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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Mar 16. 2016

오후 3시에 끝난 오늘의 피렌체 여행

여행 마저도 누군가 만들어놓은 대로, 남을 따라 하려는

"두오모 성당 말고 여기서 또 뭘 보면 될까?"

"피렌체에 왔으면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가 봐야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이 그곳에 소장되어 있어."


피렌체에서의 첫 번째 아침 그 아카데미아 박물관으로 길을 나선다. 피렌체도 로마 만만치 않게 덥다. 아카데미아 박물관에 들어가기 전에 눈에 꽂힌 박물관에 들어가서 이탈리아에서 만나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유물에 한동안 빠져 있다가 아카데미아 미술관으로 나섰다.

"생각보다 줄이 짧네? ^^"

뭐 좋다, 기다릴 수 있어. 근데 40분이 지나고 보니 내가 줄을 잘 못 서서 기다리고 있단다. 내 앞에 서 있던 관광객들도 혼란스러워한다. 어째 어째 줄을 다시 찾았더니 다시 3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이미 지친 기색이 역력한 다른 관광객들은 반쯤 포기한 얼굴로 길에 쭈그려 앉아 있다. 나는 그 줄에서 다시 30분을 있었다.


내가 미술학도인가? 내가 언제부터 미술에 관심 있었다고 어제 처음 들어본 "다비드 상"을 보겠다고 피렌체에서의 귀중한 몇 시간을 이 길바닥 위에 서서 보내고 있나? 도대체 여기서 뭐하고 있지? 왜 이 줄을 서고 있지? 뭘 보고 싶은 건데?


갑자기 든 생각에 기분이 가라앉은 나는 그 대열을 이탈하여 뜨거운 피렌체 거리로 다시 나와 정처 없이 걸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 땅에 고인 물로 스스로 샤워하고 있는 비둘기를 재미나게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사람들을 보았다. 나를 제외한 전부 다들 어디론가 바쁘게 걸어가고 있다. 이렇게 과거에 머물러 있는 도시 피렌체에서조차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나만 뭔가 잃어버린 느낌.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은 죄책감..


나 왜 여행을 왔니? 내가 여행에서 보고 싶어 했던 것은 무엇이고, 찾으려고 했던 것을 무엇이지?


"그 도시에 갔으면 이거는 꼭 보고요, 참, 이것도 꼭 먹어봐요. 거기서 이거 안 하면 갔다 온 것도 아니에요."


'답정너 시리즈'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우리는 여행마저도 어디에 가면 꼭 무엇을 하고 먹어봐야 한다는 '정답'을 또 만들어 놓았다.  여행에서마저도 사회가 내게 알려준 루트대로 따라가려 하고 그걸 하지 않으면 마치 무언가 잘못을 한 것처럼 죄책감까지 든다. (더 슬픈 건 너무 오래 그런 생활에 길들여져 막상 자유가 주어져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그렇게 누군가 무얼 해야 한다는 그 말대로 살아와서 질릴 대로 질려 버렸는데, 여행 왔다고 해서 그 노예성이 하루아침에 사라질지 만무하다. 자유로움의 대명사 여행마저 정답으로 만들어버린 우리들. 그렇게 나는 바보처럼 관심도 없는 아카데미아 미술관 앞에서 2시간 동안 서 있었다.



갑자기 내 지난 2주간이 떠올랐다. 아무 생각 없이 갔던 파리는 그냥 이끄는 대로 끌려다니면서 이것저것 다 봤다. 무려 3시간을 기다려 에펠탑에 올라갔었다. 1시간을 기다려 오르셰 미술관에 들어갔다. 내가 좋아하는 도시의 경관을 보고, 좋아하는 고흐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 라지만 난 많은 시간을 기다렸다.


우울한 마음으로 오후 3시, 숙소에 돌아왔다. 그리고 아직 해가 쨍쨍한 오후. 창문을 통해 비치는 오후의 햇살을 그렇게 바라보며, 여행마저도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는, 뭘 보고 싶어 하지도 모르는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을 기대하고 이 여행에 왔던지 진지하게 고민해보려는 그 순간까지도 날 따라다니는 그림자.

'피렌체까지 와서 방 안에만 있을래? 여행 왔으니까 여기 있는 거 다 봐야 될 거 아냐.'

 질린다. 또 다른 내가 날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다. 내 몸이 여기에 있지만 누가 대체 여행하고 있는 걸까? 내 여행이 내 것이 아닌 그 두려움은 내 삶을 제대로 살아내고 있는 건지도 두렵게 만든다.


그렇게 오후 3시,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바라보며 눈물 찔끔대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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