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짧은 장면 - 2009년 12월
국경의 밤은 후덥지근했다. 말라버린 땀, 눅눅해진 티셔츠와 치마 위로 미지근한 바람이 일었다. 거리엔 제대로 된 가로등 하나 없었고 도시의 밤을 밝히는 네온사인도 없었다.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불빛 아래 거리의 집들을 구경했다. 건물은 햇볕에 바랜 것처럼 채도가 낮은 머스터드 색에 좁고 긴 모양이었다. 저녁 메뉴는 가이드가 추천하는 것으로 정했다. 어떤 음식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스프링롤인지 에그 롤인지와 맥주를 시켰던 것은 분명하다. 다른 여행자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었는지도 어렴풋하다. '아름다운 국경의 밤이네요'라고 읊조렸던 것도 같다. 밤이 깊어질수록 선선해졌지만 물기를 머금은 바깥공기는 묵직했다.
다음날, 꽤 오랜 시간 배를 타고 강을 건너 캄보디아 이민국에 도착했다. 한국에서만 살아온 내게 '외국'은 곧 거대한 공항과 복잡한 입출국 절차를 의미했다. 걸어서 국가와 국가의 경계를 넘는다는 생각에 긴장과 흥분이 뒤섞여 심장이 두근거렸다. 육로로 국경을 넘는 과정은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고, 새삼 내가 사는 곳이 삼면은 바다, 한 면은 '다른 나라'에 둘러싸인 분단국가임을 실감했다.
베트남과 캄보디아 이민국 두 개를 연달아 거친 뒤 서너 시간 동안 보트를 타고 메콩강을 건넜다. 고무줄놀이를 하듯 인간이 정한 인위적인 선 하나만 넘었을 뿐인데, 강가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 생김새가 달라졌다. 캄보디아인의 얼굴은 그림이나 조각상에서 봤던 힌두교 신들의 얼굴을 닮았다. 나무와 풀의 모습도 조금씩 달라졌다. 강가 건물들의 간판이 베트남어 알파벳에서 크메르 문자로 바뀌었다. 처마 끝이 뾰족한 황금색 사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끝없이 이어진 황톳빛 강물이 넘실댔고, 강바람은 시끄러운 모터 소리를 잊게 할 만큼 시원했다. 등에 혹이 난 물소가 강가를 여유롭게 걷고 있었고, 햇빛에 메콩 강물이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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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베트남 쩌우독-캄보디아 프놈펜 사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