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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Feb 02. 2018

두 번째로 들른 말라카는..

말레이시아, 말라카 Melaka(Malacca) _ 망각 방지 여행기록

말라카는 5년 전에 한 번 간 적이 있다. 싱가포르에서 마침내 취업을 한 지 6개월이 되던 때, 나도 해외에서 먹고살 수 있단 걸 확인하며 제2의 사회초년생을 맞이한,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행복한 때였다. 그 시기에 마침 친구가 싱가포르와 가까운 말레이시아의 조호 바루로 출장을 왔다. 외국에서 다시 만난 우리는 서로 성장했다는 생각에 뿌듯해하며 아주 자연스럽게 황금연휴에 놀러 갈 궁리를 했고, 그때 선택한 곳이 말라카였다.


말라카는 항구가 있을 정도로 큰 바다를 끼고 있다. 그리고 말라카 강은 바다로 이어진다. 강을 끼고 들어선 아기자기한 집들과 말레이시아, 중국, 그리고 유럽이 한데 어우러진 모습은 말라카를 말레이시아의 다른 곳들과 확연히 구분 짓는다. 특히 말라카 강변만 보면 (비록 그 당시에는 유럽에 가기 전이었지만) 암스테르담 외곽의 운하로 보일 정도로 이국적이었다. 말라카 강 크루즈를 타고 이곳의 야경을 구경한 일, 우연히 싱가포르에 사는 한국인 언니를 알게 된 일, 놀라간 말라카에서 굳이 성 프란시스 성당에 들어가 생애 처음 미사란 것을 드린 일까지... 말라카는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곳이었다.

설마 했는데 5년 전에도 본 광고가 아직 있었다. 그 당시에도 옛날 광고라고 웃었는데 이젠 사골이 되어가고 있다. 대체 언제적 동팡저우냐...

그때의 좋은 기억을 안고 무려 크리스마스이브날, 싱가포르에서 말라카에 가는 버스를 탔다. 막힐 것이란 예상은 했지만, 아침 여덟 시 반에 출발한 버스는 저녁 일곱 시 반이 돼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보통 때였으면 싱가포르에서 말라카까지 왕복으로 다녀온 후, 다시 말라카에 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생각보다 더 늦게 도착한 바람에 첫날 본 건 여전히 아름다운 말라카 강의 야경이 다였다. 물론 이 야경이 말라카에 오는 이유의 거의 반을 차지할 만큼 크긴 하지만. 

말라카의 중심. 존커 스트리트 야시장.
존커스트리트의 낮. 여전히 사람이 많다

 “저기 사람 머리 좀 봐.”

아마도 말라카에서 가장 유명할, 거의 매일 밤 야시장이 들어서는 존커 스트리트는 이미 발 디딜 틈이 없다. 사람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여전히 그곳은 더위가 가시지 않았다. 지난날 나는 매일 밤 이 존커 스트리트에서 오만 사람과 물건을 구경하며 길거리 음식을 먹고 돌아다녔는데, 오늘은 존커 스트리트 진입 5분 만에 GG를 치고 옆 골목으로 빠져 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역시 연말에 쏘다니면 돈만 쓰고 몸만 고생이라는 어무니의 말씀은 진리) 말라카에서 4일을 있었는데 야시장을 제대로 구경하지는 못해서(라고 쓰고 ‘않아서’라고 읽겠다.), 5년 전 야시장의 명물이었던 ‘튀긴 아이스크림’과 무 케이크가 여전한지 확인하지 못한 건 좀 아쉽다. 특히 맥주와 무 케이크의 조합이 은근히 괜찮았는데...


 '아 그냥 돈 안 내고 갈래.'

5년 전에 나는 말라카의 유명 음식, 치킨라이스볼을 먹고 먹튀 한 적이 있다. 밥을 다 먹고 돈을 치르기 위해 카운터에 섰는데 지나가는 종업원 그 누구도 내게 눈길을 주지 않고 휙휙 지나가기만 했다. 그렇게 5분을 기다리다 짜증도 나고, 그 날 말라카를 떠날 거니 상관없다는 호기를 부리며 아무렇지 않게 걸어 나온 식당이었다. 그 식당도 여전했다! 이전에 여행했던 곳을 다시 오면 내가 살았던 곳이 아님에도 아련함이 찾아온다. 그때의 공기, 하늘과 강의 색깔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2012년의 튀긴 아이스크림과 무 케이크(라고 하지만 튀긴 빵과 튀긴 무 같다.)
여긴 다시 2017

“더 이상 꽃 자전거는 없는가?”

5년 전만 해도 말라카의 상징인 꽃 자전거는 정말 꽃으로만 장식되어 있었다. 그리고 당시의 유행가를 윙윙 틀어놓으며 촌스러움을 한껏 뽐냈다. 그리고 그 촌스러움이 말라카와 묘하게 잘 어울렸다. 근데 오늘날 그 꽃의 자리는 엘사, 피카추, 헬로키티가 차지하고 있었다. 꽃보다는 캐릭터를 달아놓는 게 더 돈이 되나 보지만, 말라카만의 느낌은 사라졌다. 말라카 기념 자석에도 등장하는 말라카의 명물이었는데, 이제는 그 자전거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 꽃 자전거 자석도 더 이상 없겠지?

2017년의 자전거
2012년의 꽃자전거


21세기에도 여전히 말라카의 중심에는 유럽인들의 흔적이

이전에 방문한 곳을 다시 가게 되면 어디가 어떻게 바뀌었을까를 비교하는 건 여행의 또 다른 재미다. 5년 만에 다시 찾은 말라카에서 의외로 많이 바뀐 게 없다고 좋아했다가 이 자전거를 보고 생각을 바꿨다. 그리고 마침내! 밤에는 보지 못했던 존커 스트리트의 초입에 있던 하드록카페과 에이치앤엠 매장을 보게 됐다. 이곳에 뭐가 있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글로벌 기업의 매장은 아니었다. 이곳에서 에이치앤엠을 보니 여행 온 게 아니라 시내에 잠깐 물건 사러 나온 것 같다. 존커 스트리트를 배경으로 양 옆으로 우뚝 서 있는 두 매장을 맞은편에서 보고 있는 건 네덜란드가 말라카를 지배할 때 세웠던 총독부 건물인 스타더이스(Stadthuys)이다. 

예의상 넣어보는 포르투갈인들이 세운 포트리스 사진

말라카에서 가장 유명한 건 아마도 네덜란드인들이 지은 스타더이스와 포르투갈인들이 지은 이제는 잔해만이 남은 포트리스일 것이다. 거기다가 중심에는 또 유럽 기업들의 매장이 떡 하니 들어서 있다니... 뭔가 안타까웠다. 이 자리만이라도 말레이시아인의 색이 담긴 것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드록카페와 에이치앤엠을 보고 사람들은 안심(?)을 느낄지 모르지만, 어디서나 찾을 수 있는 그 매장은 세계 모든 것을 똑같이 만드는 느낌이다. 에이치앤엠만이라도 다른 곳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타깝게도 말라카는 과거에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지배를 받은 통에 그와 관련된 유적과 유물이 많이 남아 있다. 그 당시 유럽 깡패들이 엄한 아시아의 한 나라를 침략해 놓고 그 나라를 서로 갖겠다고 그 땅에서 치고받고 싸운 역사는 참 안쓰럽다. 러일전쟁과 청일전쟁이 정작 조선 땅에서 일어난 것처럼. 그리고 전쟁 후의 모든 쓰레기와 뒤치다꺼리는 전쟁이 일어난 땅의, 보통 사람들의 몫이었을 거다. 


하지만 그 탓에 말라카는 독특한 모습을 가지게 됐다. 말레이시아인과 중국인의 융합을 뜻하는 페라나칸 문화만으로도 진기한데 거기 한 스푼 얹어 당시 유럽 사람들이 남긴 흔적이 여전하다. 그 덕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도시 전체가 등재되고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가 되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옛 유럽을 만나보세요!”

말라카 관광 광고에 흔히 등장하는 문구. 현재를 사는 사람들은 그 덕에 관광업으로 잘 먹고살고 있으니 감사할 일인가? 

 



 "우리 집안이 이곳에 자리 잡은지는 191X년이야. 그 이후로 쭉 이곳에 살고 있지. 이 분이 우리 할아버지고...몇 년전에 말레이시아 관광청에서 기념패도 받았어. 이리 와서 이것 좀 봐. 멋있지?" 

다시 들른 말라카에서 자전거를 빌려서 강변을 달리고, 도시 중심을 벗어나 봤다. 그 덕에 운 좋게 빌라 센토사 Villa Sentosa라는 살아있는 박물관 living museum을 발견했다. 100년 넘게 이곳에 실제로 살고 있는 한 집안의 저택인 동시에 말라카 전통 가옥을 볼 수 있는 꽤 괜찮은 곳이다. 사람들이 이곳에 여전히 살면서 박물관 역할도 겸비한다는 게 신기했다. 이 곳의 종갓집 어른으로 보이는 할아버지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실수로 빌라 센토사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집안 곳곳을 설명하셨다. 기분 좋아보이는 할아버지는 내게는 친절했지만, 집안 식구들에겐 오지랖 넓은 할아버지일지도 몰랐다.

빌라 센토사 박물관 Villa Sentosa living museum
말라카 강의 작은 집과, 가게 그리고 아름다운 벽화는 여전했다. 아니 오히려 더 풍성해지고 아름다워졌다.

 "말라카야~ 돈은 잘 벌돼 너무 변하지는 마!"

빠르게 변하고 있는 말라카에서 나는 자전거를 타고, 조금 느리게 걸었다. 자전거를 타고 계속 계속 가다 말라카의 작은 야산을 타고 거대 공동묘지에서 산책을 하기도 했다. 뭐 이게 생기고 저게 생기고, 나 혼자 구시렁대었지만, 여전히 말라카는 아름다웠다. 어쩌면 '변하지 마!'라고 말하는 것이 나의 이기심일지도 모른다. 나도 5년 전과 비교해서 많이 변했으니까. 안 변하면 오히려 이상하니까. 하지만 그 와중에도 너의 아이덴티티는 잘 간직하기를. 


기회가 된다면 난 이곳에서 한 달 정도 살아보고 싶다. 아마도 비수기에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 한다. 맨날 존커 스트리트 가서 길거리 음식 먹을 테다!



해외여행이지만 말라카는 싱가포르에서 버스로 세네 시간이면 갈 수 있고, 하루에도 꽤 많은 버스가 운행한다. 싱가포르 곳곳에서 말라카로 출발하는 버스가 있어 잘만 찾으면 터미널로 가는 수고 없이 집 근처에서 버스를 탈 수도 있다.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도 한두 시간이면 갈 수 있다. 주요 관광지가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어서 걸어서 말라카 내에서 걸어서 이동 가능하다. 좀 부지런을 떨면 하루나 이틀 만에도 다 둘러볼 수 있어서 주말여행으로 충분히 다녀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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