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짧은 장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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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타르는 춥고 매캐했다.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이 심각한 대기오염 문제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안 건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뒤였다. 거리는 혼잡했고 도로에는 7-80년대 한국산 버스가 시커먼 방귀를 내뿜으며 콜록거렸다. 도시 곳곳에선 골리앗 크레인이 빌딩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 빵은 퍽퍽했고 야채는 비쌌다. 버스 안, 누군가의 집, 도시 어디든 사람들이 모인 곳에선 옅은 양고기 냄새가 났다. 나와 피부색도 눈 크기도 같은 사람들의 입에선 러시아어처럼 된소리가 나는 언어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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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캠프 참가자들은 열두명이었고, 아시아인은 나를 포함해 셋이었다. 그렇게 많은 외국인을 만난 건 내 인생 처음이었다. 영어로 의사소통을 한 것도 처음이었다. 나는 종종 영문도 모른 체 웃거나 미간을 찌푸렸다. 와우, 웁스 같은 감탄사를 과장된 억양으로 뱉었다. 문장으로 말하는 건 어려웠지만 추임새 하나는 그럴듯하게 흉내 낼 수 있었다. 파란 눈의 서양인 앞에서 쫄지않는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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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간의 캠프 기간 중 주말에는 자유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캠퍼들은 교외로 나가 게르에서 하루를 묵었다. 우리는 별을 보며 보드카를 마셨다. 보드카만 마시기엔 심심해서, "Have you ever been...(~해본 적 있어?)"으로 시작되는 진실게임 같은 걸 했다. 스물넷인가 다섯이라던 프랑스인 언니는 만약을 대비해 콘돔을 챙겨 왔다고 했다. 그리고 그 만약이 실제로 일어나 한 개를 썼노라고 호탕하게 웃고는 프랑스에 두고 온 남자친구가 보고 싶다고 했다. 스무 살 먹은 일본인 아이는 유부남 운전 교습 강사와 키스한 적이 있다고 했다. 남자친구와 5년을 사귀었다는 한국인 언니는 미루고 미루다 군대까지 다녀온 남자친구의 성화에 못 이겨 의리를 지키기 위해 숙제를 해치우듯 첫 경험을 했다고 머뭇거리며 답했다. 두 달짜리 연애가 전부였던 나는 할 말이 없어 멀뚱히 게르 천장만 바라보았다. 프랑스인 언니는 '한국인들이란'하는 지루한 표정으로 우리를 보았다. 나는 무슨 맛인지도 모르는 보드카만 홀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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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캠프가 끝나고 게스트하우스로 거처를 옮겼다. 첫 해외여행이었으니 게스트하우스도 첫 경험이었다. 12인실 남녀 혼숙 도미토리였다. 움찔했지만 촌스러워 보이지 않으려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옆 침대의 프랑스인 남자애 둘은 밤새 달콤한 언어를 속삭였고, 남자든 여자든 아무데서나 옷을 훌렁훌렁 갈아입었다. 나는 첩보작전처럼 속옷을 빨아 몰래 말리거나 축축한 채로 가방 속에 구겨 넣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몽골인 여자와 한국인 남자 부부였는데, 한국인들만 세탁을 맡길 때 속옷을 빼고 준다고 했다. 나는 "정말요?"라며 어색하게 웃었다. 나와 사장님의 대화를 지켜본 서양애들은 나더러 몽골말을 할 줄 아냐고 했다. "노 아임 코리안"이라고 했더니 "유 스픽 굿 잉글리시"라고 했다. 나는 그게 칭찬인지 뭔지 몰라서 또 애매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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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몽골 울란바타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