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짓는 서울 라이프와 새로운 관계 쌓기

Re-building and building ___

by 스위밍
Rebuilding my life in Seoul

비로소 회고하는 지난 10개월 동안의 재건(rebuilding)의 시간. 작년 9월 한국으로 돌아온 뒤 가을과 겨울, 봄이 될 때까지 내 삶의 기반을 다시 세우기 바빴다. 6월을 기점으로 졸업도 하고 다시 일도 시작하니 마침내 다시 정착, 말 그대로 settle down 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 글을 쓸 몸과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마흔을 코 앞에 둔 나이에 집도 절도 직업도 다음 계획도 없이 서울에 돌아오자 조금은 막막한 기분이었다. 부산 본가에 내려가 지낼 생각도 잠시 해봤지만, 독립한 지 십수 년 만에 다시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으며 사는 생활로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 자리를 잡기보다는 해외파견을 갈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당장 집을 계약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런저런 옵션을 고민하다 장기 계약이 필요 없고 보증금도 최소 금액인 단기 집을 구했다. 말이 집이지 고오급 고시원 같은 아주 작은 방이었다. 짐은 태국에서 가져온 반팔 옷과 얇은 이불, 텀블러 하나, 수저 한벌, 이 와중에 바리바리 싸 온 책 꾸러미가 전부였다. 상황만 놓고 보면 좀 우울해질 수도 있었지만 2년의 태국 생활로 긍정핑이 되어버린 나는 그저 한국의 아름다운 가을 날씨에 감탄하고 내가 사람들 말을 이해하고 사람들이 내 말을 이해하는 내 나라의 삶이 주는 편안함을 만끽했다.


그러다 뜬금없이 눈물이 터진 날이 있었다. 이불 탓이었다.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 본가에 내려가 구스다운 이불을 가져온 날이었다. 태국에 가기 전 서울 집을 정리하면서 가구나 가전 대부분을 처분했는데, 나름 고가였던 그 이불만은 부산 집으로 보내놨었다. 폭신하고 가볍고 바스락거리는 촉감. 4년을 살았던 내 작은 동선동 집에서 덮었던 이불을 펼치자 개켜두었던 그때 그 시간과 기억이 순식간에 파노라마처럼 열리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비로소 돌아왔다는 안도감이었을까? 다시는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감정이었을까? 다른 어떤 것보다 그 이불이 내게 집이라는 감각을 불러왔다. 아끼던 책상과 물건을 모두 정리하고 떠난 탓에 번듯한 세간살이 하나 없지만 그 이불을 덮자 정말로 집에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나는 오랜만에 아주 깊은 단잠을 잤다.


작은 집은 사실상 짐 보관소였고 그곳에 머무르는 두 달 동안 한 달 이상을 출장으로 해외에 있었다. 집세를 벌기 위해 집에 못 있는 아이러니. 12월에 (진짜 집 같은) 집을 계약하고 이사를 했다가 (아주 복잡한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이걸 쓰려니까 너무 귀찮음) 3일 만에 다시 내놓고 새 집을 구해서 올해 1월에 또 이사를 했다. 다행히 새로 이사한 집은 내 서울 라이프 중 가장 좋은 집이었다. 그때부터 다시 지옥의 세간살이 쇼핑이 시작되었다. 침대, 책상, 옷장, 커튼, 화장대, 냄비, 조리도구, 빨래바구니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처음부터 모든 걸 샀다. 쇼핑도 업무라서 정말 피곤했다... 거기다 가스요금, 전기요금 명의도 바꿔야 하고, 각종 카드명세서 주소 변경, 정지시켜 두었던 건강보험도 지역가입자로 다시 납부 시작. (휴). 파견을 가면 2-3년 뒤에 한국에 돌아와서 이 짓을 다시 해야 한다니 으악. 그때부터 그냥 다시 한국에서 일을 구하거나 대학원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Building trust & relationship

6월부터 다시 직장인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예전부터 한 번쯤은 일해보고 싶었던 회사에서 원하던 포지션으로 일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한 회사에 오래 몸 담았기 때문에 경력직으로서의 이직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나이도 경력도 어느 정도 있는 사람으로서 처신(?)을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했다. 경력직으로서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부담보다는, 업무 역량에 더해 어떤 '사람'으로 받아들여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다. 내 업무의 특성이 '검토와 기술지원(technical advice)'인 만큼,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신뢰라는 것은 결국 내 업무 능력과 태도를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었다. 내 말이 믿을 만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동시에 내가 믿을 만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랐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하나씩 쌓아가야 하는 과정이라는 걸 안다. 업무 메일은 '요점만 간단히'일 수록 좋다고 생각해 왔지만, 짧은 문장 안에 한 스푼의 따수움과 진심을 담으려 노력했다. 간략하고 명확한 메일이라고 해서 반드시 건조하고 딱딱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니까.


내가 일을 시작했던 시기에 <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 방영이 시작했다. 그 내로라하는 최고의 댄서들도 끊임없이 "자기 증명"의 압박에 시달리는 걸 보며 도대체 언제까지 증명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니 허니제이가 '너무 한국에서만 했었나 봐' 라며 의기소침해지는 모습이라니... 근데 또 결국에는 이 악물고 메가크루 미션으로 보란 듯이 증명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몇 개월을 semi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매번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직장인이 된 지금도 그 생각은 비슷한 것 같다. 직장인이지만 외부 컨설턴트 같은 마인드셋으로 일하고 있는데, 왜냐면 이것들이 나중에 다 내 이력서의 포트폴리오가 될 거니까, 새로운 업무가 모두 기회로 느껴진다. 결국 증명하며 살 수밖에 없다. 대신 그 증명의 영역에 '같이 일하고 싶은 동료'라는 것이 추가됐다. 연차가 낮을 때에는 내가 잘난 것만 보여주고 싶어서 자주 놓쳤던 부분인데, 새로운 회사에서 경력직으로 낯선 사람들과 일하면서 예전의 미숙했던 나를 돌아보게 된다. 일 잘하고 친절한 사람은 정말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도 그렇게 강한 사람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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