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싱가포르 해외취업의 단점
앞에서 나는 싱가포르가 이직이 쉬운 곳이라고 말했다. 이직이 쉽다는 건 회사와 직원 간 유대관계가 약하다는 말이다. 사람들 간 정이 없으니 해고가 더 잘 생기는가? 특히 해고가 많기로 유명한 금융업계가 싱가포르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다 보니 더 그럴지도 모른다. 아는 분도 거대한 보험회사에 근무하시다 정리해고를 당하셨다. 물론 다행히도 재취업하셨지만..
입사한 지 4개월이 되어가는 무렵, 나와 함께 입사했던 두 명이 이틀째 보이지 않았다. 단지 휴가 간 줄로만 알았던 그들의 행방을 알려준 건 옆 동료였다.
“들었어? 걔네 잘렸대.”
해고보다 충격적이었던 건 그들이 나와 같은 날 입사한 사람이었다는 거다. 누군가 나를 평가고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걸 눈으로 확인한 건 처음이었다. 아직 4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정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여기는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가혹했다. 내가 해고당한 것처럼 나는 한동안 충격에 빠졌다. 무엇이 우리를 갈랐는지도 솔직히 모르겠다. 수습 기간을 두고 입사한 것이었지만, 수습 기간 후에 누군가 해고당하는 걸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연이어 다른 한 명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그만뒀는데 그는 처음 나를 면접 봤던 이사였다. 회사가 날 죽을 때까지 먹여 살린다는 생각은 당연히 안 하지만, ‘정글 같은 사회’란 말을 제대로 체감한 순간이었다.
사실 친구들과 그들의 회사에서 해고 소식을 들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오히려 내가 일하던 곳에서 일어난 해고 소식에 친구들이 더 놀랐다. 이렇게 보니 내가 다녔던 회사가 정말 잔인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차피 혼자 사는 세상!"
나의 자리가 보장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해서 오히려 일을 손에 잡히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나는 그 환경에 무섭도록 빨리 적응했다. 언제든 끝이 올 수 있다는 생각에, 그 끝이 왔을 때 아쉬움을 줄이려 열심히 일했다. 잘리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능력을 키운다는 생각으로. 사실 한국도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지 오래고 회사에 인생을 거는 사람들도 점점 줄어들지만, 싱가포르에서 회사와 나는 정말 별개다. '내 인생 내가 알아서'를 절절히 느끼며 마음이 단단해졌다. 어쩜 이건 내가 남의 나라 땅에 살고 있어서 더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싱가포르에 오실 분들은 이 점을 감안하고 오셨으면 한다.
외국인이 싱가포르 내에서 일을 구하려면 회사에서 지원하는 워킹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다른 사이트에서 보면 스폰 한다는 표현을 많이 볼 수 있다. 그 스폰이 지금 내가 말하는 지원이다.) 그리고 대개 이 비자는 2년간 유효하다. 아무리 회사에서 날 20년 동안 고용하고 싶어 한다 해도 싱가포르 노동청에서 외국인 근로자에게 발급하는 비자는 대부분 2년이 최장이다. 물론 별 문제없으면 회사에서는 알아서 2년 후 이 비자의 재발급 신청을 하긴 한다. 이 과정에서 회사의 사정 때문에 워킹비자긴 하나 비자의 종류가 달라지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만약 싱가포르에서 현재 일하는 직장을 그만둔다면 가지고 있는 워킹비자의 종류에 따라 최소 일주일, 최장 한 달의 시간 동안 싱가포르에 머물 수 있다. 그 기간 동안 일을 구하던지 싱가포르를 떠나야 하는데, 당연히 그 이상 거주하면 불법체류자가 된다. 학교에 다니거나 직장을 다니는 등 아무것도 안 할 거면 이 땅에 있지 말라고 말하는 듯하다. 관광비자로 최장 90일 동안 싱가포르에 있을 수 있는데 그 기간 동안 구직을 하는 사람도 많다고 들었다. 이 관광비자를 연장하기 위해 가까운 말레이시아로 다녀오는 사람들도 많다. (본인도 한 번 그랬음)
요즘 지구 트렌드가 그렇듯 사실 모든 나라가 외국인에게 배타적이긴 하다. 작년에 호주에서도 외국인 근로자에게 주던 457 비자가 폐지되고, 다른 비자로 대체되었다. 외국인을 다 죽일 셈이냐며 욕 오지게 먹던 그 비자는 사실상 내가 갖고 있던 싱가포르의 보통 워킹비자와 별 차이 없는 것이었다. 싱가포르는 산업 특성상 외국인이 많이 들락날락하고, 다른 나라들에 비해 분명히 외국인에게 호의적인 분위기임에도 비자만큼은 참 불리한 것같다. 회사에서 내 비자를 신청하는 중에 발급 거절당한 적도 있고, 문제 없이 몇 년 넘게 일을 잘 하던 친구들도 영주권을 신청에 번번이 탈락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자국민 보호정책을 통해 외국인의 유입을 줄이려 노력한다는 게 드러나는 부분.
남의 나라에 살면서 완벽한 보험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여긴 회사가 직원을 위해 내주는 직장인 보험이 없다. 물론 시민권이나 영주권자들은 세금을 따로 내는데, 내게는 해당사항이 없으니 그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병가를 내고 회사에 진단서와 영수증을 내면 그 돈을 돌려주긴 하지만 그거 빼고 별 다른 복지가 있나 싶다. 배우자가 있다면 배우자에게도 같은 혜택이 주어지긴 하지만, 우리가 맨날 아프지는 않으니…
싱가포르에선 세금을 1년에 한 번 내는데 1년에 한 번 내는 양이 거의 자신의 월급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같은 양이라도 그걸 12번에 나눠내는 게 아니라 한 번에 내다보니 부담스러울 때가 있는데, 이 세금을 대신 내주는 걸 복지로 내세우는 회사도 있다.(주로 파견근무 오거나 높은 직급 분들을 대상으로 함.) 세금을 적게 내니 복지와 관련해 할 말은 없지만, 자기 인생 자기가 알아서 살아라는 식이다. 내가 제일 놀랐던 건 공공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데도 가입비를 내야 하는 거였다.
싱가포르는 세금을 많이 걷어서 복지를 좋게 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일을 좀 더 쉽게 만들자는 주의다. 예를 들어 사무실이 많은 지역에 어린이집을 많이 둔다던가, 점심 값을 저렴하게 한다든지를 통해 말이다. 호커 센터 Hawker center라고 불리는 에어컨이 없는 푸드코트에서는 가장 저렴하게는 3,4불로도 빠르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으며,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에 이런 곳을 많이 이용한다. 대부분의 국가가 그렇겠지만 일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편하고, 아닌 사람에겐 잔인한 싱가포르다.
맨 처음 입사하면 인사담당자는 나를 직원들에게 소개하여 준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지만 거기서 끝이다. 오지라퍼들이 없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필요하지 않은 이상 대화를 많이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친해지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싱가포르 사람들, 정말 원칙적으로 일하며, 예외를 거의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독일 사람들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도 가끔 듣는단다.
“과장님, 이것 좀 도와주세요. 저희 진짜 큰일 나요.”
라고 하면 투덜대면서도 해 주시는 정 많은 과장님이 있던 한국과 달리, 여기서는 그렇게 말할 분위기도 아닐뿐더러 그렇게 말하면 정신병자 소리나 들을 것이다. 한국에선 작은 실수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여기서는 굉장히 크게 비치기도 한다. 한국이었다면 한두 마디 말로 넘어갈 수 있는 실수인데, 여기선 1시간을 쓰기도 한다. 그만큼 원칙을 철저히 지키기에 내가 일을 똑바로 처리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지만, 그만큼 융통성이 부족해 보이기도 한다.
나는 싱가포르에 일하고나서부터 토할 때까지 검토를 하곤 했다. 정확하다는 확신이 있어도 내가 실수했을 때 나를 물고 뜯을 하이에나들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꼼꼼함이 저절로 늘었다.
*여담
“우리나라 사람들이 뒷담화는 최고지.”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깨달았다. 뒷담화는 인간의 DNA 속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걸. 아무리 서로 간에 말이 없네 마네 했지만, 뒷담화가 없는 곳은 없었고 다들 뒷담화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디 가서 빠지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ㅋㅋ
이 글을 보시는 분 중에 예술 쪽과 관련 있는 분들은 많이 없을 것 같지만, 싱가포르에 있는 직업의 분포를 보면 예술 쪽이 확실히 약하고 직업군도 적다. 자체적으로 문화콘텐츠를 만들기보다는 다른 나라의 문화를 즐기기 때문에 그런 콘텐츠를 수입하는 쪽이 발달하면 했지 실질적으로 그것을 양성하는 곳은 적어서 그럴까? 아무튼 디자이너나 예체능을 전공하신 분들이 직업을 찾기에 좀 힘들 수 있다. 사실 한국도 이 부분이 잘 정비되어 있지 않은데 싱가포르는 좀 더 심한 느낌이다.
나는 한 사무실에 7개의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들과 일했다. 그전에 싱가포르 현지인만 있는 곳에 근무를 했는데 싱가포르 생활 초반이기도 했고, 안 그래도 못하는 영어 더 못하던 때라 힘들었다. 세계 어느 곳을 가도 그렇듯 한 집단에서 주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그 집단의 문화를 이끌어가기 마련이다. 한국에서만 살다가 싱가포르인들만 많이 있는 회사에 가면 그들의 문화에 적응하는 시간이 좀 더 걸린다. 아직 적응되지 않은 싱글리시와 그들만의 문화. 그 사이에 그들로부터 소외받거나 사내 정보로부터 멀어지기도 한다. 안 그럴 거 같은데 로컬 회사에선 친목(Socializing)을 다진다며 점심도 다 같이 먹는다. 이건 우리뿐만이 아니라 싱가포르 내 한국 기업에서 근무하는 싱가포리안들도 겪는 일이다. 그들은 반대로 한국 문화에 적응 못해 퇴사율이 높다고 한다.
이에 반해 다국적 기업에서는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한데 섞여 있어 자기 문화를 고집하지도 않고, 자연스레 서로의 문화를 존중한다. 그래서 처음 싱가포르에 오시는 분들이라면 싱가포르인들이 많은 회사보다는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곳에서 먼저 일하는 것이 적응을 위해선 좀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이외 싱가포르 생활의 힘든 점.
다들 알고 계시다시피 집값이 비쌉니다. 그리고 술에 세금을 많이 부과해서 술값도(ㅠㅜ) 비쌉니다. 슈퍼에서 술을 살 땐 그래도 괜찮은데 확실히 펍에서 마시는 술값은 셉니다. 그러고 보니 담배도 비싸네요. 집값과 물가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또 해볼까 합니다.
영문이력서를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고요?
링크드인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영어 면접은?
궁금하긴 한데 어디 물어보기에는 애매한 해외 취업 팁과 생활?
사람들이 어떤 직군에서 일하는지 궁금하세요?
그동안 브런치에서 위의 내용을 많이 공유했지만 더 자세하고 실제로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팁을 얻기 위해 많은 분들이 문의를 주시고 계세요. 8년 간 해외에서 근무하며 영문이력서/영어면접/링크드인/ 실제 해외 회사 생활에 대해 직접 배웠습니다. 제가 8년간 넘어지고 깨지며 배운 노하우를 직접 저와 이야기하며 습득하고 싶으시면 아래 링크에서 확인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