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참내 졸업

근데 이제 논문게재와 다시 시작된 직장인 라이프를 곁들인

by 스위밍

6월엔 새로운 시작과 긴 여정의 마무리가 함께 있었다. 일 년 중 5월과 10월을 가장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올해를 보내며 내가 6월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녹음이 짙어지고 햇볕이 뜨거워지지만 아직 장마는 시작하지 않은 초여름 특유의 분위기. 조용히 유월, 이라 소리 내어 말할 때 어떤 파열음도 없이 부드럽게 흐르는 소리. 그리고 내 생일이 있어 좋은 달.


우여곡절이 많았던 석사 과정이 공식적으로 끝나 6월부터 드디어 졸업생 신분이 되었다. 논문 디펜스 한지 거의 1년 만에 학회 발표 졸업 요건을 채워 졸업하게 되었다. 다들 1년 만에 받는(영국 한정) 석사 졸업장을 나는 3년 만에 받은 게 좀 헤드에이크지만(심지어 이 나이에 ㅠㅠ) 어쨌든 이제 다 끝났으니 됐다. 공들여 쓴 자식 같은 논문을 이대로 덮어두기엔 아까워 패기 있게 학회지에 투고도 해봤는데, 1심에서 ‘수정 후 게재’, ‘수정 후 재심’ 결과를 받고 영혼을 갈아 넣은 수정 끝에 2심에선 ‘게재 가’를 받았다. 최소 박사생들 사이에서 홀로 척척석사 단독 저자로 KCI 등재지에 게재하게 된 건 솔직히 좀 어깨가 으쓱해서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다 우하하. 그래서 게으름을 이기고 몇 달 만에 포스팅한다(개인정보 대공개)

논문 링크: https://www.kaidec.kr/contents/bbspage/xbd/board.php?bo_table=m3_db1&wr_id=54


박사를 할까 본격적으로 프리랜서로 살아볼까 한참을 고민하다 6월부터 월급쟁이의 삶으로 돌아왔다. 작년 9월 한국으로 들어온 뒤부터 올해 4월까지 오래도록 고민했지만 결정은 의외로 싱겁게 했다. 노트를 반으로 나눠 장단점을 빼곡히 적어본 적도 있지만, 나는 합리적 인간이 아니기에 이리저리 따져 최선의 선택을 한다기보다는 어떤 기회가 내 눈앞에 왔을 때의 직감, ‘저걸 하고 싶다’는 이끌림에 기반해 결정한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내 마음이 이끄는 선택, 내 눈에 멋져 보이는 일이 내 인생의 빅데이터가 도출한 가장 정확하고 옳은 선택이라는 것을 안다. 아직 허니문 기간이긴 하지만 적어도 지난 두 달 동안은 내 선택이 옳았음을 확인했다. 걱정도 근심도 없이 그저 재미있게 일하고 있다.


생일이 지나 한 살을 더 먹었다. 내 나이에 내가 놀라지만 지금처럼 현재가 만족스러웠던 적도 드물다. 자주 감탄하고 작은 것에 기뻐한다. 시니컬함과 회의주의가 내 정신과 육체를 지배한 시절이 있었는데, 나이가 들 수록 그런 태도를 경계하게 됐다. 인생이 너무 짧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좋은 걸 보면 호들갑 떨고 사랑만 하며 살기에도 부족한 인생 아닐까? 어디서 주워 들었던, ‘원칙은 큰 일에나 적용하고 대부분의 작은 일에는 연민으로 충분하다’는 말을 되새기려 노력한다(물론 나는 자주 재판관이 되어 심판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더) 회복력이 좋고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라는 걸 확인한 지난 10개월이 새삼 감사하다.


벌써 1년도 더 지나 가물가물해진 논문의 Acknowledgement로 졸업 소감(?)을 대체한다(작년 이맘때 디펜스 끝나고 마지막에 이거 쓰면서 방콕에서 혼자 훌쩍훌쩍 울었음 ㅋㅋ)

The journey to meet the research participants in Laos was shrouded in thick fog. The old local bus I took rattled along the narrow and winding mountain roads, cutting through the mist. I was anxious about whether I would arrive on time and what if the bus would break down. However, the bus eventually reached its destination at the mountain ridge at its own pace.

Writing this thesis has been like navigating a foggy mountain path step by step. I could not have completed this alone. I am deeply thankful to the research participants who generously shared their experiences. Additionally, the fieldwork would have been impossible without the support of the wonderful interpreter with invaluable insights.

(중략)

What gives me the greatest joy now is not the completion itself but the fact that I enjoyed every moment of this journey. Perhaps this is an accomplishment in my life that is greater than the result of this research.

------------------

라오스에서 연구 참여자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짙은 안개에 가려져 있었다. 낡은 현지 버스는 안개를 헤치며 좁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덜컹거리며 달렸다. 나는 버스가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지, 혹은 고장이 나면 어쩌나 걱정했다. 하지만 버스는 결국 제 속도대로 달려 산 능선에 있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논문을 쓰는 과정은 안개가 자욱한 산길을 한 발자국씩 더듬어 찾아가는 것과 같았다. 혼자서는 결코 완주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아낌없이 공유해 준 연구 참여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통역 이상의 경험과 인사이트를 공유해 주었던 훌륭한 통역가의 지원이 없었다면 현장 조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중략)

무엇보다 기쁜 것은 논문의 완성 자체가 아니라 내가 이 여정의 모든 순간을 즐겼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이것이 이 연구의 결과보다 더 큰 내 인생의 성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