부두 근처 수상가옥 집성촌인 클랜 제티(Jetty) 쪽으로 갔다. 제티는 조지타운보다 뒤늦게 형성된 곳이라고 하는데, 아편전쟁 이후 고향을 떠나 이주해 온 중국인들이 부두 근처에 주거지를 마련하면서 탄생했다. '제티' 앞에 성씨를 붙여 부르는데, 제일 유명한 것이 츄제티(Chew Jetty)이고, 그 외에도 림 제티(Lim Jetty), 탄 제티(Tan Jetty), 여 제티(Yeoh Jetty) 등이 근거리에 몰려 있다. 츄제티는 흡사 안동하회마을처럼 기념품을 아주 많이 팔고 있었고, 다른 곳들은 바로 옆인데도 매우 조용했다. 관광지가 되어버렸는데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거주하고 있었다.


걸어 걸어 제티 근처의 도교 사원까지 발길이 닿았다. 정식 명칭은 Hean Boo Thean Kuan Yin Temple(https://maps.app.goo.gl/hUWTN6uyzoo7vMkU9).  2층에 올라가면 석상들이 굉장히 많아서 조금... 무서울 정도였지만 바다 바로 앞이라 바람이 시원해서 땀도 식힐 겸 앉아서 쉬기 좋았다.


이제 정말 너무 피곤해져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려 마음먹었다. 숙소 돌아가는 길에 바쿠테 집이 있길래 츄라이 해봤다. 인생 첫 바쿠테였는데, 아주 익숙한 맛이었다. 내가 시킨 건 드라이 바쿠테였는데 돼지고기 갈비찜 같았다!


그리고 가게 옆에 튀김집이 있었는데 현지 사람들이 줄을 엄청 서서 기다리길래 나도 사봤다. 종류가 굉장히 다양했는데 내 차례가 왔을 때는 다 팔린 뒤라서 옵션이 얼마 없었다. 그래도 뭐.. 일단 사 와서 맥주랑 먹었는데 맛있었다! (튀김집 위치: https://maps.app.goo.gl/3LGH4aWovnwjuC6r9)


아침 7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 3시에 일어나 시작된 하루가 이렇게... 끝이 났읍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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